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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차가 꽉 막히는 반포 나들목에서 서초 나들목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몸서리까지 날 지경이다
▲ 서초 반포 나들목 평소에도 차가 꽉 막히는 반포 나들목에서 서초 나들목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몸서리까지 날 지경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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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14일)이 가까워오면서 걱정부터 앞선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지는 이번 추석에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속도로 위에 바쳐야 할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남녘 끝자락 경남 창원이 고향인 나처럼 고향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차표를 구하느라 안절부절이다.

자가용을 타고 고향으로 가자니 비싼 기름값에 차까지 막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자니 시간에 딱 들어맞는 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가족들 짐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1년에 겨우 두 번 내려가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고향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이제는 물가고(高)·서민고(苦)에 추석고(苦)까지 더해져 추석이 다가올수록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불안하다. 특히 평소에도 차가 꽉 막히는 반포 나들목에서 서초 나들목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면 몸서리까지 날 지경이다. 그 구간에 방음벽만 없어도 그나마 차 막히는 것쯤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으련만.

하루 평균 20만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는 반포 나들목에서 서초 나들목 구간 양 공간을 꽉 틀어막고 있는 방음벽. 이번 추석에는 얼마나 많은 차량들이 이 구간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 할까. 그나마 삭막한 방음벽에 담쟁이넝쿨이라도 치렁치렁 기어오르고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고속도로 덮개 위에 광장·분수·농구장·대형마트까지

 '지옥 나들목'이라는 구간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이 만들어진다
▲ 공중정원 '지옥 나들목'이라는 구간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이 만들어진다
ⓒ 서초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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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할 서초~반포 나들목 구간. 이 '지옥 나들목'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이 만들어진다. 이 곳을 지나는 차량들이 내뿜는 연기와 먼지·소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이 곳 구민들의 민원을 해소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서초구청이 내린 극약처방이다.

서초구는 지난 8월 28일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반포 나들목에서 서초 나들목 구간 440m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정원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서초구는 지난 3월 중순에도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 조성에 따른 세부계획안을 발표한 바 있다.

서초구는 이날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1800억원을 유치해 2012년까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 상부에 4만3000m² 크기의 대규모 덮개 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서초구는 고속도로에 덮개를 설치함으로써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던 공간까지 연결해 이곳을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초구는 이어 "폭 31∼45m, 길이 440m, 4만3000m² 규모의 공간을 친환경 생태문화공원으로 꾸밀 것"이라며 "고속도로 덮개 위에는 물·숲·체육·문화 4가지 테마로 나눠 구역별로 특색 있게 음악분수와 수로·잔디광장·농구장·조각공원 등을 조성해 지역 주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있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공중공원에는 민간투자사업체가 운영하는 체육센터와 대형마트 등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시설 등도 들어선다. 이와 함께 고속도로 옆 명달공원 터에도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 세워진다. 공원 이름은 임시로 '서초 조이(JOY) 익스프레스 파크'이며, 정식 이름은 시민공모를 통해 확정한다.

하루 평균 20만 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는 서초 나들목에서 반포 나들목을 지나 터미널로 들어온다
▲ 서울고속터미널 하루 평균 20만 대가 넘는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는 서초 나들목에서 반포 나들목을 지나 터미널로 들어온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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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친환경 녹지 공간을 제공하게 될 덮개공원 사업은 주민들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서초 나들목에서 잠원동 나루터길에 이르는 나머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에도 덮개 공원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서초구와 유사한 환경에 있는 전국의 다른 도시들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박성중 서초구청장)"

서초구에 따르면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 공사는 고속도로 양측 벽체에 철 구조물을 올린 뒤 그 위에 덮개를 씌우는 방식이다.

서초구는 미국 보스턴 빅딕프로젝트, 독일 뮌헨 페투엘 공원, 프랑스 파리 도시재생계획 등을 본따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와 추가 협의가 끝나면 이듬해 4월 실시설계에 들어가 10월 공사를 시작한다.

이곳에는 반경 2㎞ 안에 삼성 래미안을 비롯한 삼호가든·롯데캐슬 클래식·진흥아파트 등 7만 채가 넘는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상습 교통 체증은 물론 소음·분진·공해 등이 너무 심하다고 민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재홍 서초구 도시계획과장은 "고속도로 진입로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선 7만여 가구의 아파트단지 주민들에게 녹지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을 계획했다"며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지금까지 서로 떨어져 있는 서초구의 동서 지역을 이어 주민 화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녹지... 그러면 지하의 매연는 어디로 갈까

이번 추석에는 얼마나 많은 차량들이 이 구간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 할까
▲ 공중정원 이번 추석에는 얼마나 많은 차량들이 이 구간에서 발을 동동 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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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서초 나들목에서 잠원동 나루터길에 이르는 나머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에도 덮개 공원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 공중정원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서초 나들목에서 잠원동 나루터길에 이르는 나머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에도 덮개 공원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 서초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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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4시. 공중정원이 설치된다는 반포 나들목 일대를 찾았다. 지하철 반포역에 내려 반포 지하도를 지나 고속버스와 차량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서초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주변은 꼬리를 물고 뒤엉킨 차량과 아파트 공사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서초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들어오는 대로변 인도는 아파트 공사 때문에 길이 몹시 험했다. 게다가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금세 눈과 코가 따가워졌다. 차량 소음이 어찌나 심한지 귀도 멍멍했다. 여기에 아파트 공사로 인한 분진 때문인지 재채기까지 자꾸 나왔다.

