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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랑헌 아래 터 다목적 창고와 목공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터이다
시랑헌 아래 터다목적 창고와 목공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터이다 ⓒ 정부흥

안전사고는 대부분 무지와 방심에서 오는 인재(人災)

"여보! 제발 정신차려봐!"

내가 후진 기어를 넣어놓은 상태로 주차한 덤프트럭을 일에 지친 집사람이 운전석으로 올라가지 않고 밖에서 운전석 의자에 엎드린 채 시동을 걸자 자동차가 뒤쪽 석축을 들이받고 시동이 꺼지면서 멈춘다.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져 망연자실 정신을 놓아버린 집사람을 부추기면서 지르는 나의 외침이다.

만일 내가 전진 기어를 넣어놓고 주차했다면 집사람은 자동차에 매달린 채 시랑헌 아래 도로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시랑헌 아래 터에서 도로까지는 차와 같이 굴렀다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경사와 높이이다. 등에 식은땀이 후줄근히 베어난다.

"일오를 시랑헌에 묻고, 자네마저 시랑헌에 묻어야한다면, 저주스런 내 자신을 어떻게 주체할꼬!"

트럭은 기어가 수동이기 때문에 경사진 도로에 주차할 때 전진기어나 후진기어를 넣어 엔진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놓아야 안전하다. 중립기어 상태인 트럭의 손 브레이크가 풀리면 대책 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전전 주말에 시랑헌 앞길에 집사람이 세워둔 트럭의 손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차가 아래 터까지 굴렀다. 다행히 인사사고는 없었지만, 타이어를 포함해 하체를 거의 전부 교체해야만 했다. 2주일간 수리 후, 어제 시랑헌에 오면서 차를 찾아왔다. 그 전에도 한번 손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바퀴가 집사람 발가락을 넘고 지나가 발톱이 빠지는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 사고 뒤에는 집사람은 손 브레이크를 온 힘을 다해서 당겨 놓는단다.

엔진브레이크는 왜 작동 시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끔 사용하지만 요즈음에는 손 브레이크만 사용했단다. 집사람은 운전을 안전하게 잘한다. 운전경력도 25년이 넘는다. 면허증 시험도 수동식으로 치렀고 우리의 첫 자동차도 수동식이었지만, 지난 20여년은 자동식 승용차만 사용해왔다. 자동차 구조나 작동원리를 남자들 같이 꿰뚫고 있지 않다면 습관대로 행동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작년 추석 연휴 때부터 거의 매주 시랑헌에 다녔으니까 지금까지 50여 차례 시랑헌을 다녀왔다는 얘기이다. 크고 작은 사고나 시행착오 횟수가 50번이라면 매주 사고가 났다는 셈이 된다. 험한 돌일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고장 나는 굴착기,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는 연못의 무너진 석축, 3번씩 다시 공사를 했던 배수로, 석축 돌과 돌 사이 텅빈 공간, 추락위험지점의 방어벽 설치, 산사태가 난 경사면, 고사한 묘목들, 일주일이면 다시 완전히 원위치 되어버리는 잡초들, 끝이 없다.

무너진 연못 주변의 석축들 아직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치 중이다.
무너진 연못 주변의 석축들아직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치 중이다. ⓒ 정부흥

물의 흐름을 잡기 위한 배수로 3차례 재시공을 했지만 아직도 문제를 안고 있다.
물의 흐름을 잡기 위한 배수로3차례 재시공을 했지만 아직도 문제를 안고 있다. ⓒ 정부흥

무지(無知)에 대한 대안(代案)

나는 목덜미가 까맣게 그을린 시골 할아버지, 집사람도 이제는 시골아낙네 풍이 완연하다. 저녁에는 서로를 보고 쓴웃음을 짓지만, 한편으론 육체의 욕구에 충실했던 과거 아니 지금도 떨칠 수 없는 탐욕이지만 그래도 한발짝 비켜서 있는 자신들이 대견하기도 하다. 

