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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인가 보다. 번잡한 대구 동성로를 절친한 친구 희와 함께 걸었다. 당시에는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남자들이 머리를 기르면 장발이라고 하여 검문을 받고 경범죄로 취급을 받는 그런 웃지 못할 시절이었다.

 

하도 오래 전이라 어느 계절인지는 생각이 나질 않으나, 희와 나는 겁도 없이 아슬아슬한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동성로의 한 약속 장소로 가고 있었다. 나는 곧잘 미니스커트를 입었었지만, 희는 퍽 얌전한 성격이어서 그날 처음으로, 그것도 내가 강제로 입히다시피 하여 미니 스커트를 입은 것이었다.

 

그 날은 희가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어서 송별회를 하려고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우리는 그 당시에는 대구에서 두 개 밖에 없는 대구 백화점과 동아 백화점을 들러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참을 재잘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한 순간 옆이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어 돌아보았더니 희가 저만치 가고 있었다.  맘에 드는 물건이라도 발견했나보다 하고 내가 보던 물건을 마저 보고 희에게 가려고 하는데 희가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 화장실과 매장을 다니며 찾아보아도, 길거리에 나가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혹시 나와 길이 엇갈려 모임 장소에 혼자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단숨에 약속 장소로 달려갔으나 희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를 보자 ‘왜 혼자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 거리며 대충 둘러대고 초조한 마음으로 ‘설마 오겠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야? 저를 위한 송별회 자린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통행금지가 있었다. 그런 고로 요즘과는 달리 아홉시만 되어도 한밤중이었고 아무리 재미있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열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날 모인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인공 없는 모임이 재미있을 리도 없거니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그 상황을 어떤 친구는 불쾌해 하기까지 하면서 하나 둘 자리를 뜨고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둘이서 그래도 혹시나 올지 모르는 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기다리던 친구가 갑자기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맥주를 권하며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자꾸 했다.

“너 희한테 나에 관한 얘기 뭐 들은 거 없어?”

“아니.”

“얘기 해 봐, 내 니한테 들었다는 말 안 할게.”

“아니, 없어.”

“에이 했잖아, 니들은 못하는 얘기가 없다는 거 내가 다 알고 있어.”

 

나는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고는 불쾌하기도 해서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후, 희가 집으로 찾아 왔다. 앞산 공원엘 가자고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상당히 화가 나 있어 보였고, 직감적으로 ‘야무지지 못한 희가 어제 그 친구의 술수에 말려들었구나’ 싶었다. 예상대로였다. 대뜸 희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졌다.

 

“니 그 거밖에 안 되나? 니를 믿은 내가 빙신이제.”

“뭔 말인데? 천천히 자세히 얘기해 봐라.”

“니 내가 얘기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하고 한 얘기 갸한테 다 했다며?”

“아이다 안 했다. 니가 하지 말라고 안 해도 난 그런 얘기 내가 부끄러워서 몬한다.”

“뭘, 니한테 다 들었다카면서 나를 딱아세우는데 내가 쥐 구멍에라도 드가고 싶었다. 니는 이제 내 친구 아이다.”

 

그 길로 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만나 주지를 않으니 사실대로 말 할 기회도 없었다. 희가 캐나다로 떠나는 날짜는 자꾸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희의 집으로 찾아 갔다. 전화를 하고 가면 ‘오지 마라’고 할까봐 그냥 갔더니 외출 중이었다. 무작정 기다렸다.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서야 희가 돌아왔다.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먼저 왜 그 날 그렇게 사라졌는지를 물었다. ‘우울증’이라고 했다. 나는 우울증이 뭔지 몰랐다.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기분이 가라 앉고 의욕도 없으며, 만사가 귀찮은 것이라고 했다. ‘우울증’이 큰 병이란 것을 나는30년 전에 경험한 셈이다.

 

차라리 그 날 밤을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좋을 일을 나는 저지르고 말았다. 뜻밖에도 희는 ‘차라리 니가 인정을 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바보 멍청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내 정신 세계는 어디로 가고, 친구와 원수지는 것이 무서워서, 떠나는 친구와 풀고 싶어서, ‘아닌 것을 기다’고 거짓으로 인정을 했고, 그 친구는 나의 진심을 오늘도 또 내일도 모른 채 그냥 시시한 친구로 나를 알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희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울고 싶다. 땅을 치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다. ‘너를 잃을까봐 거짓말을 했노라’고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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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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