이렇게 차가 막히고 복잡한 곳에 덮개를 씌우고 지하차도까지 만든다면, 그 지하차도는 공해로 얼룩진 죽음의 차도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구민들을 위하는 행정이지만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서울특별시가 아닌가. 글쓴이 또한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죽음의 지하차도를 지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초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들어오는, 방음벽이 둘러쳐진 나들목을 바라본다. 평일 대낮인데도 '15분 정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오가는 차량들은 방음벽에 매달려 축 늘어진 담쟁이넝쿨처럼 도로를 엉금엉금 기고 있다. 공중정원이 만들어진다는 나들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 했으나 길이 없다.

서울 날씨치고는 꽤 맑은 날인데도 공중정원을 설치한다는 이 지역 곳곳에는 스모그가 부옇게 끼어 있다. 눈과 코가 몹시 따갑다. 고속도로 위에 덮개를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저리 차가 막히고 매연과 소음이 심한데, 저기에 덮개를 설치하고 그 덮개 위에 공원까지 만든다면 공원 아래 있는 그 지하차도에 머무는 공해는 어디로 갈까.     

이용자 "교통사고 빈번할 것" - 주민들 "여기 한번 살아봐라"

서초구는 이날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1800억 원을 유치해 2012년까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 상부에 4만3000m² 크기의 대규모 덮개 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 공중정원 서초구는 이날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1800억 원을 유치해 2012년까지 경부고속도로 서초구간 상부에 4만3000m² 크기의 대규모 덮개 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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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 관문인 경부고속도로 나들목 위에 콘크리트 덮개를 씌우고 공중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용한다는 내용을 서초구가 발표하자 이곳을 이용하는 운전자들 사이에 말이 많다. 고속도로 나들목에 덮개를 씌우는 것도 문제지만 공사 기간 동안 차량들은 또 어디로 다녀야 하느냐다.

서초구는 이에 대해 "공사기간 동안에도 차로 통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차량이 다니는 데다 아파트 공사까지 겹쳐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운전자 김아무개(45)씨는 "버스 전용차로 때문에 그렇잖아도 막히는데 공사가 시작되면 더 막힐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하차도가 완공되고 나면 창문을 꼭 닫고 지나야 하니까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차라도 막히지 않는 구간이라면 몰라도 공해로 가득 찬 지하차도에서 장시간 정체를 겪다 보면 운전자의 판단이 흐려져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남이 고향인 윤재걸(언론인) 시인은 "공해의 5대 주범은 일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이산화질소·탄화수소·미세 분진"이라고 말했다. 이어 "달리는 흉기 자동차는 죽음의 아황산가스와 벤젠·환경호르몬을 유발시키는 다이옥신을 배출해 공기를 오염시키는 21세기 바퀴벌레"라며 "이곳에 지하차도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못 박았다.

문병기(60·사학자)씨는 "고속도로 위에 덮개를 씌워 덮개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지역이기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환경파괴"라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고향이 시골인 경우가 많을 텐데, 고향 갈 때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공중공원에 대해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다. 삼호가든에 사는 정아무개(54·남)씨는 "고향이야 1년에 몇 번밖에 내려가지 않지 않느냐"며 "여기서 한번 살아봐라, 소음과 매연 때문에 창문도 못 열고 아이들 공부에도 지장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진흥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박아무개(61)씨는 "삭막한 도심 한복판에 아름다운 공중정원이 생긴다는 것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며 "이곳에 공중정원이 생기면 지역 일대 공기가 훨씬 더 맑아지는 것은 물론 산책까지 즐길 수 있어 건강에도 아주 좋을 것"이라고 공원 조성을 반겼다.

고향이 부산인 노병일(46)씨는 "서초구에서 공중정원을 만드는 것은 찬성하지만 공해 가득한 지하에 갇힌 사람들은 어쩌라는 건가"라고 말했다. 이어 노씨는 "공중공원을 만들기 위해 덮개를 씌울 때 지하차도 곳곳에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만들고, 지하차도 안에도 조형물이나 휴게소를 만들 공간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류 행복도시'로 가는 공중정원?   

"고속도로 덮개 위에는 물, 숲, 체육, 문화 4가지 테마로 나눠 구역별로 특색 있게 음악 분수와 수로 잔디광장 농구장 조각공원 등의 시설을 조성해 지역 주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 공중정원 "고속도로 덮개 위에는 물, 숲, 체육, 문화 4가지 테마로 나눠 구역별로 특색 있게 음악 분수와 수로 잔디광장 농구장 조각공원 등의 시설을 조성해 지역 주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 서초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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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낮 서초구 도시계획과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하나는 "요즈음 경기도 좋지 않은데, 1800억원을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유치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담당자는 이에 대해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을 제안한 민간사업자가 있어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고 답했다.

나는 다시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나 이 곳을 자주 지나다니는 운전자들 반대가 심하다, 터널내 매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중앙부 기둥을 없애 개방감을 확보하고 벽체에 자연채광 시설을 갖출 계획"이라며 "내부 높이도 남산1호(4.5m)나 남산3호(4.7m) 터널보다 높은 5.5m 이상으로 만들어 매연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터널내 매연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어 "고속도로 위에 덮개를 덮어 대형 수목을 심는 공중정원을 만들기 위해 토사를 엄청나게 쌓다 보면 고속도로 덮개에도 엄청난 압박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을 대한토목학회에 의뢰한 결과 구조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중정원을 크게 반기는 서초구민과 반대하고 있는 운전자들과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서초구청이 추진하고 있는 고속도로 위 공중정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태그:#덮개공원, #공중정원, #서초 나들목에서 반포나들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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