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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사람이여? 괴물이여?"

"나는 저런 여자가 너무 싫당게. 여자가 여자다운 멋이 있어야제."

"무슨 소리! 저런 어마어마한 체구가 받쳐주니까 지구를 번쩍 들어 올리는 괴력이 나오지 않것어."

"아, 나는 저런 여잘 마누라 삼고 싶어 죽것어. 저런 여자하고 같이 살면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지 않것어."

 

16일(토) 밤, 장미란 선수가 마침내 베이징 올림픽 여자역도 75㎏ 이상급에서 인상 140㎏, 용상 186㎏, 합계 326㎏을 들어 올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미란은 이날 인상, 용상, 합계 모두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것도 역도 최강국인 중국 한복판에서 세계챔피언이라 불리는 여자 역도 최중량급에서 따낸 금메달이어서 그런지 더욱 빛이 났다.

 

우리나라가 낳은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5, 고양시청) 선수가 지구를 몇 번이나 번쩍 번쩍 들어올린 16일(토) 밤, 나는 여수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세계에서 가장 힘센 여자 역사의 세계 신기록 행진을 지켜보고 있었다. 식당 안 곳곳에서 함성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버마 아웅산 사태가 터진 1983년 10월9일 새벽, 5.9㎏이라는 어마어마한 몸무게로 강원도에서 태어난 장미란. 중 3때 바벨을 처음 들었고, 열흘 만에 강원도 중학생 대회에 나가 우승한 여자 역사 장미란의 괴력은 대단했다. 그날 장미란은 이명박 정부가 낳은 고유가, 고물가에 따른 시름까지 한순간에 들어 올리는 것만 같았다.

 

내 앞에 놓인 소주잔 속에도 장미란 선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TV에 눈을 빠뜨린 손님들의 눈빛 속에도 장미란 선수가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있었다. 박수를 짝짝짝 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식당 주인의 주름 깊이 파인 이마에도 장미란 선수가 번쩍 들어 올린 금빛 바벨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듯했다.

 

장미란의 괴력은 삼손처럼 머리에서 나온다?

 

"아따 오늘 소주가 다네 달아. 여기 소주 서너 병 더 주씨오."

"여기도 소주 한 병 더 주씨오. 이런 날 소주에 한번 까빡 취해야제, 언제 취할랑가."

"잠깐, 잠깐만요. 이렇게 겁나게 기분 좋은 날, 식당 주인이 그냥 넘어가면 못 쓰것제. 손님들 상마다 소주 일병씩 공짜로 올릴랑게 많이들 드씨오."

"오늘 장미란 선수가 대한민국을 온통 취하게 만드는구먼."   

 

십 년 묵은 체증이 싸악 가시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장미란 선수가 되어 금빛 바벨을 들어 올리는 것만 같았다. 한 마음이 되어 장미란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며 기뻐하고 있는 손님들 모두가 금빛 바벨로 보였다. 손님들 상 위에 소주 한 병씩 공짜로 올리고 있는 식당 주인의 환한 미소도 금메달감이었다. 

 

이미 금메달을 확보한 장미란 선수가 다시 한 번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바벨을 번쩍 치켜들자 또다시 '히야~' '역시 장미란이야'라는 감탄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가슴이 후련했다. 그토록 푹푹 찌는 무더위도 장미란 선수가 용을 쓰며 번쩍 치켜든 금빛 바벨 아래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물러나는 듯했다.

