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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편향 논란과 관련 불교계의 핵심 요구사항인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 문제를 두고 당청간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불협화음을 드러내며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7일 어청수 청장 퇴진 문제에 대해 "특정인 인사 문제는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당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공성진 의원이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차 외유에 나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당 지도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3일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어 청장의 경질이 불가피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어 청장이 잘못한 것은 없다"며 사퇴론을 일축했다. 지난주 초까지 '어청수 사퇴론'에 힘을 실었던 여당의 목소리에 청와대가 당혹해 하는 분위기였다면, 주말을 기해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어청수 사퇴 불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때문에 혼란한 정국을 수습해야 할 여당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통령의 고유 영역... 최고지도부라도 얘기하는 것 옳지 않아"

 

어청수 청장 경질 문제에 대한 공성진 최고위원의 입장은 강경했다. 여당 내부에서 어 청장 경질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공 최고위원은 이날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선에 앞장섰던 기관장을 본인의 유감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해임하는 것이 과연 일의 우선 순위가 돼야 할 것이냐"며 어 청장 경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공 최고위원은 박희태 대표가 어청수 퇴진론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개인의 생각으로, 당에 소속된 많은 의원이나 지도부의 획일적인 생각은 아니다"고 지적한 뒤, "대통령 고유의 영역을 최고지도부라고 지나치게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3일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어 청장 퇴진 불가피'로 입장이 정리된 것에 대해서도 "만약 그렇게 했다면 월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 혹은 정부의 책임 있는 사람들로부터 (경질) 얘기가 나오기 전에 당이 먼저 해결책을 말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당의 역할이 있고 정부의 역할이 있는데, (당에서) 먼저 언론을 통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면 그야말로 혼선을 준다"고 주장했다.

 

공 최고위원은 어 청장의 사퇴보다는 불교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 쪽에 힘을 실었다. 그는 "사안의 경중을 놓고 본다면 (어 청장 경질보다) 대통령의 사과가 더욱 중대한 문제"라며 "대통령의 사과라는 표현보다는 불교계에 맺힌 마음이 있었다면 풀어주십사하는 요구가 있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공 최고위원은 오히려 불교계의 반발을 '종교 편향'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치부했다. 그는 "정치라는 것은 사실보다 이미지가 잘못 인식돼 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며 "어느 누가 대명천지에, 21세기에 종교를 가지고 장난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불교계도 특정인에 대한 집요한 해임 요구가 본의는 아닐 것"이라며 "누구를 해임하고 강력하게 정부를 밀어붙여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큰 차원의 종교 편향에 대한 국민적 각성을 얻자는 뜻이 아니겠냐"고 나름의 해석을 내놨다.

 

앞서 공 최고위원은 "추석을 앞두고 민생이 어려울 때 정부는 물론 불교계에서도 대자대비한 불심으로 이 문제 풀어나가는 게 국민들을 힘들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지 않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해, 추석을 계기로 대대적인 정부 규탄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불교계를 은근히 압박했다.

 

경찰청장 경질 문제 하나 한 목소리 못내는 '공룡 여당'

 

하지만 공성진 최고위원의 입장과는 달리 지난 7월 경찰이 조계사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을 불시 검문한 이후 불교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여권 내에서는 어청수 청장에 대한 사퇴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박희태 대표는 지난 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어 청장 경질은 불교계 요구며 이것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주성영 의원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처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어 청장은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나경원 제6정조위원장도 "불교계와의 갈등은 정서적인 문제여서 어 청장이 자진 사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나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친이계로 분류되는 일부 고위당직자들은 "어 청장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어 청장은 임기가 보장된 치안책임자다" 등을 이유로 어 청장 사퇴 불가론을 제기했다.

 

특히 이상득 의원이 "조계종 총무원장에 대한 검문이 결례인 것은 맞지만, 직무에 충실했던 것"이라며 어 청장 사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종교 편향'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심중을 대변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대통령의 사과 또한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친이계 의원들이 '어 청장 사퇴 불가론'을 들고 나오자, 박희태 대표 등도 "꼭 해임시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어 청장 경질 문제로 여권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당청간의 소통이 원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당에서는 불교계의 민심과 어 청장 경질에 대한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청와대에 개진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당청간 시각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주마다 한번씩 갖기로 했던 이 대통령과 박 대표간의 정례회동은 지난달 12일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추석을 앞두고 발표한 생활공감정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여당이 철저히 배제됐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머리를 맞대고 결론을 도출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정부에서 밀어부치는 '감동없는 정부시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내 소통이 제대로 안되는데, 당청간 소통은 되겠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당 지도부가 개별 의원들과 소통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등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추석 전 민심 수습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오는 8일이나 국무회의와 <대통령과의 대화>가 열리는 9일쯤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입장 발표를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청수 청장에 대한 경질 문제는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도 한나라당의 의견이 반영됐는지는 불확실하다.

 

한나라당은 172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서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해 일관된 입장조차 정하지 못한 채, 경찰청장 경질 문제로 우왕좌왕하는 등 혼란만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태그:#어청수, #공룡여당, #이명박 대통령, #공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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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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