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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감수성은 낙제점

 

 <역사속으로 숑숑>(토토북)은 주인공 리아라는 여자 아이와 넉넉하지만 소심한 책방아저씨 지대로의 역사모험을 담고 있다.
<역사속으로 숑숑>(토토북)은 주인공 리아라는 여자 아이와 넉넉하지만 소심한 책방아저씨 지대로의 역사모험을 담고 있다. ⓒ 아메바피쉬

역사를 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 없을까? 드라마의 영향으로 고구려와 조선에 관한 책들이 단단한 기획력을 갖추고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책들일 뿐 어린이가 볼 만한 역사책은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그보다 아예 어린이에게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아는 어른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동화나 만화의 사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백설공주 등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그림동화'(독일)를 봐도 동화란 '메르헨'은 '작은 이야기(혹은 옛이야기)'라는 뜻이다. 원본의 이름 역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모음>으로 동화란 어린이와 어른을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 동(童)을 써서 어린이의 세계로만 한정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가 보기에 좀 좋지 않다 싶은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아예 새로 창작을 하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는 동화를 읽어주는 법을 지속적으로 교육시켜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사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역사과목'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만 봐도 흥미가 저절로 떨어지게끔 돼 있다. 답이 정해져 있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보니 억지로 외워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하나를 못 외우면 하나가 틀리고 두 개를 못 외우면 회초리를 맞는다. 나도 이런 방식으로 역사와 '이별'했다. 요즘 판타지역사(혹은 '역사판타지') 책을 하나 잡으면서 역사에 관한 '옛 추억'에 다시 빠져들었다. <역사 속으로 숑숑>(토토북, 이하 '숑숑')이다. 사학을 전공하고 그림책, 판타지소설, 블로그질 등 모든 문장에 능통하고 안 끼어드는 곳이 없을 만큼 오지랖도 넓은 저자의 내공과 만화가이면서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항 '아메바피쉬'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8월 13일 마침 <역사 속으로 숑숑> 출판기념회가 있던 날이라 두 작가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인 이문영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저자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 등 '닐스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 책은 스웨덴의 역사와 지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됐다. 다분히 계몽적인 의도다. 하지만 저자의 역량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이문영 씨는 여기서 '계몽'은 가급적 빼고 '재미'를 최대한 집어넣어보겠다고 했다.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저자는 철저히 실증적인 경험을 통해서 '방법론'에 도달한 듯했다. 교훈이나 의미를 집어넣으려는 기존의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자신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딸아이가 이집트 광팬이라는 거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보면서 관심을 보이더니 조금씩 수준이 높아졌다. 나중에 소설책을 보는가 싶더니, 저자도 보지 못한 이집트 열왕조에 관한 자료를 찾고 있더라는 거다. 결국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관심과 궁금함을 자꾸 불어넣어 주어야 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스로 고급 정보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런 정도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과감히 제거를 했다고 말했다.

 

 <역사속으로 숑숑>의 저자 이문영 씨
<역사속으로 숑숑>의 저자 이문영 씨 ⓒ 오승주

다음은 이문영 작가 일문일답.

 

첫 관문이 가장 어렵다

 

- <숑숑> 시리즈는 판타지역사라는 독특한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역사적 사실이라든지 문화적 정보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정보와 재미에 관한 선택을 어떤 기준에서 하시나요?

"소설 안에는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넣었습니다. 시기적으로 한 책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고, 이런 정도는 얘기해야 하잖아 하는 부분도 얘기 안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정보'보다 '여백'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궁금해지면 더 자세한 책들을 찾아갈 수 있게끔 배려를 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제 딸아이의 예를 들 게요. 처음에는 그림책을 보면서 피라미드라든지 미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애가 조금씩 조금씩 수준이 높은 것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소설책들을 보고, 드디어는 이집트의 열왕조를 정리한 책들을 찾고 있더군요."

 

- 오늘날 한국사 교육에 대해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사람은 처음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더 할지 말지를 결정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한국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쉽게 들어가면서 궁금증을 갖게 되고 뭔가 궁금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유감이 많습니다. 예컨대 국사교과서에서 굉장히 거창하게 묘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313년이 되면 미천왕이 낭랑군을 축출했다고 교과서는 설명하고 있는데, 313년 당시에 기록된 미천왕의 사례에 보면 ‘낭랑군을 습격했다’는 한마디만 나와 있거든요. 축출을 했는지 축출을 당했는지 이것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과감하게 '축출했다'고 기록하고 결론을 내는 식이죠.

