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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을 찾았다. 처음부터 목적이 있어서 찾은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순창으로 향하게 되었고, 마침 순창 장날이었다.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농촌의 현실에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외였다. 아직도 재래시장은 살아 있었다. 옛날처럼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지만, 활기는 넘치고 있었다.

꽃봉오리
▲ 꽃무릇 꽃봉오리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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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닷새 만에 서는 재래시장은 생활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던 5일장은 소통의 광장이었다. 삼천리금수강산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이고 애환과 그리움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였다. 딱히 볼 일도 없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찾는 친밀한 곳이었다.

순창장에는 많은 물건들이 나와 있었다. 생선을 비롯하여 수박도 있고 각종 잡화도 있다. 등짐장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세월 따라 장사하는 분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보따리나 등짐은 찾아볼 수가 없고 물건을 가득 싣고 있는 트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동하기 쉽게 자동차가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이다.

"야! 꽃무릇이네."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분명 꽃무릇이었다. 활짝 꽃을 피워내지는 못했지만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밀고 있는 꽃대는 틀림없었다. 꽃과 이파리가 만날 수 없다고 하여 상사화라고도 하는 꽃이다. 꽃을 피워 내려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날씬할 수가 없었다. 벌써 사랑의 꽃이 피어날 때가 되었다니, 놀랄 뿐이다.

노란 국화
 노란 국화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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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꽃무릇만이 아니었다. 노란 국화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고 다른 화초들도 한껏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조우하게 된 예쁜 꽃들은 그 동안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무엇이 그렇게 숨가쁘게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꽃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블랙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면 처음 마시게 되는 사람은 인상을 찌푸린다. 커피 특유의 쓴 맛의 결과다. 커피의 쓴 맛이 지나치게 되면 커피의 맛을 망치게 된다. 더는 마실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쓴 맛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커피의 깊은 맛을 더 깊게 해준다. 쓴 맛이 있기에 커피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순창장을 돌아보면서 커피의 쓴 맛을 생각하게 된다. 쇄락해지고 있는 5일장은 우리의 삶을 삭막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커피의 쓴 맛이 너무 지나친 것처럼 생활의 여유를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순박하고 단아한 시장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히 볼 일이 없어도 시장을 찾는 이의 여유가 필요한 때다.

아름다운 사람들
▲ 순창장 아름다운 사람들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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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서두르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친구 따라 시장가는 사람을 놀리면서 살아왔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다가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잃어 버리고 있었다. 어리석어서 볼 일이 없어도 시장에 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친구 따라 강남도 갈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할지 않을까?

탈무드에 보면 늙음을 재촉하는 요소로 4 가지를 들고 있다. 두려움과 노여움이 주름살을 늘게 하고 아이와 악처가 더 빨리 늙어가게 한다고 하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다.

아집이 커진다든가 속이 좁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노탐이라고 했던가? 패배 의식에 젖어서 비교하는 마음을 앞세워서 자신을 학대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 속에 계발되지 않은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게 되면 내면의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내재되어 있던 천재성에 스스로 감동하게 된다.

여유
▲ 삶의 멋 여유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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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쓴 맛이 그 맛을 더욱 더 깊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가꿔가야 한다. 재래시장의 멋을 될 살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잃어 버린 멋과 낭만을 되살린다면 꽃무릇의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피어나는 인격의 향에 취하여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 사람의 향에 젖어들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순창읍 장에서



태그:#오일장, #순창, #순박, #멋,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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