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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성시청 현관엔 오후 4시 30분만 되면 누군가 나타난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진열하고는 사라진다. 퇴근하는 오후 6시까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둘 자기 돈을 내고 그 물건들을 사간다. 물건의 질과 상태를 물어볼 수도 없다. 각자가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보고 알아서 사간다. 무인판매대라도 진열된 물건과 회수된 금액의 비율은 95% 이상이다. 이정도면 대성공인 셈.

 

알고 보니 품목은 채소다. 고추·가지·깻잎·상추 등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비닐로 소포장한 상품 한 묶음에 1000원씩. 파는 사람과 실랑이 할 것도 없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입맛대로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물건의 질이 떨어지느냐. 천만의 말씀. 그 채소들은 안성에 사는 노인 19명이 여름 내내 정성스레 가꾼 소위 '무농약' 채소들이다. '무농약' 채소를 어디 가서 이런 값에 못산다는 것을 여기 온 손님들은 다 안다. 거기다가 시골 어르신들의 손길이 닿은 싱싱한 채소라니.

 

사연은 이랬다. 올해 초부터 '노인 일자리 창출, 농촌 소득 배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안성시 농업기술센터(담당 윤성근 계장)에서 발 벗고 나선 것. 안성의 4개소 면단위(보개면·금광면·대덕면·삼죽면)에 사는 노인 회원 중 19명이 선발되어 각 면단위에서 공동 텃밭을 여름 내내 가꾸게 한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의 지도하에 '무농약' 내지는 '저농약' 농법으로 농사를 짓게 한 후 그 소출량들을 전량 농업기술센터에서 책임지고 유통 판매하는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이다.

 

사실 "농촌 살리자, 노인 일자리 창출시키자"라는 등의 구호는 언제나 외칠 수 있다. 그에 따라 파생하는 문제점도 열거하라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이다. 그렇다. 실천이 문제다. 그런 면에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는 아주 타당하다할 것이다. 이런 '천리 길 한 걸음'에 안성에 있는 몇몇 공무원이 나섰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걸음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아주 미미하고 소소한 걸음인 듯 보인다. 윤성근(안성시농업기술센터) 계장과 원예특작 담당 직원들은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윤성근 계장은 올해 9월 1일부터 무인 판매대를 3개소(안성시 보건소 현관, 안성시 여성회관 현관, 공도읍 사무소 현관)를 더 확대할 계획에 있다. 판매 시간도 오후에서 오전과 오후로 확대할 계획에 있다.  그래서 이참에 아예 이름도 안성시청 현관을 '무농약 무인 판매대 1호점'이라고 명명하고, 각각을 '2호점·3호점·4호점'이라고 명명해볼까 하고 준비 중이다. 상설화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올 10월부터 내년에 경작할 노인회를 신청 받을 계획이다. 초반 시행착오를 수정하여 전략도 세웠다. 공무원 중심의 프로젝트 진행에서 철저하게 각 노인회 노인들의 자율적 진행(경작부터 판매까지)을 유도하고,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인 회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적용하여 경작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게하며, 당초 취지대로 될 수 있는 한 일자리가 없는 노인들 위주로 신청 받아서 경영하게 하겠다는 것 등이다. 말하자면 안성시 농업기술센터에선 멍석만 깔아주고 빠지겠다는 계산이다. 시골 노인들의 삶의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며,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해결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요즘 농업은 아시다시피 경작을 어떻게 잘하느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품질의 농작물을 경작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농작물을 어떻게 유통해서 농가 소득을 제대로 올리느냐가 승패의 관건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지금 시행하는 프로젝트는 관민이 어우러져 이루어가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윤 계장은 지금의 부서에 오기 전에 7년 동안 안성시청 농업마케팅 담당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지원해주는 이런 저런 계획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네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란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6일 안성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이루어졌다. 


태그:#노인 일자리 창출사업, #안성시 농업기술센터, #윤성근 계장, #농가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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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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