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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복궁 앞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60년 중앙경축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청소년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청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복궁 앞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60년 중앙경축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청소년들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청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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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주장은 우파의 역사 투쟁·정치 투쟁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주년 중앙경축식' 축사에서 뉴라이트 진영의 '건국 신화 만들기'에 기초한 역사관을 분명히 드러냈다.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은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이어지는 단계론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으로, 박정희를 '산업화의 영웅'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어 이명박을 '선진화의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계승시킬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승만 박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예속에서 다시 김일성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은 '한국의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한 민족의 지도자이며, 당대에 선견지명과 예지력을 갖춘 최고의 지식인이며 위대한 선각자였다."

건국절을 앞장서 주장하는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가 지난 17일 인터넷신문 <데일리안>에 기고한 글 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이승만은 김일성과 같은 신격화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역사신학을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이유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규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역사를 자신들의 일방적인 잣대로 재단하여 역사를 독점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우익들의 역사 투쟁이고 정치 투쟁이다. 그 속에 친일 청산, 독재 청산이라는 세계사적, 역사적 과제는 들어설 틈이 없다. 독재자에 의한 억압과 착취, 배제와 탄압의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1948년의 정부수립은 억압과 배제를 제도화한 반쪽짜리 정부의 출발이었다. 반공, 친일파, 독재 등 오늘날 한국사회가 완전히 극복해야 할 모든 것들이 내재된 위태로운 출발이었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정통이고 법통인가?

현행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현행 헌법 전문에 담긴 역사인식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전문 또한 제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와 법통 계승의 문제 때문에 그렇다.

임시정부가 1919년 3·1운동의 직접적 산물로서 포괄적인 민족해방운동의 지도기관으로 출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21년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철수하면서 임시정부는 통일전선적 성격을 잃고 쇄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에서는 임시정부 고수파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독립운동 단체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승만은 1925년 임시정부의 대통령직에서 탄핵, 축출되기도 했다. 임시정부를 배타적 정통으로 내세우면 국내에서의 민족해방투쟁, 국외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은 우리의 역사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다음으로 법통 계승을 둘러싼 문제도 있다. 김구마저도 대한민국 정부의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 주장에 대해 이런 반쪽짜리 정부는 100개를 세워도 임시정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단호히 부인한 적이 있다. 임시정부의 중요한 면면을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계승했는지를 살펴보면 이 문제는 명확해진다.

임시정부 세력이 마지막으로 역점을 둔 남북협상 문제를 이승만을 수반으로 한 대한민국 정부는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단선단정(남한단독선거 남한단독정부) 노선을 취했다. 그리고 오로지 멸공통일만이 국시로 선언되었다.

이승만은 또한 일제시기 임시정부의 노선에서도 멀찌감치 벗어났다.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남북협상파를 배제하고 친일 세력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보기 어렵다.

1948년의 의미는 사후적이며 제한적

그러나 이것이 1948년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완성이라는 우리의 과제 자체를 해소해 버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역사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주권자로 살아가기 위해 피땀 흘려 싸운 국민들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일 수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남과 북은 지난 60여 년 동안 서로 다른 국민, 서로 다른 헌법을 지닌 주권국가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1948년 정부수립의 의미는 사후적으로 획득된 것이다. 즉,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한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과 국민주권이 작동하는 헌법국가의 수립이 없었다면 1948년의 정부수립은 그 최소한의 의미마저 부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수립이 곧바로 민주공화국을 뼈대로 한 국가수립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에 기초한 헌법국가의 수립은 1987년 이후에야 가능했고, 이를 기초로 해서만 1948년 정부수립에 대해 사후적으로나마 제한적인 의미부여가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1987년 체제 또한 아직 미완성이다. 1997년 이후 공공의 것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파상적인 공격,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과 민주주의 파괴가 지속되는 한, 그리고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 되는 각종 사회적 권리의 충족이 지연되는 한 1987년의 의미 또한 완성될 수 없다.

따라서 1948년 정부수립의 의미는 아직까지 그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했으므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수립되는 그날 1948년에 대한 온전한 의미 부여도 가능할 것이다.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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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모두로부터 배제된 역사 되찾아야

민족해방투쟁의 역사,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남과 북 모두로부터 배제된 역사를 온전하게 받아 안는 것 또한 1987년 체제를 완성하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사회당이 올해 여름 지리산 생명평화역사 순례를 떠나 지리산에서 100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혁명가 이현상의 진혼제를 지낸 것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그간의 촛불항쟁은 국민주권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보여주었다. 이제 그 범위는 더욱 넓어져 역사의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남과 북 모두로부터 배제된 역사를 우리가 품어 안는 것은 이를 위한 소중한 출발이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은 제각기 서로의 영토를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하며 치열한 정통성 확보 경쟁을 해왔다. 북한의 경우 반종파투쟁 과정을 통해 김일성계의 항일무장투쟁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 계보를 마련해 나갔다. 한국전쟁 직후의 남로당계 숙청과 그 뒤를 이은 연안파, 소련파 등의 숙청은 그 출발이었다.

나아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혁명전통을 체계화하고 이를 이론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결과 김일성계의 항일무장투쟁 세력만이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 배타적 정통성을 담지한 주체로 신격화되었다.

김일성계의 항일무장투쟁은 분명 해방 이전 우리 민족해방운동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배타적 정통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며 날조다. 남쪽의 이승만과 김구 세력 또한 마찬가지로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할 위치에 있지 않다.

남과 북 모두 정통 족보를 만들고 이에 집착하는 일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 편협한 족보가 있어야만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는 국가는 그 뿌리가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땅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역사가 소중하게 여겨지고, 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 민주주의운동의 과정에서 피흘려 싸운 모든 이들의 역사가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역사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배타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 다만, 열린 역사 공간을 통해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려 애쓴 이들에게 정당한 평가가 내려져야 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건국절, #광복절, #이승만, #김일성,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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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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