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량진역 학원 간판.
 노량진역 학원 간판.
ⓒ 조정래

관련사진보기


지난 26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지역사회의 부족한 교육기반을 강화하고, '돌아오는 농촌학교'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2008년 기숙형 공립고 82개교를 선정 발표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기숙형공립고에 예산을 특별 지원해 줄 뿐 아니라 학생선발과 교육과정 운영, 교사 채용 등에 일반 학교들과는 다른 자율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예산 집중이다. 전체 600개에 가까운 농어촌 고교 가운데 이번에 기숙형공립고로 선정된 학교는 82개로 전체의 1/7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들 학교에 3200억의 예산을 몰아주어 한 학교당 40억에 가까운 예산을 지원받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선정된 82개 학교 중 62개 학교는 이미 농산어촌 우수고로 지정되어 한 학교당 16억 정도의 특혜 예산을 지원 받았다. 이 둘을 합치면 한 학교당 50억이 넘는다.

농산어촌 우수고 육성 사업과 기숙형 공립고에 사업에 배정된 전체 예산은 4500억 정도. 전체 약 600개의 농어촌 학교에 배분한다면 한 학교당 7억 정도가 돌아갈 수 있는 예산이다. 그런데 이를 80개의 특정 학교에만 50억이 넘는 돈을 몰아주기로 한 것이다. 전체 교육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부 학교에 특혜를 주는 것은 대다수 학교를 차별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소위 '제로섬 게임'이다. 어느 한 쪽이 더 많이 예산 지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몫을 뺏어온 것이다. 교과부는 이를 '선택과 집중에 의한 우수고 육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흔히 하는 말로 '약한 아이 왕따 시키기'다. 교육에서 선택과 집중은 특혜와 차별의 다른 이름이며, 차별 대우의 합법화를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 기숙형 공립고 사업이 잘 보여주고 있다.

[묵시록①] '강제된 자살' 초등학교의 폐교 행렬

2007년 12월 교육부와 기획예산처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 초등학교의 1/3이 문을 닫았다. 지역별 폐교 수는 전남이 593개교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북 558개교, 경남 490개교, 강원 388개교 등의 순이다. 이 수치는 이번에 기숙형 공립고 선정 학교의 시도별 배분 숫자와 거의 같다. 이 두 수치의 일치는 함의하는 바가 무척 크다.

농어촌 학교의 폐교는 출산율 감소와 농촌 인구의 감소라는 사회적 현상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자기 집 근처의 학교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고 시설이 좋고 역사가 오래된 인근 학교를 선호해 입학한다.

결국 안 그래도 적은 학생수가 더 적어져 학교 유지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초등학교의 폐교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초등학교의 폐교는 다시 농어촌 인구의 탈출 행렬을 불러오는 또 다른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도 '예산 절감'이라는 이유로 교과부는 사실상 이를 부추기고 강요하고 있다.

'강요된 자살'로 불리는 초등학교의 연쇄 폐교는 기숙형 공립고가 가져올 미래다. 이번에 기숙형 공립고로 선정된 82개 학교는 농어촌 학교 중에서는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선정 학교들의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농산어촌 우수고 육성 사업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던 공립형 기숙학교는 지금도 인근 학교보다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학교에 예산 지원 등 각종 특혜를 부여하는데 나머지 일반 학교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기숙형 공립고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는 사회적 인식은 그 학교로의 진학을 회피하게 되고 이는 또 다시 학생수 감축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초등학교의 폐교 행렬이 고등학교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농어촌 공동체의 완전한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묵시록2] 입시 명문 기숙학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전북 순창의 '인재숙'이라는 공립학원 성공담이 전국 지자체장을 흥분시키고 있다. 국가가 국민 세금으로 성적 상위 학생들만을 위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도 아랑곳 않고 너도 나도 인재숙과 같은 공립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재숙 성공사례가 이야기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순창에서 수십년 만에 서울대 합격'이라는 카피가 그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국 농어촌 지역에서 입시철만 되면 여기저기 나부끼는 현수막의 문구는 년수를 나타내는 숫자와 학교 이름만 다를 뿐 거의 같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서울대 간 학생이 있으면 아파트값이 올라간다면서 자치회나 부녀회 등에서 경쟁적으로 현수막을 내거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것과 같다.

