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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초>1권 겉표지
<혜초>1권 겉표지 ⓒ 민음사

<열하광인>과 <열녀문의 비밀>등으로 구성된 '백탑파 시리즈'와 <불멸의 이순신> 등으로 역사소설을 가장 잘 쓴다고 소문난 김탁환. 그가 이번에는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고선지와 혜초가 살았던 시대, 실크로드에 올랐던 여행자들의 여정을 소설로 담은 것이다.

 

고선지와 혜초. 그 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혜초>(민음사 펴냄)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고선지는 작년부터 유명세를 얻은 장군이고 혜초 또한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하다. 별들의 만남이라고 할까? 화려함의 충돌이니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무슨 이유일까? 고선지와 혜초의 숨겨진 여정을 쫓는 김탁환의 시선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고선지라면 정복전쟁을 그릴 것만 같고 혜초라면 실크로드 길을 열심히 걸어갈 것 같기만 한데 <혜초>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고선지, 그는 전쟁에 나서던 중 뜻밖의 복명을 만난다. 죽음의 사막, 대유사! 그곳에서 만난 검은 모래 폭풍에 부하를 잃고 자신은 알 수 없는 곳에 남겨지게 된다. 그곳은 앙상한 뼈들이 솟아있는 사막이었다. 이곳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고선지는 갑자기 모래 무덤을 파낸다. 그곳에 있던 어느 '존재'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바로 혜초였다.

 

혜초, 그는 불제자로 아시아 대륙의 중앙부를 일주했다. 그런 남자가 왜 죽음의 사막에 있던 것일까? 기억이 없다. 고선지가 아무리 물어도 기억이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선지에 의해 구출되지만 스파이로 의심받아 감옥에 갇힌다. 고선지 또한 처지가 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임무를 다하지 못한 그는, 평소에 고구려의 후예만으로도 어려웠는데 이번일로 입지가 곤란해졌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전염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사막에서 걸린 병이었다. 고선지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죽는 것일까? 혜초가 있다. 그만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고선지는 그에게 도움을 얻으려 하지만 기억을 잃은 혜초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했다. 그리곤 누군가가 건네주는 양피지를 읽어준다. 왜 그러는지도 모른채, 하루에 하나씩 읽어준다.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혜초>는 적막감이 감돈다. 쓸쓸함도 묻어있다. 화려하다면 화려할 수 있는, 고선지와 혜초를 주인공으로 했음에도 정작 소설의 분위기는 모래 사막을 거니는 것 같다. 왜 그런 것일까? 혹시 혜초가 읽는 '왕오천축국전'의 분위기 때문일까?

 

가장 오래됐다는 그 책은 유명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막연히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설은 혜초가 읽음으로써 그 내용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분위기와 많이 다르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다 하더라도 종교적인 영향이 커 차분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분위기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김탁환이 고선지를 이름 떨치는 장군이 아니라 인정 받기 위해 애쓰던 시절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도 소설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만든다. 험난한 길, 흡사 어둠 속의 사막을 걷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그렸기에 이 소설은 달밤의 사막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재미없거나 역사적인 인물들을 지나치게 재구성됐거나 한 것은 아니다. 사막이 별 것 없어 보인다고 해도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하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가본 사람들만 아는 신비한 매력이 있는데 사막을 닮은 소설 <혜초>도 그렇다. 역사적인 두 남자, 고선지와 혜초의 인연을 구경하는 것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혜초>를 만났을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 않아도, 속으로는 깊은 매력을 지닌 셈이다.

 

혜초와 고선지를 통해 머나먼 시절을 이야기한 김탁환의 <혜초>, 역사를 '버무린' 구성도 흥미롭지만 '잊었던 길'로 통하게 해주는 것이 아름답다. 고선지와 혜초, 그리고 김탁환의 만남은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혜초 1

김탁환 지음, 민음사(2008)


#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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