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인수동으로 오는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기도 비좁았다. 게다가 인도 한 가운데 제법 굵은 가로수가 버티고 있어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피해야 하고 유모차를 끌고갈 때는 차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위험천만한 장면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연출됐다.
주민들은 길 넓히기를 늘 원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차가 다니는 길까지도 한신대 소유의 땅이었는데, 나중에 도시계획을 하면서 길이 났다. 한신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도를 넓히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좁을 길을 따라 쌓은 축대 바로 옆으로 한신대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를 넓히려면 한신대 건물을 헐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은 불편에 익숙해졌는데, 드디어 지난 봄 변화가 생겼다. 한신대가 강의동을 신축하면서 축대 옆 낡은 건물을 허물었다. 주민들도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민원을 넣었다. 강북구에서도 주민들의 여론을 받아들여 움직였고, 한신대도 화답했다.
강북구에서는 기존 축대를 허물고 길을 넓히는 데 들어간 비용 일부를 지원했다. 덕분에 직각으로 올라가 절벽처럼 흉물스럽던 축대는 자연석을 계단처럼 쌓은 예쁜 담장으로 바뀌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좋은 일 했다" "진작 이렇게 바뀌어야 했다"고 반겼다.
인수동에 사는 정직녀씨는 "4살, 2살된 아이들과 산책을 나오는데 한결 수월하다"며 "예전에는 위험해서 유모차를 끌고 한신대쪽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길이 넓어져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한신대, 담장 새로 짓는데 1억원 투자
한신대는 축석 공사 이전부터 여러 건물을 짓고 있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교실을 마련하기 위해 한신대가 속해있는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교회들이 헌금의 1%를 모금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건물을 짓고 있던 중, 1억원 가량을 떼어 축석을 다시 쌓는 데 사용했다. 9월4일 현재 한신대는 길 넓히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큰 공사가 있는 곳에는 민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신대 대학원이 진행하는 공사장 바로 뒤에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민원은 그리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신대 관계자는 "예전에는 작은 공사에도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는데, 지금은 별 무리 없이 공사를 하고 있다"며 "아마도 한신대가 길을 넓히는 일에 동참하면서 주민들의 여론도 좋아져 공사로 발생하는 작은 피해들은 참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신대가 자기 공간을 이웃 주민에게 열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한신대는 담장을 허물어 운동장을 주민들의 쉼터로 바꾸어놓았다. 덕분에 한신대는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산책하는 주민들로 분빈다. 가을에는 송암교회·수유1동성당·화계사가 펼치는 난치병어린이돕기바자회 장소로 운동장을 내어놓는다.
바자회는 올해로 9번째를 맞으며 우리 동네 가을잔치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까지는 부처님오신날 화계사를 찾는 이웃 종교인들을 위해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기도 했다. 한신대의 이웃을 위한 배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