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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자료 사진).
 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자료 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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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대학 친구는 중학교 다니는 아들 둘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변호사라고는 하지만 본인은 썩 넉넉하지 않다고 한다. 어쩌다 자녀들이 뭐를 해달라고 할 때 돈이 없다고 하면, 아이들은 "엄마, 변호사가 그 정도 돈도 없어?"하며 되묻는다고 한다.

친구의 요즘 고민은 자식들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보다 더 넉넉하게 살 것 같지 않은 미래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특권층이 아니고서는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고 걱정스러워 한다. 그렇다고 시류를 좇아 앞뒤 안 가리는 경쟁으로 애들을 몰고 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 미친 짓 하고 있는 거 아녀요?

그런 그에게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애들 친구 엄마로부터 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그저 신세를 한탄하는 넋두리였다.

"우리 이거 미친 짓 하고 있는 거 아녀요?"

학원에 간 딸애를 데리러 나갔다가 잠시 기다리며 하는 전화였다고 한다. 그렇다. 그렇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들 하면서도 되돌아볼 틈도 없이 '어 어?'하며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 나는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친구 부인은 둘째를 낳은 이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애들만 열심히 키웠다. 외벌이다 보니 아껴 써야 했고, 또 굳이 사교육을 시킬 필요성을 못 느꼈다.

지난해까지 유일한 사교육비는 아들인 첫째의 유소년 축구단비 5만 원뿐이었다. 친구는 아들이 자기를 닮아 축구를 잘 한다고 자랑하곤 했다. 당연히 중학교를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치고 난 지금 친구는 아들을 호주로 축구 유학을 보내고 싶어 한다.

소박하면서도 소신껏 사는 친구 부부를 잘 아는 나로서는 의외였다. 운동 잘 하는 애들도 조기유학을 보낸다더니, 아들이 그 정도 수준인가? 그래서 전화할 일이 있어 그 소식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친구는 먼저 돈 걱정부터 했다.

"유학비를 제대로 대줄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등학교까지만 마쳐주면 어느 정도는 살겠지, 뭐."

분위기가 이상하다. 나는 유학을 보내 아들이 축구선수로 대성할 꿈을 늘어놓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런 투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왜 보내려는 거야?"

평소에도 늘 진지한 친구는 이 대목에서 다소 침울하지만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학교에서 말이야, 애들한테 공부를 안 시켜."

여기까지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뭘 잘못 들은양 내 귀를 의심했다. 호주로 축구 유학을 보내는데, 지금 학교에서 공부 안 시키는 걸 불만으로 여긴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친구 넋두리를 들으며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애들한테 기본적인 공부를 시키고 남은 시간에 특기활동을 해야 하는데, 수업을 전혀 안 들여 보내는 거야. 그렇게 커서 축구선수로 성공해도 그렇고 성공하지 않으면 더 그럴 건데 말이야, 그게 잘 사는 거 아니잖아."

한정된 교육예산, 어떻게 써야 할까?

강화읍성 서북쪽에 향교가 있고 그 옆에 강화여중고가 있다. 내가 사는 집도 바로 그 옆이다. 서울에서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보는 게 늘 강화여고의 불 켜진 교실이다. 물론 나도 고등학교 때 밤늦게까지 남아 공부하기도 하고 일요일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 강화여고 학생들은 나보다도 더 열심히 한다. 밤 11시가 넘었을 때도 불 켜진 교실이 여럿 된다. 그리고 드문드문 승용차가 와서 학생들을 태우고 간다.

오래 전부터 그 강화여고와 강화고등학교가 기숙형 공립학교가 될 거라는 말이 떠돌았다. 더 성적이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들 했다. 기숙사가 생기면 멀리서 통학시켜야 하는 부모들 일도 덜어줄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사실 강화읍은 작은 도회지고, 읍 이외의 면 단위에서 다니는 학생들도 꽤 된다.

그렇게 좋은 시설의 기숙사를 만들고, 더 유능한 교사도 배치해서 밤낮 공부를 시키면 공부성적은 당연히 나아질 것이다. 시설 좋고, 교사 유능하고, 또 더 중요한 건 좋은 학생들이 많이 모일 테니 말이다. 당연한 필연 아닐까? 그렇게 해서 똑똑한 빌 게이츠를 몇 만들면 5천만 전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논리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런 밝은 면이 생기면 반대로 어두운 면도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하는 재무설계업의 원칙은 한정된 돈을 자신의 진정한 꿈을 키우는 목적에 맞게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를 따지는 일이다. 이건 학교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자원을 한쪽으로만 몰면 당연히 다른 쪽은 자원이 궁핍해진다. 상대적 박탈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이다.

