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 도심 명승고적 중 하나인 구로우(鼓樓) 뒷골목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 하나와 좌변기 6개가 있는 이 공중화장실에서 시민 4명이 머리를 밖으로 내놓고 볼 일을 보고 있다. 칸막이는 있지만 문짝이 없어 머리가 밖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글리 차이나'의 대명사인 중국 화장실 문화가 올림픽 바람을 타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도약하는 시험대에 올랐었다.
그러나 베이징의 유치원 대부분이 아직도 남녀 구분 없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남녀공용 화장실은 뜻밖에도 유치원이다. 이곳 유치원은 1950년대부터 대변기와 남아용 소변기가 붙어있고 칸막이조차 없이 화장실을 운영해오고 있다. 습관화된 화장실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위 이야기는 그냥 삽화가 아니고 현실이다.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만방에 '21세기 새로운 문명국가'로 도약하고자 했다. 어느 나라나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밖에 국제경기를 유치하면 총력을 기울인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분명 한국의 일상적 문화수준을 혁신하는데 획기적 계기로 작용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또한 비슷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국제 행사 유치가 잦아질수록, 그리고 그것이 점차 지방으로 확산될수록, 문화의 관심은 삶의 보다 미세한 영역에까지 파고든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중화장실 문화'다.
대소변을 하지 않는 동물이 있을까.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만이 화장실문화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라고 썼다. 요즘은 모두가 집안에서보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공중화장실의 존폐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편리하고, 청결하고, 안전한 공중화장실이야말로 피부에 가장 먼저 와 닿는다. 그게 한 국가, 한 사회의 문화척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화장실문화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푸새식'으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삼십대 중후반만 해도 그 고약스러웠던 '뒷간 추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 우리의 공중화장실 수준도 과히 '화장실 혁명'(Toilet Revolution)이라고 극찬할 정도가 됐다. 그 비법은 한류 상품이 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경상남도 창녕교육청은 학교교육환경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유어초등과 부곡초등에서 화장실이 리모델링되고 있다.(그렇다고 너무 기대감을 갖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볼 때 예전보다 조금 달라졌다는 얘기니까).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고, 색깔조화가 깔끔하고 부드럽다. 무엇보다도 내부 인테리어가 집안과 똑같은 분위기다. 학교도 공공장소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나 지하철 화장실처럼 천편일률적인 내부 장식이 아니다. 화장실 벽면을 깨끗한 상태로 쉬게 그냥 놔두었다.
2학기 개학과 더불어 완공된 아름다운 학교화장실은 아이들과 보다 친근하게 만났다. 그런데 기존의 학교화장실은 어땠을까. 실컷 관리한다고 애써 부셔보았지만 그때뿐 덕지덕지 눌어붙어 묵은 때, 참을 수 없는 악취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더러운 휴지통. 퀴퀴한 분위기였다. 이는 여느 학교화장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개다가 매월 한 두 번 청소용역업체에 의뢰해서 증기스팀으로 깨끗하게 청소를 하였어도 단 며칠 지나면 쉽게 만나고 싶지 않은 화장실로 되돌아갔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에게 담당청소구역을 배정하라 들면 화장실 청소만큼은 꺼려했을까. 아이들 중에는 대소변이 마려워도 그냥그냥 참으며 자기 집으로 가서 볼 일을 보았다. 아무리 뒤가 마려워도 학교화장실에서는 똥오줌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가가지 않는 학교화장실은 차라리 흉물이자 혐오시설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화장실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장실 같지 않은 화장실'이다. 그런 화장실은 여러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딜까? 경남 통영 미래사 뒷간에 가면 비단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인삼휴게소 화장실도 집안과 같이 아늑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수원월드컵 경기장 바깥에는 축구공 모양의 화장실이 있으며, 강원도 강릉시의 '우주선 화장실', 경기도 이천의 덕평자연휴게소 화장실, 백운계곡의 화장실, N서울타워의 '하늘 화장실' 등은 아름다운 문화가 있는 '똑똑한 화장실'이다.
그밖에도 남양주 화도 하수처리장 내에는 화장실이 그랜드 피아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경북 김천 직지문화공원 안의 공중화장실은 원형 갓 형태다. 이처럼 크게 특이하지는 않더라도 외관상 별로 화장실 같지 않은 화장실 건물은 이제 도처에 즐비하다. 도시미관 향상에 톡톡히 기여하는 공중화장실이다.
한 나라의 문명문화의 척도는 화장실문화다. 더 이상 우리의 공중화장실이 뒷간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도록 미관에 신경을 써야하며, 재건축이나 리모델링할 때도 사람을 우선해야한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하듯이 어렸을 때 각인된 습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쉬 변하지 않는다.
현재 각급지자체가 재건축을 계획하고 리모델링을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아름다운 화장실에는 음향기기나 비데, 절수형 세면대 설치되어 이제는 화장실이 쾌적한 문화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이들이 향유하는 학교화장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명심할 게 하나 있다. 공중화장실 개선 사업은 모두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공중화장실내 소모품과 시설물에 대해 성숙된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생활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 문화다. 우리는 하루라도 화장실을 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화장실, 그곳이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며, 청결을 유지해야 우리가 살 수 있는지 담담히 생각해 볼 때다. 이렇게 중요한 화장실문화를 누가 만들었는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