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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바람 흩뿌리고 지나간 처서(8.23) 다음날, 날씨가 이리 싹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금세 선뜻선뜻 아랫도리가 저려오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습니다. 더위에 헉헉댄 게 엊그제인데 긴 팔을 걸치고 가을 마중을 떠납니다.

시골집엔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산 밑에서부터 앞마당까지 많은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시골로 귀농해 해마다 몇 그루씩 심은 나무들이 집을 에워싸 동무처럼 숨을 쉬고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동그랗게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오늘 김장배추 모종을 내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데 나무들이 너무 무관심하다며 자꾸만 가까이 오라 손짓을 해댑니다. 대추, 배, 능금, 사과, 감나무엔 벌써 가을향기가 그득합니다.

대추의 청년기-녹색시대
 대추의 청년기-녹색시대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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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탱탱 살이 오르고 여물기 시작하면 세 번이나 색이 변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말복이 지나면 녹색이다가 가을이 열리면 녹황(綠黃)색으로 서서히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 가면 다갈색으로 숙성을 합니다.

녹색과 다갈색 사이에 대추알 보기를 좋아합니다. 녹색은 어딘가 좀 미숙한 맛에, 다갈색은 삶을 끝낸 종착역을 보는듯한 완숙함 때문에 녹황색이 마음에 듭니다. 사람도 세상을 살면서 인생을 즐길 나이가 중년이듯, 대추도 미숙과 완숙 사이에서 서서히 다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에서 다가서는 초가을을 맞이합니다.

대추의 중년기-녹황색 시대, 대추 한 알 입안에 '톡'하면 달착지근한 맛이 혀를 녹입니다.
 대추의 중년기-녹황색 시대, 대추 한 알 입안에 '톡'하면 달착지근한 맛이 혀를 녹입니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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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갈색 생 대추 한 알을 입안에 ‘톡’ 집어넣습니다. 구슬을 굴리듯 빙빙 돌려 아삭아삭 씹어봅니다. 혀에서부터 입천장을 돌아 나오는 달착지근한 맛에 그만 가을기운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온 몸으로 실감합니다.

가을을 달고 오는 사과
 가을을 달고 오는 사과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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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그리움으로 옵니다. 대표적인 과일이 ‘사과와 능금’입니다. 오늘 보는  능금은 수줍은 새아씨처럼 얼굴이 발그레합니다. 토실하게 살이 오른 그의 볼에선 가을 향기가 솔솔 피어오릅니다.

그는 그리움에 산다.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이 아쉬운 자리에는
 시시각각의 그의 충실만이
 익어 간다.
 보라.
 높고 맑은 곳에서
 한결같은 애무의
 눈짓을 보낸다.

 놓칠 듯 놓칠 듯 숨 가쁘게 
 세월도 알 수 없는 거기
 푸르게만 고인
 깊고 넓은 감정의 바다가 있다.
 우리들 두 눈에
 그득히 물결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가 있다.
 -김춘수 <능금> 전문

능금의 실체는 '그리움'이다.
 능금의 실체는 '그리움'이다.
ⓒ 윤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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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의 실체는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은 능금의 빛깔과 향기로 가까이 다가와 축제처럼 찬란하고 흐뭇한 충족감을 안겨줍니다. 능금은 가을의 시작과 더불어 높고도 숭고한 곳에서 은총과 사랑으로 결실을 완성합니다. 능금의 내면엔 한없이 넓고 시원한 감정의 바다와 그리움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전원생활' 북집 '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북한강 이야기'를 찾아오시면 구리운 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대추, #사과, #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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