강화읍에는 공립인 강화고와 강화여고가 있고, 덕신고라는 사립학교도 있다. 서쪽 내가면에는 사립 삼량고가 있고, 남쪽 온수리에 공립 강남종고가 있다. 그리고 강화섬의 중간쯤인 양도면에 산마을고라는 대안학교가 있다. 공부를 좀 하면 강화고와 강화여고를 가고 그 다음 덕신고를 간다. 그래서 사립인 삼량고는 정원 채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산마을고는 한 학년 20명밖에 뽑지 않기도 하거니와 주로 강화 밖 학생들이 지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강화고와 강화여고에 혜택이 몰리면 다른 하위 학교들에 대한 매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잘난 놈에게만 몽땅 밀어주고 특혜를 주며 그 혜택을 받아먹기 위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추세다. 이명박 정부의 극단적인 특혜식 철학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정된 교육예산을 배분하는 권한을 대부분 정치권력이 쥐고 있으니, 세상을 한탄만 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럴 때에도 반대와 더불어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지역 학교 살리기 운동

강화 같은 농촌지역의 심각한 문제는 학생수가 절대적으로 준다는 것이다. 당연히 지역경제도 활력을 잃는다. 도시화가 좋은 것이고 농촌 인구가 더 줄어드는 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런 문제를 논할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고 도시화의 한계가 뚜렷하고, 전 국토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것이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인식이라면, 농촌 경제를 발전시키고 행복한 농촌을 만드는 것과 지역 학교 살리기는 상당한 연관을 갖고 있다.

강화에는 면 단위 초등학교와 중학교 몇이 폐교 위기에 처해있다. 강화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주소를 위장해 강화읍의 초등학교에 다니곤 한다. 강화도라는 군 지역에서도 편중화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100년 역사가 넘는 양도초등학교는 폐교 위기에 이르렀고, 같은 양도면에 있는 조산초등학교는 일반 학생들이 줄어들어 관내에 있는 계명원이라는 복지시설 아이들 비중이 학생 수의 과반을 넘어서 버렸다. 그나마 계명원 소속 학생이 아닌 아이들도 한부모 자녀이고, 조부모 손에 의해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이렇게 교육 현장에서도 양극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그게 효율일까?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선에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국가의 운영방침은 정책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복지혜택과 기회균등이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돈을 한쪽으로 쏟아부어 우수한 학생과 교사 그리고 시설을 밀어주면, 거기서 다른 곳에 비해 우수한 학생이 나오는 것은 필연법칙이다.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십여 년 전 기업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한 일본 기업인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노동자 해고해 비용 줄여 회사 살리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한다(누구에게나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평균주의로 오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려운 지역에 돈을 쓰고 배려를 해서 더 나빠지지 않게 방지하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 하기는 어렵다. 지역 차원의 문제의식이 모여야 하는 것이고, 나아가 교육당국과 지자체들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관이나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다들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뜻있는 지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세금은 더 낮을 곳을 위해 써야 한다

강화에는 면 단위 초등학교와 중학교 몇이 폐교 위기에 처해있다. 강화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주소를 위장해 강화읍의 초등학교에 다니곤 한다.
 강화에는 면 단위 초등학교와 중학교 몇이 폐교 위기에 처해있다. 강화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일부 학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주소를 위장해 강화읍의 초등학교에 다니곤 한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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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역 사람들 모임에서 산촌기숙센터 얘기가 나왔다.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대안학교 모델의 하나로 해왔던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농촌이나 산촌에서 작은 센터를 만들어 교사에 준하는 도우미가 도시 아이들을 받아들여 생활을 하면서 농촌 학교에 다니게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고, 농촌학교 학생 수를 늘리면서 센터 운영을 통해 농가수입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세금을 쓴다면 이런 데다 써야 해."

산촌기숙센터를 소개하던 강화도환경농민회 김정택 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재능과 재력이 되는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여건에서 배우는 것 자체를 막아 획일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또한 불가능하다.

문제는 공적 차원에서 그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화고와 강화여고에 기숙형 학교를 만들 예산이 있다면, 면단위 초중고가 더 나빠지고 학생수가 급격히 줄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먼저 그 돈이 쓰여져야 한다. 민간에서 그런 노력이 있다면 그걸 지원하는 데 쓰여져야 한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시민운동의 성숙이라는 과제로 돌아오게 된다.

"강화 전체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는 집단의지가 필요합니다. 한두 개인이 아닌, 대다수 강화군민의 의지를 모아 한편으로는 스스로 올바른 방향의 실천을 해나가면서, 필요하다면 교육청이나 지자체에 요구할 건 요구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힘주어 말해보지만, 역부족을 느낀다. 히틀러 시대라고 해서, 유신 말기라고 해서, 뜻있는 사람과 생각이 없었을까? 올바른 의지의 결집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독재집단이 몰아붙였기에 그런 어둠의 시절이 있었던 것이리라. 이명박 정부의 소수 특혜집단만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은 시민의식의 보다 빠르고 확고한 성숙을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태그:#기숙형 공립학교, #산촌기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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