 

역도 선수를 했다는 아버지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한국의 삼손 장미란. 대체 장미란 선수의 무서운 에너지는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장미란의 아버지 장호철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란이의 괴력은 머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장미란의 머리에는 귀부터 뒷머리를 둘러 마치 월계관을 쓴 듯한 선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

 

또래 여자들이 화장 예쁘게 할 때 나는 송진가루를 묻혔다

 

이 때문에 동네 할머니들은 장미란에게 "이 다음에 커서 감투를 쓸 상"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떠들고 다녔단다. 하지만 장미란 선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밥을 많이 먹는 것 빼고는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다. 피아노를 잘 쳤고, 학교성적도 반에서 상위권을 맴돌았다. 그런 장미란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전자오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 장미란의 아버지가 역도를 시켰다. 역도를 강제로 시키려는 아버지와 여자가 무슨 역도냐 라고 생각하는 장미란과의 숨바꼭질이 그때부터 쉼없이 시작됐다. 하지만 40kg짜리 시멘트 부대를 6~7개씩 짊어지고 다닐 정도로 타고난 체력을 가진 장미란은 역도의 그늘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장미란은 자신이 역도를 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여러 역도 경기에 나가 상을 타면서도 여자가 역도를 한다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장미란의 이러한 생각은 지금으로부터 4년 앞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장미란은 여자가 아닌 진정한 역도선수로 거듭난다.

 

"고등학교 때까지 역도한다는 사실을 숨겼는데 지금은 좀 더 일찍 했으면 하는 후회도 든다"고 말하는 장미란 선수. 또래 여자들이 화장을 예쁘게 할 때 자신은 송진가루를 묻혔다는 장미란 선수. 또래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야식을 배불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장미란 선수.

 

나는 오늘부터 장미란을 내 애인으로 삼기로 했당게

 

"여자 역도선수들은 모두 다 왜 저리 뱃살이 축 처지고 덩치가 큰지 모르겄어."

"저런 엄청난 체구가 받쳐주니까 그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릴 수 있지 않겄어. 저 당당한 모습 좀 봐. 얼마나 이뻐. 나는 오늘부터 장미란을 내 애인으로 삼기로 했당게. "

"애인은 무슨? 며느리 삼아야 쓰지 않겄어."

"그런가. 하여튼 장미란 선수가 내 마음의 촛불이여. 그동안 이명박 정부 땜에 쌓인 스트레스를 싸악 사라지게 했은게."

 

역도선수이기 이전에 여자이기를 바랐던 장미란 선수. 나는 그날 여수에 있는 한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장미란 선수의 매섭고도 강렬한 눈빛을 가슴 깊숙이 담았다. 장미란 선수의 단단한 뱃살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울퉁불퉁한 팔다리 근육을 가슴에 포옥 품었다. 나도 인생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장미란을 닮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며.

 

대한민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당당하게 지구를 번쩍 들어 올리는 대한민국의 딸 장미란 선수의 장한 모습. 나는 당당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고 있는 장미란 선수의 모습에서 장 선수가 딴 금메달은 한 개가 아니라 우리 7천만 민족 모두의 목에 걸어준 7천 만 개의 금메달이라고 여겼다.

 

몸무게 120~150kg이 나가는 선수가 줄을 서 있는 75㎏ 이상급에서 120kg도 채 나가지 않는 장미란 선수가 보여준 괴력과 뛰어난 기술.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린다는 사실이 좋다는 장미란의 핑크빛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시를 쓰고 있는 나의 핑크빛 꿈은 무엇일까.

 

장미란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장미란 선수는 피나는 노력 끝에 스물다섯 살 나이에 세계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시의 금메달은커녕 시의 동메달도 목에 걸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십 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시 한 편 건지지 못하고 식의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밑바닥을 빨빨 기고 있다. 

 

장미란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장미란은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지구를 번쩍 들어 올리는 역도선수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나는 단 한번만이라도 '개떡(?) 같은' 자존심을 죄다 내팽개친 채 시 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본 적이 있는가. 한길로만 계속해서 가지 않고 다른 지름길에 한눈을 너무 많이 판 것은 아닌가.

 

그날, 스물다섯 살 먹은 장미란이 오십 먹은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그래. 나도 이제는 장미란처럼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길로만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그렇게 끝까지 가다보면 이 세상이 나에게도 금메달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는가.

 

얼씨구 장미란!

절씨구 장미란!

지화자 장미란!  

덧붙이는 글 | '그 경기, 난 이렇게 봤다 응모글'


태그:#장미란 선수, #여자 역도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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