 

또한 확정되지 않거나 역사학계에서 논의가 끝나지 않은 것을 뻔뻔하게 써놓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모든 게 정확하게 규명된 것처럼 표현하거나, 다른 학설의 소개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많이 없애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럼 작가님께서는 교과서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컨대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는 친일파인가 아닌가 등을 아이들끼리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전근대적인 조선에 근대적인 자극을 준 사건이므로 양쪽에서 충분히 논쟁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의문을 유도하고 가져갈 수 있게 해주고, 역사를 왜 배우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역사를 왜 배우는지 가르치지 않고 연대나 외우게 한다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겠죠.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역사에 대한 환멸감이 커지고 점점 멀어지게 되죠. 나중에 특별히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역사와 다시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속으로 숑숑>은 현재 2권까지 출간됐으며 10권 완간 예정이다.
<역사속으로 숑숑>은 현재 2권까지 출간됐으며 10권 완간 예정이다. ⓒ 토토북

<숑숑 시리즈>에 '고만' 같은 토종 괴물들 많이 소개하고 싶다

 

-<숑숑 시리즈>를 보다 보면 역사동화지만 판타지를 많이 넣다 보니 만화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애들은 안 그러면 재미 없잖아요. 그런 부분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고요. 우리나라 고전문학만 봐도 판타지 같은 것들이 많이 있거든요. 고대소설 구운몽 같은 것도 그렇고, 홍길동전도 그렇고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죠.

 

뿐만 아니라 특이한 동물, 환상동물이 많이 있어요. 여러 가지 동물을 쓰려고 했는데 1~2편에서는 토종 괴물들이 많이 등장하진 않고 있어요. 옛날 이야기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등장하고 출전을 밝혀준다면 아이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정보도 갖춘 괴물이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고만'이라는 재미있는 괴물이 있습니다. 고만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게 두꺼비도 아닌 것이 쌀독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서 쌀을 다 훔쳐먹거든요. 할 수 없이 시장에 팔러 갔더니 재상이 지나가다 고만을 보고 만 거죠.

 

재상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놈은 고만이라는 동물인데. 이 놈을 보는 순간에 모든 것이 '고만'이다. 운도 고만, 권력도 고만 멈추는 셈이니 나도 여기까지구나!"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다 재산도 나눠주고 쌀이며 땅을 모두 나눠주게 됩니다. 결국 고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덕을 본 거죠. 고만은 부자의 재산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이런 동물이 많이 있어서 어디에 등장시킬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어쨌든 <숑숑>은 역사동화이니까 동화적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숑숑>이 다른 동화와 어떤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숑숑>이 다른 동화와 차별되는 점을 얘기하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동화의 지향을 얘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동화를 쓰면서 항상 직면하게 되는 질문은 동화라는 게 아이들에게 유익해야 하지 않느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저는 반대합니다. 예컨대 말괄량이 삐삐를 내놨을 때 스웨덴 사회가 발칵 뒤집혔죠. 삐삐는 학교도 안 다니고 부모도 없고, 잠도 제 시간에 안 자고 어른이 하지 말라는 일만 하고 애들을 끌고 다니면서 사고를 치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사람들이 삐삐라는 애를 미워할 수 없도록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게 그려냈습니다 . 아이들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동화는 어땠겠습니까? 반사회적인 동화라며 거센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터부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게 전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문영 씨는 사마천의 예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사마천이 했던 유명한 한탄이 있는데, 내용인 즉  공자의 제자 안연은 성인인데 30도 못 돼 죽고, 도적 도척은 나쁜 도둑놈인데 장수를 누리며 평화롭게 살았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은 평생 깨끗하게 살았는데 궁형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되고, 도대체 하늘의 뜻은 어디에 있는 거냐 하고 사마천은 고뇌에 빠졌다. 결국 그것이 사마천으로 하여금 사기를 쓰게 만든 힘이었는데,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 하거나 남을 가르치려 하는 자세를 경계한다는 작가의 선언으로 들렸다.

 

문철사라는 말이 있듯 역사라는 게 사람이란 존재는 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철학의 하나라고 봤을 때 결국 역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삶이라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으로 숑숑 8 : 조선을 지킨 훈민정음 - 조선 전기 편

이문영 지음, 아메바피쉬 그림, 토토북(2011)


#역사속으로 숑숑#이문영#역사동화#판타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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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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