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가치가 전도되고 있다. 상식과 몰상식, 합법과 불법을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다. KBS 이사의 해임, KBS 사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 및 검찰 수사, MBC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및 검찰 수사 모두 공권력에 의한 합법적 절차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합법성에 동의하기 어렵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법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리 무리한 일들을 벌일까?
이 모든 것이 국민에게도 '물러서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고집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한 후 언론계는 산업 지상주의 정책 실시에 따라 언론의 공익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하였다. 현 정부의 예상되는 언론 관련 정책으로 언급되는 신문방송겸영금지 조항 삭제, 지상파 공영방송 민영화, 국가기간방송법 등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서도 이러한 언론 구조 개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했다. 합리적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일부 무조건 밀어붙이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는 있지만 이 역시 그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렵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 준 행태로 보아 어떤 합리성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그럴 경우 우리 사회가 맞게 될 재앙이 두렵다.
정부가 무리해서라도 KBS 사장을 바꾸려는 이유
우선 KBS에 대한 정부의 조치들을 보자. 애초 임명 당시부터 독립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받았던 방송통신위원장은 독립성을 무시하고 KBS 이사장을 만나 사장의 진퇴여부를 논했다. 무슨 이유인지 KBS 이사장은 그 후 사퇴하고 말았다.
동의대는 KBS 이사인 신태섭 교수를 허락 없이 이사에 취임해서 회의에 참여했고, 일부 휴강이 있었다는 이유로 해임했다. 물론 KBS 이사를 사퇴하면 해임하지 않을 수 있다는 회유와 함께. 그러면 사외이사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동의대 총장에게 허락을 구하고, 군대 위수지역 넘듯이 출장 허가를 내고, 일부 시간을 옮겨 강의했다고 해임당해야 하는가?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이사했다고 해임한 동의대의 조치를 빌미로 신 교수가 KBS 이사 자격을 자동 상실했다고 규정하고, 신임 이사를 임명했다. 방송위원회를 계승한 방송통신위원회라면 자신들의 행위가 부정당한 것에 대해 동의대에 항의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스스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몰상식한 행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겨 넣은 이사로 다수를 점한 KBS 이사회 내 친정부적 이사들 행태 역시 비상식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감사원이 KBS를 특별감사해서 '해임요구'라는 방송법을 무시하는 조치를 창조해냈다.
이사회는 발맞추어 내부 검토할 시간적 여유도 가지지 않고 며칠 만에 '해임제청권'을 창조해냈다. 물론 대통령은 불법적인 '해임권'을 행사하는 대미를 장식했다.
2000년 제정한 (통합)방송법은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해서 그 시안을 마련했다. 방송개혁위원회는 이전에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꾸고, 그 임명 절차도 형식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이 KBS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회는 논란 없이 통과시켰다.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 정신을 무시하고 창조해낸 '해임제청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친정부적 KBS 이사들끼리 전날 합숙을 하고, 이사장이 사장의 권한을 채트려 공권력을 요청하는 몰상식한 희극이 연출되었다. 신임 사장 공모에 관한 기준을 만든다고 모인 다음 번 이사회는 007 작전을 방불하듯 15분 전에야 변경 장소를 통보했다고 한다. 친정부적 6인의 이사도 몰랐을지는 누구나 다 아는 수수께끼일 터이다.
뉴라이트 단체 요청을 받아 실시한 감사원 특별감사 역시 이해 불가하다. 당기 사업실적만 가지고 경영성과를 따지는 회계기준은 어디서 사용하는가? 감사원의 창조력은 '해임요구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회계기준으로 경영부실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켜줬다. 검찰 수사 결과를 접하면서는 더욱 기막히다.
내부 절차에 따라 이사회까지 거쳐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들인 행위를 배임이라 한다면, 앞으로 법원 조정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검찰은 법원 조정이라는 사법 행위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나? 동의하지 않으면 검찰은 당시 의사결정에 참여한 이사들 모두를 배임으로 기소하라.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KBS 사장을 바꾸려는 이유가 뭘까? 그 단초를 'PD수첩'에서 본다. 결국 MBC 경영진은 편법을 사용해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MBC 구성원 대부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아마도 정부는 KBS 정연주 사장 아래서는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독립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과방송 MBC 경영진, 초심으로 돌아오라
'PD수첩'은 잘못했을까? 혹자는 'PD수첩'의 의도가 나쁘지 않았더라도 오역은 잘못이라고 한다.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라고 말한 것을 vCJD(인간광우병)라고 말한 것이 오역일까? 이미 어머니는 여러 번에 걸쳐 vCJD라고 말했고, 당시의 맥락에서 어머니의 발언이 vCJD를 의미한다면 언론은 뭐라고 전해야 할까? CJD는 vCJD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이니 어머니가 틀리게 말한 것도 아니지만, 정확한 자막 표현을 쓰는 것이 사실보다 진실을 앞세우는 언론의 자세 아닐까?
다우너 소도 그렇다. 수십 가지의 다우너 소 원인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다우너의 소의 도축을 금지한 직접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광우병 의심 때문인데, '다우너 소의 원인이 수십 가지입니다'라고 물타기하는 것이 언론인가? 물론 정파적으로는 그러고 싶은 언론이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은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이 사실만 전달하면 책임은 끝난 듯 객관주의 신화에 매몰되었던 서구 언론이 뒤늦게 한 반성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반대하는 위원들이 퇴장한 이후 간담회 식으로 진행하면서 사과방송을 결정하였다. 또 절차가 무시되었다. 애초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과방송이라는 조항이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지만, 백번 양보해 정정보도도 아니고 사과방송 결정이 적절한가.
법원도 역시 마찬가지 결정을 하였다. 방송사의 경영진은 사업 이익만이 아니라 언론을 지켜야 할 책임도 있지 않은가? 엄기영 사장은 사장 자리에 공모했을 때 "MBC가 돈만 많이 벌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는가? 아니면 공영방송 MBC의 공익성을 강화하고 독립성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는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정부로 진화하는 지난 20여년간에 걸쳐 한국 사회가 성장시켜 온 민주주의 제도들이 무너지고 있다. 왜 이런 무리한 일들이 벌어질까? 바로 방송을 산업의 관점에서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른바 신산업성장동력이라는 그럴 듯한 빌미 아래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장으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언론관 중 가장 걱정스런 부분이다.
8월 17일 'KBS 스페셜'은 자본과 언론과 권력이 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자본의 이해를 언론에 관철시켜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정치권력을 창출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피해가 민주주의의 소멸임을 적절히 보여주었다. 최근 일련의 폭거들을 이해하는 단초이다. 현 정부는 바로 이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는 방송이 두려웠을 것이다.
언론장악에 저항하는 촛불 시민은 물론 KBS 사원행동, MBC 노조 등이 국민을,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을 기대하면서 KBS 노조에게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반 정연주를 외치면서 낙하산 사장을 막겠다고 주장해온 KBS 노조가 '있는 사장 지키지 못하면서, 낙하산 사장 막는 것이 가능하냐'는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해온 사람들에게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냐고. 특보사장은 물론, 정연주 전 사장을 코드가 같다고 몰아세우면서 낙하산으로 규정한 만큼 코드 인사도 막을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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