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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의 시간, 잡힐라!
▲ 손가락에 앉은 잠자리 쉼의 시간, 잡힐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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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로 잠못 이루던 날들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몸이 즐겁다고 아우성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가을을 이젠 몸이 느낀다.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름날과는 달리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 단잠을 잔 탓이리라.

열대야가 시작되면서 밤이 두려웠다.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땀이 간지럽히며 잠을 깨우면 다시 잠을 자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밤새 돌아가는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 나오니 선풍기라는 이름 대신 '열풍기'라는 이름을 붙여주어도 될 만큼 무더운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곡식이 익으니 그것도 감사해야지 하면서도 들려오는 소식들마다 울화를 치밀게 하는 것들이니 여름 내내 감사를 잊고 살았다. 감사를 잊고 살아온 만큼 마음도 퍽퍽해졌다.

잠자리가 손가락에 앉으니 기분 참 좋다.
▲ 손가락에 앉은 잠자리 잠자리가 손가락에 앉으니 기분 참 좋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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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날을 잡아 시골을 찾았다. 잠자리들이 먼저 반긴다. 잠자리를 잡아 달라는 막내의 요청에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잠자리를 잡았다. 잠자리들이 쉴 곳을 찾아 헤매다 머리 위에 앉는다. 혹시나 해서 손가락을 들어보니 오래지 않아 잠자리들이 앉는다.

시골 촌놈들이니까 가능한 일인가 보다. 언젠가 휴가철에 강남터미널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었다. 모기가 얼마나 기승인지 몰랐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지, 도시에 살면 사람뿐 아니라 곤충들까지도 약삭빠르게 진화하는가 보다 싶었다.

촌스러움, 나는 그것이 좋다. 약삭빠르지 않아도 그냥저냥 나인듯 너인듯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촌이요, 자연이 들려주는 온갖 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촌이 아닌가. 컴퓨터 자판에만 익숙해 있던 손가락이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 모니터에만 익숙했던 눈이 잠자리의 날갯짓을 쫓아다니는 것, 저절로 나오는 미소, 이 모두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 못생긴 수확물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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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자리들과 유희의 시간을 갖고, 밭을 둘러보니 자본주의적인 세상에서는 도저히 상품가치가 없는 못생긴 것들이 수줍게 풀섶에 숨어있다. 참외, 오이, 토마토, 수박. 모두 돈을 주고 산 것과는 다른 맛이다. 덜 달지만 어릴 적 혀에 각인되었던 그 맛을 간직하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 진화도 퇴보도 아닌 그 맛을 지키는 것이 존재한 것이 아니런가.

오랜만에 풀떼에 물든 손가락이 좋아라 한다. 손톱에 까많게 낀 풀떼와 흙이 도시인의 손이 되어 버린 추한 손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내가 바쁘다고, 세상사 힘들다고 불평하면서 살아갈 때에도 그들은 천천히 불평하지 않고 자라주었다.

그 작은 씨앗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간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겁도 없이 손가락에 앉아 쉬는 어리숙한 잠자리, 시장에다 내다 팔 수도 없는 못생긴 것들, 누가 기르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란 풀들, 그들과 씨름하다 보니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들이 나를 정화시킨다. 긴 한숨을 내쉬며 '이제 살 것 같다!'고 소리친다.

어느새 가을, 가을만 같으면 참 좋겠다.


태그:#가을,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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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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