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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2호선을 벗어난 길은 구불구불거리며 한적한 58번 지방도로를 달린다. 길옆에는 도예원이니, 야생화니 하는 분위기 있는 집들도 보인다. 경치 구경하면서 갈려고 하는데 앞서 가는 차는 내차보도 더 서서히 간다. 깜빡이를 켜면서 먼저 가라고 한다. 배려를 해줘서 고맙긴 한데, 나도 경치 구경하면서 서서히 가고 싶다.

 

하늘은 벌써 높아만 가고, 바람은 시원한 기운이 묻어난다. 여전히 더운 날씨. 아스팔트 옆으로 펼쳐놓은 고추가 바짝 말라간다. 구불거리던 길은 불재를 넘어서니 낙안의 넓은 들이 진한 초록빛으로 펼쳐 놓았다. 가게에 들러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산후 낙안온천 앞에 주차를 한다.

 

 

금전산(金錢山, 전남 순천시 낙안면 소재, 667.9m). 오늘 산행은 금강암 올라가는 길로 들어서서 정상을 지나 궁글재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낙안온천 길 건너 금강암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산길로 올라서니 하늘이 보이는 뜨거운 산길이다. 키 작은 소나무와 싸리나무 등이 키 높이로 자라고 있는 산길. 아직 떠나지 않은 여름 햇살이 무섭게 공격을 한다.

 

재형이는 무척 힘들어 한다. 아마 산에 간 지가 꽤 오래됐지?

 

"땀도 많이 나고 힘들어 죽겠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시작부터 불만에 찬 시위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길은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쩌니….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뜨거운 햇볕과 싸우며 올라간다. 자꾸만 물을 찾게 되고 자주 쉬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오이 맛을 알어?

 

앞서 가던 세림이가 가지마다 동그란 뭉치를 달고 있는 풀을 보고 묻는다.

 

"이게 뭐예요?"

"오이풀. 오이냄새가 나서 오이풀이라고 한단다. (풀잎은 따서 반으로 쪼개면서)냄새 한 번 맡아 볼래. 오이냄새 나니?"

"오이 냄새가 뭔 줄 모르는데?"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오이를 안 먹어 봤을까?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호랑나비는 알까기에 열심이다. 바둑돌 알까기가 아니라, 초피나무마다 다니면서 알을 하나씩 붙이고 다닌다. 호랑나비는 주로 가시가 있는 초피나무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식성이다. 나도 초피나무를 먹는 걸 좋아한다. 돼지고기 쌈할 때 초피나무 부드러운 잎을 넣어 먹으면 향기가 좋다.

 

뒤를 돌아보니 낙안읍성이 보인다. 낙안읍성은 동그랗거나 네모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산에서 보니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쪽 모서리는 각이 져 있고 나머지는 둥글게 쌓았다. 아름다운 곡선미를 살려 놓았다.

 

산장 같은 암자 금강암

 

옆 능선에는 바위들이 아름답게 아래로 흐른다. 산 정상 가까이에는 기암들로 덮고 있다. 커다란 바위를 끼고 돌아 들어가니 계단과 함께 커다란 바위문이 나온다. 극락문(極樂門)이다. 바위에 새긴 글씨가 바위의 기품을 더 살려주고 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바위들로 동굴을 만들었으며 바위틈에서 샘물이 흐른다. 갈증도 심하게 나던 터라, 연거푸 두 바가지를 떠서 마셨다. 물맛이 좋다.

 

 

극락문을 지나니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제법 으슥한 분위기가 난다. 그 길 끝으로 돌담을 만나고 금강암(金剛庵)이 나온다. 암자의 법당은 작은 돌집에 지붕을 쳤으며, 가운데에 법당과 양쪽으로 살림방이다. 밖에서 보면 영락 없는 산장 같은 분위기다. 금강암은 예전에 그런 대로 규모가 있는 절집이었으나, 폐사됐다가 최근에 작은 법당을 지었다고 한다.

 

스님은 밖에서 등산객과 이야기 중이다. 암자를 호위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뒤로 돌아가니 자연석조여래좌상이라는 팻말이 있다. 바위 위 물웅덩이가 마애여래좌상을 그려 놓고 있다. 잘 쌓은 돌탑이 서있고 커다란 바위에는 마애불을 새겨 놓았다.

 

애들은 밥 먹자고 시위다. 암자 근처에서는 밥을 먹을 수 없다고 하니 막무가내다. 먼저 길을 잡고 올라서니 시위를 하면서 따라온다. 올라갈수록 마땅한 장소가 나오지 않는다. 애들은 더 크게 투덜거린다. 별 수 없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점심이래야 떡, 포도, 복숭아. 그리고 애들이 좋아하는 컵라면. 산행 때마다 보온병에 물을 담아 메고 다니기도 힘들다.

 

오늘 로또 사세요

 

점심을 먹고 바로 올라서니 정상이다. 정상에도 돌탑이 서있다. 옆으로 금전산 정상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멋지게 서있다. 금전산은 부처님의 제자 중 금전비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래도 쇠금(金)자에 돈전(錢)자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금전이 돈을 가리키니 금전산의 기를 받아 복권을 사면 당첨이 될 거라고 했더니 재형이는 순식간에 새로운 주문을 만들어낸다.

 

금전산 표지석을 다섯 번 쓰다듬고, 작은 돌멩이를 탑으로 던져 탑에서 서면 오늘 로또 사야 된단다. 그리고 돌멩이를 던졌는데 정말로 탑 위 돌이 섰다.

 

"아빠. 오늘 로또 사야 돼요."

 

내려가는 길은 궁글재까지 평탄하게 내려선다.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하면서 내려가는 길이 즐겁기만 하다. 궁글재는 해발 500m며, 휴양림까지 1.2㎞라고 알려주고 있다.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재형이는 엄지발가락이 아프다며 힘들어 한다.

 

"아빠, 길 경사가 45도는 되는 것 같아요."

"45도는 더 되겠는데, 한 60도는 되지 않을까?"

"궁글재가 500m고 휴양림까지 1.2㎞니까 어림잡아 45도 되지 않겠어요?"

"길이 직선이 아니잖니. 그러고 휴양림이 해발 0m도 아니고."

 

그래도 대단하다. 이런데서 쉽게 수학을 응용하다니. 경사기 심한 길을 재형이는 수학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주변 사물을 관심 있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싶다. 사실 눈으로 보면 대충 감이 잡히는 것도 어렵게 풀어가게 만드는 게 공부가 아닌가 싶다.

 

막바지 힘들게 내려온 길 끝에는 휴양림이 있다. 휴양림에는 수영장도 있다. 세림이는 수영하잖다. 하지만 여벌의 옷이 없다는 거. 그냥 물 구경만 해라. 잔디밭에 앉아 남은 포도와 복숭아를 달게 먹었다. 풀밭에는 귀뚜라미들이 놀라서 뛰어 나간다.

덧붙이는 글 | 산행거리는 정상까지 1.74㎞, 1시간 반정도,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은 2.4㎞, 1시간 반 정도. 총 산행거리 4.14㎞, 3시간 정도 소요. 애들과 함께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음. 휴양림은 산림청에서 운영하고 수영장도 있다. 산 아래 금둔사가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이 있다.


태그:#금전산, #금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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