지자체나 주민이 기숙형 공립고에 요구하는 것 역시 농어촌에 있는 학교에서도 서울대와 같은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숙형 공립고는 필연적으로 지방 입시학교, 더 나아가 입시 기숙학원처럼 운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인데 교과부가 내놓은 기숙형 공립고 운영 프로그램 예시안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학습능력 강화, 개인특기 적성신장, 인성과 덕성 함양, 단체의식 함양 등을 명분으로 독서력 배양, 영어능력 배양, 한자능력 배양, 정보능력 배양, 학습심화반 운영, 학습보충반 운영, 1인1악기 연주, 1인1운동 습득, 예절교육 강화, 봉사활동 실시, 내고장 알기 프로그램 운영, 진로상담 강화, 기숙사 축제 실시, 극기훈련 실시, 동하계 캠프 운영, 선배초청강연 등…. 이것이 기숙형 공립고가 아니면 못하는 것들인가?

지금의 학교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을 무슨 특별한 것인 양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지만 이런 것들을 명분으로 기숙형 공립고에 그 많은 예산을 몰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숙사를 운영하면 우수학교라는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논리이다. 기숙형 공립고의 프로그램 내용은 새로운 것 없이 일반고와 똑같은데 특별한 학생들만 뽑아서 특별한 시설에서 특별 관리를 하여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묵시록3] 기숙형 공립고의 전국화와 전면화

0교시 수업이 끝난 교실 풍경. 학생들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0교시 수업이 끝난 교실 풍경. 학생들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 김한내

관련사진보기


이번 기숙형 공립고는 모두 농어촌지역에 소재한 학교들이다. 하지만 뒷부분에 빼놓지 않고 향후에는 사립고로 확대하고, 도농복합 중소도시로 확대할 것이라는 계획을 붙여두고 있다. 우스운 것은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기숙형 공립고 유치를 업적으로 내세우며 선전한 금천고 등 서울 지역의 신청 학교는 모두 선정 학교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농어촌 학교 살리기를 명분으로 내건 기숙형 공립고가 애초 취지대로 유지될 수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당장 사립고들이 공립학교에만 왜 특혜를 주느냐고 따질 것이고 이를 반박할 뚜렷한 명분이 없는 교과부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어 사립고로 확대될 것이다. 이것이 자립형 사립고 확대와 맞물려 평준화는 완전히 해체되고 무한 경쟁 체제로 나아가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똑같은 논리로 왜 농어촌 학교에만 특별 지원을 하느냐는 문제제기가 지방의 중소도시와 대도시의 외곽지역을 경유해 서울로 입성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행보가 이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결국 농어촌학교 살리기에서 시작한 기숙형 공립학교는 입시명문 기숙학원의 전국화와 전면화의 첨병으로 나설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 되지 않으려면

기숙형 공립고가 '있는 놈 더 주고 없는 놈은 버리기'가 되지 않으려면 학교 다양화라는 포장 속에 숨겨진 학교 차별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기숙형 공립고 선정에 대한 1차적인 반발인 '그럼 미선정 학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라는 물음에 교과부가 "보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들 학교에 대해서는 시도교육청과 협의하여 학교특색살리기 사업, 교육환경개선사업, 연구학교 선정 등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다각적인 지원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미선정 학교에 대한 지원책은 아무런 알맹이가 없다.

농어촌 학교와 농촌 살리기라는 명분에는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도리어 농어촌 학교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나아가 입시 명문 기숙학교의 전국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자립형 사립고 확대 등과 결합되면 우리 공교육의 전체 틀을 뒤흔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어촌 학교 살리기는 농어촌 학교의 도시 학교, 강남학교 따라 하기가 아니라 농어촌 학교만이 잘 할 수 있는 특색을 살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잘 나가는 학교에 더 많이 밀어줄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열악한 학교에 더 많은 것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소수의 몇 개 학교에 집중해서 농어촌교육을 살리자는 기숙형공립고 설립 정책을 중단하고 농어촌의 모든 학교를 살리는 것을 고민하는 농산어촌학교특별법을 제정부터 고민해야 한다.


태그:#기숙형공립고, #자립형사립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