요즈음은 정신적인 성장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매달 5~6권의 독서와 매일하는 뇌파진동, 선명상(禪瞑想), 백팔배 수련이 뒷받침이다. 상상할 수 모든 일들은 실제로 나와 집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다보면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고 비워진 자리에 지혜가 자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집중력이 필요한 목공작업을 수행으로 생각하나 집사람에게는 전동공구들이 아직까지 무서운 흉기들이다. 전 주에는 농사일과 산일은 틈틈이 하기로 하고 다시 겨울이 오기 전에 오두막 시랑헌의 몰딩과 처마 밑을 막는 일을 끝냈다. 휴식공간 확보을 위해 7~8평 규모의 목조주택과 창고를 짓기 위한 작업공간을 만들기 위해 대형천막을 설치하였다.

작업장 기초 주춧돌 수평을 잡고 간격을 맞추고 버팀목을 지지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작업장 기초주춧돌 수평을 잡고 간격을 맞추고 버팀목을 지지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 정부흥

작업장과 작업대 천막이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막상 설치하고 나니 쓸만하다
작업장과 작업대천막이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막상 설치하고 나니 쓸만하다 ⓒ 정부흥

목공작업일은 주로 전동공구를 사용한다. 일을 하다보면 집사람도 같이 해야 할 경우도 많이 생기고 실제로 시랑헌 오두막을 지을 때는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사용했다. 내가 모르니 집사람에게 안전수칙을 알려줄 수 없었다.

특히 목수용 간이 테이블쏘(Table Saw)로 대형 합판을 자르는 작업도 두려움 없이 했다. 톱날이 걸리고, 튀고, 열 때문에 타버린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요즈음 공방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그 때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었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연결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고사(告祀)를 모시는 마음

8월 한달 동안에만 300만 원 이상이 순전히 사고 처리 비용으로 지출되었다. 나의 무지와 무모의 합동작품인 인위적인 사고와 시행착오들을 돌이켜 본다. 고사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 한계를 인정하는 겸허한 마음을 바탕으로 미처 알지 못하는 세계에 관한 일을 천지신명께 도움을 청하는 겸손한 의식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낮추지 않고 모시는 고사는 무의미하다. 오만에서 비롯된 시행착오나 사고를 충분히 줄이거나 없애고 싶다면 안에서 우러나는 지혜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러한 지혜는 자연과 나는 일체이며 같은 운명체로 연결되어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자연, 즉 우주의 섭리인 천지신명과 의식을 같이 해야겠다.

이번 주말 시랑헌에 도착하면 고사를 지내려고 한다. 집사람이 팥시루떡과 몇 가지 과일 탕, 나물, 그리고 식혜와 갓 담근 김치를 준비할 것이다. 사업의 번영을 위한 바람이나 출세를 위한 기원도 아니니 돼지머리나 장수를 기원하는 실타래 같은 것은 올리고 싶지 않다. 술은 원래 천상의 음식으로 신성하게 여기나 그보다는 우리의 암반수로 정갈하게 우려낸 녹차를 올리고 싶다. 지난주까지 세 차례 주말작업을 하여 완성한 작업장과 작업대를 고사장소와 고사상으로 사용해야겠다.

나는 간절한 발원문을 준비할 것이다. 나와 집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고자 간절한 원을 세웠다는 것과 이를 위해 사랑을 이해하고 행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자 한다는 내용을 고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겪은 크고 작은 사고와 시행착오는 오만과 무지의 탓임을 고하고 깊이 참회해야겠다.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쉽게 이루어지길 바라지 않으나 감당할 수 없는 큰 사고는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어 큰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시도록 빌어야겠다.

영적 성장과 요양을 위하고 이승을 떠날 때 필요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한 청정한 도량을 위한 소박하지만 정성이 깃든 고사가 됐으면 한다. 이번 고사를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 아는 혜안(慧眼)을 뜨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


#고사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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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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