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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안읍성의 평온한 풍경. 할머니 두분이 나무그늘아래 시원한 가을을 즐기고 계신다.
낙안읍성의 평온한 풍경. 할머니 두분이 나무그늘아래 시원한 가을을 즐기고 계신다. ⓒ 전용호

편안함을 즐기는 마을

낙안(樂安)이라는 지역은 이름 자체로 편안함을 준다. 즐길 '樂' 편안할 '安', 편안함을 즐긴다.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명만큼이나 넓은 들을 품고 있어 넉넉하게 보인다. 먹을 것 풍족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견고한 성을 갖고 있다면 몸도 마음도 편안하리.

매표를 하고 돌다리를 건너면 동문인 낙풍루(樂豊樓)로 들어선다. 남대문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활짝 열어 놓은 문만큼 넓게 느껴진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큰 길이 성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길옆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모자도 써보고, 공예품도 만져보고, 군것질도 한다.

기념품 가게 걸음을 멈추고서 이것 저것 만져보면서 구경을 한다.
기념품 가게걸음을 멈추고서 이것 저것 만져보면서 구경을 한다. ⓒ 전용호

목공예 체험 나무조각에 색칠을 하는 체험이다. 한번에 만원. 그리고 색칠한 거 가져가기. 애들은 무척 즐거워 한다.
목공예 체험나무조각에 색칠을 하는 체험이다. 한번에 만원. 그리고 색칠한 거 가져가기. 애들은 무척 즐거워 한다. ⓒ 전용호

나무 조각 색칠체험

쉬엄쉬엄 걸어가는 길은 사람 사는 냄새가 잔뜩 난다. 읍성 한가운데는 장터가 있고 식당에서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으로 윷놀이 판이 한창이다. 대장간에서는 낫을 갈고 있고, 목공예 체험장에서는 애들이 빙 둘러서 나무조각 색칠이 열심이다.

300년 이상된 은행나무 무척 크다.
300년 이상된 은행나무무척 크다. ⓒ 전용호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랴. 세림이는 체험한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럼, 우리는. 참 무료하다. 가게 마루에 앉아 300년을 지키고 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쳐다본다. 나무 꼭대기에 연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일부러 달아놨을까? 궁금하지만 알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연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나름대로 시선을 붙잡을 수 있으면 족하다.

세림이가 색칠한 잠자리는 더듬이도 없고 다리도 없다.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어색하고 기형적인 모습이다. 몇 % 부족하다. 애들은 완성된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데 어디 잘못된 부분부터 찾아내는 어른들이 계산적인 시각에 허전함을 느낀다.

칼로 나무를 깎아 보고 싶어요

다시 큰길로 나와 구경하다가 재형이는 손으로 돌려서 날리는 대나무 장난감을 산다.

"예전에는 직접 만들어서 놀았는데."
"나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칼은 쉽게 다루는 게 아니야. 아빠가 어렸을 때는 매일 연필을 깎아서 칼 다루는 법을 알지만, 지금은 칼은 쓰지 않잖아."
"나무 장승을 깎아 보고 싶은데."
"다음에 산에 가면 나무 잘라서 만들어 보자."

자꾸 약속만 하는 것 같아 다음에 산에 가면 톱을 가져가야 할까 보다.

전통가옥 체험장 다듬지질도 해보고 투호도 해보고. 애들은 신났다.
전통가옥 체험장다듬지질도 해보고 투호도 해보고. 애들은 신났다. ⓒ 전용호

큰길 옆에 있는 전통가옥 체험장에 들렀다. 방 안에는 아저씨가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다. 관광객들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가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잘 수 있다니. 뒤뜰에는 조랑말이 하품을 하고 있다. 애들은 삿갓도 써보고, 다듬이질도 해보고, 가마도 타본다.

성벽을 걷다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이고

큰길이 끝나는 곳에는 서문이 있고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성벽에 올라서니 생각보다 넓다. 성벽에는 사위질빵과 하늘타리 꽃이 은근한 웃음을 보내고 있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면 계단이 나온다. 낙안읍성 초가지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우리나라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으랴.

낙안읍성 풍경 너무나 유명한 풍경. 나도 한장면을 간직해 본다.
낙안읍성 풍경너무나 유명한 풍경. 나도 한장면을 간직해 본다. ⓒ 전용호

살아가는 풍경 주민들은 관광객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텔레비를 즐기고 있다.
살아가는 풍경주민들은 관광객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텔레비를 즐기고 있다. ⓒ 전용호

성벽에서는 집안 풍경이 고스란히 보인다.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는 아저씨.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 관광객. 낙안읍성에 오면 자기도 모르게 기웃거리게 된다. 그리고 집 안에 사는 모습이 궁금해진다. 관음증일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익숙해서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된다.

집을 경계 짓는 담 사이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을 한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있는 옛날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담장 밑에 피어난 맨드라미며 봉숭아는 너무나 정겹기만 하다.

정겨운 돌담길 아름다운 돌담길이 들어오라고 유혹을 한다.
정겨운 돌담길아름다운 돌담길이 들어오라고 유혹을 한다. ⓒ 전용호

대나무 대문 문을 밀고 들어가면 안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대나무 대문문을 밀고 들어가면 안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 전용호

갇히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마을 가운데는 커다란 돌담으로 둘러친 옥사가 있다. 애들은 신이 났다. 애들도 역시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가 보다.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히는 피동적인 상태를 은연 중에 상상을 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즐기는 것일까? 애들은 번갈아 가면서 형틀에 누워본다. 그리고 옥사에도 들어가 앉아 본다. 마치 죄수처럼 시선을 놓은 듯 연기를 하고 있다.

옥에 갇혀 보기 재형이는 옥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갇혀있는 죄수의 마음을 느껴본다.
옥에 갇혀 보기재형이는 옥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갇혀있는 죄수의 마음을 느껴본다. ⓒ 전용호

형틀 체험 형틀에 누워 곤장 맞는 고통을 상상해 본다.
형틀 체험형틀에 누워 곤장 맞는 고통을 상상해 본다. ⓒ 전용호
"재형아! 너 거기서 하루만 있어라."
"예! 근데, 컴퓨터는 넣어줘야 해요."
"그러면 뭔 재미가 있다냐. 캄캄한 감옥에서 죄수처럼 혼자 있어봐야지."

마을을 가로질러 그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애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타고 있는 애의 부모는 뒤에서 기다리니 그만 타라고 하는데도 계속 탄다고 떼를 쓴다.

사실 애들이 즐거워하면 부모도 즐겁다. 우리 애들도 마찬가지다. 한번 올라탄 그네는 쉽게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들은 조금 더 컸으니 적당할 때 양보를 해라. 사실 나도 그네 타고 싶은데, 어찌 안 되겠니?

낙안읍성을 나와 참나무 장작구이에 저녁을 먹었다. 역시 돼지고기는 두껍게 구워 먹어야 맛있어.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은 입장료가 있으며,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낙안읍성에는 다양한 문화행사 및 체험프로그램이 있으며,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으므로 사전에 낙안읍성 홈페이지(http://www.nagan.or.kr)에 들러보시기 바란다.



#낙안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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