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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남국선원의 대웅전이다.
대웅전남국선원의 대웅전이다. ⓒ 장태욱

 

내가 다니는 교회는 개척한 지 8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교회다. 나는 그 교회가 개척하자마자 적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난 내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를 통해서 한 교회가 개척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 교회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교인은 거의 없었다. 목사님 내외분을 제외하고는 예배에 참석할 사람이 나밖에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황이 그랬던 지라 나는 차마 예배시간에 교회 자리를 비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끔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우리 교회로 옮겨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종국에는 분탕질만 일삼다가 교회에 대놓고 욕을 하고 떠나기 일쑤였다. 이런 부류의 신자들이란 대부분 세상에서 자신이 이룩해 놓은 성과들을 자랑할 목적에서나, 세상에서 성취하지 못한 사회적 지위를 교회를 통해 보충할 목적으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다.

 

그런 와중에 신자들이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8년이란 세월을 보내니, 교회가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교회에 체계가 생겨나고, 교회에 잠시 들러 분탕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가슴 졸이며 교회의 예배를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왔다.

 

8월 마지막 일요일인 31일에 난 8년 만에 처음으로 교회 예배에 빠졌다. 새벽에 일어나 길을 나서는 나에게 아내가 물었다.

 

"아침 일찍 어딜 갑니까? 그리고 오늘 예배에 기도 담당이란 건 기억합니까?"

"오늘을 교회에 못 갈 거야. 기도는 장로님에게 순서를 바꾸자고 부탁했고."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예배를 다 빠집니까?"

"예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만에 사찰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해. 서귀포 남국선원에 다녀오려고."

 

"저기 냉장고에 맛있는 배 있으니 스님들 갖다 드리세요."

 

태어나서 교회와 집밖에 몰랐다는 아내가 스님들 몫으로 과일을 챙겨주는 것은 놀라운 변화의 결과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는 남편과 살다 보니 자연스레 물이 든 모양이다.

 

남국선원 입구 남국선원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서귀포시 공설공원묘지가 있다.
남국선원 입구남국선원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서귀포시 공설공원묘지가 있다. ⓒ 장태욱

 

남국선원은 서귀포 상효동 돈내코야영장에서 북서쪽으로 3km쯤 오른 거리에 자리 잡은 덕생이 오름 중턱에 있다. 이 선원은 제주도 출신인 혜국스님이 제주도에 스님들이 공부하는 선방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1977년 토굴형식으로 처음 열었다. 그 후 법당과 선원을 새로 지어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나가 남국선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정광희 선배가 이 선원에서 수행하는 동안 나를 만나고자 청하면서부터다. 내 대학 4년 선배인 정 선배는 대학시절 민주화를 향한 사회적 의무감과 취업을 앞둔 학생으로서의 개인적 과제 사이에서 오랜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정 선배가 스님이 되어 미소를 머금고 내 앞에 나타났는데, 모두 정 선배를 정명스님이라 불렀다. 남국선원은 나와 정명스님이 되어 내 앞에 컴백한 정 선배가 16년 만에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한 셈이다.

 

남국선원을 향하는 길가에는 서귀포시 공동묘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절의 입구에서 차도가 막혀서 나갈 수가 없었다. 음력 8월 초하루 날이라 절을 방문하는 불자들의 행렬로 인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추석을 앞두고 묘소를 찾은 벌초행렬이 절의 길목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종무소 남국선원 종무소이다. 이곳에서 인철스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종무소남국선원 종무소이다. 이곳에서 인철스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 장태욱

 

미리 연락을 드리고 갔던지라 종무소에서 인철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작년에 정 선배는 나를 인철스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는 셋이서 몇 시간동안 차를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얘기를 나눴다. 정 선배는 나에게 살면서 조언을 청할 일이 있으면 인철스님을 찾아뵈라고 했다. 정 선배는 떠나고 없지만 그가 말했던 대로 난 다시 인철스님을 찾아뵈려고 이 선원을 방문한 것이다.

 

인철스님은 출가하기 이전에 대학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대학 강단에서 선생들끼리 좋은 지위에 오르려고 서로 경쟁하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불경에 심취한 가운데서 기쁨을 맛보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다실 종무소 2층에 있는 다실에서 스님에게 차 대접을 받았다.
다실종무소 2층에 있는 다실에서 스님에게 차 대접을 받았다. ⓒ 장태욱

 

"작년에 듣기로 기독교인이라 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일요일에 절을 다 오셨습니까?"

 

인철스임은 내가 불쑥 절을 방문한 것이 내심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목사님께 설교를 들으면 어떻고 스님께 설교를 들으면 어떻습니까? 거기에는 다 하나님의 중요한 가르침이 깃들여져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가 출가하기 이전에 만났던 기독교인들과 생각이 많이 다르시네요. 그분들은 대부분 기독교만이 진리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하던데."

 

"사실 저도 그 문제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불자들의 원망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성경을 들고 오랜 시간 찾아봐도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게 대하라는 말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 정부의 종교편향의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 그 해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최근 불자들이 종교편향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불편한 심기를 의식해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스님으로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답을 들었다.

 

"다른 종교를 넓게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불교의 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도 다른 종교를 '외도'라고 하셨고, 외도에 대해서는 아주 차갑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종교가 화해하고 상생하지 않으면 인류가 불행해집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말씀이 있으실 겁니다."

 

인철스님 항상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인철스님항상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 장태욱

 

"며칠 전에 대형교회 목사 한 사람이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양반은 경제적 풍요를 잘살고 못사는 기준으로 삼은 것 같던데, 종교인으로써  매우 부적합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님들처럼 속세를 떠나서 기쁨을 추구하다 보면 경제문제를 포함한 세상의 문제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스님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 불자들이 세상문제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인 건 사실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고, 교인들은 경제적 성취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더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믿는 기독교가 원래 돈을 추구하거나 부자가 되기 위해 믿는 종교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부자를 내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종교개혁이란 명분으로 칼뱅이라는 신학자가 만들었던 교리가 기독교를 자본주의적 종교로 변질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대화 말미에 스님께서 결론을 맺어주셨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완벽해보이지만 이렇게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본질적 측면에서보다는 그것이 세상에서 유통되는 과정에서 많이 나타나는 겁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더 연구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종교적 양심은 결국 신앙인 개인이 매 순간 선택해야 할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입구 남국선원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입구남국선원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 장태욱

 

대화를 나누다 보니 스님이 예불에 참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대웅전으로 나서는 스님의 신발을 보니 털고무신이었다.

 

"스님, 아직도 여름인데 어찌 털신을 신고 계십니까?"

 

"이곳은 여름에도 시원합니다. 사철 같은 신을 신어도 괜찮습니다. 저 말고 다른 스님들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세속의 잣대로 스님의 행색을 평했으니 여간 결례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들'과 같은 기독교인인가보다.


#남국선원#인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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