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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밤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 참석한 당 지도부와 기자들이 인근 식당에서 뒷풀이겸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박희태 대표 등은 한 잔씩만 마신 뒤 금방 가버렸고, 정몽준 최고위원 혼자 남아 일부 당직자와 기자들을 상대로 술을 더 마셨다. 정 최고위원은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에 가지고 다니던 21년산 고급양주를 여러 병 꺼내왔다고 한다.

 

술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정 최고위원과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차명진 대변인이 어디서 찾아왔는지, 빨래 방망이 비슷한 것을 두드리며 틈만 나면 "김문수 만세"를 연호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차 대변인은 김 지사의 노동운동 동지이자, 보좌관 출신이다.

 

"김문수 만세!"... "에이, 차기 대통령은 정몽준이지~"

 

정몽준 최고위원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윤상현 대변인이 정 최고위원을 의식해 "에이, 무슨 김문수야. 차기 대통령은 정몽준이지"라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러자 차 대변인이 "나가서 얘기 좀 하자"며 윤 대변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 과정에서 술이 취한 두 사람은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한채 쓰러졌고, 그 틈에 테이블에 있던 맥주병 등이 떨어져 깨지는 소란이 일었다.

 

주먹 다짐을 하는 싸움을 벌인 게 아니라서,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윤 대변인도 자리로 돌아와 "괜찮다, 나 차 선배랑 친해"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나중에 술자리가 파한 뒤, 정몽준 최고위원이 차에 오르기 전 기자들에게 "우리 윤상현 대변인이 참 괜찮은 분이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차 대변인과의 헤프닝을 두고 한 말인지는 정확치 않다. 문제는 윤 대변인이 초선이기는 하지만, 당내에서 비교적 색깔이 명확한 박근혜계라는 것이다. '차기대권 정몽준' 운운한 것은 그야말로 '립서비스'였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거꾸로 보면, 앞으로도 4년 6개월이라는 많은 임기가 남았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을 비롯해 두 대변인이 벌인 이날 밤의 '뒷풀이'는 한나라당 내 차기 대권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친이명박계인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일 OBS '정한용의 명불허전'에 출연,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 박근혜로 파가 나눠졌는데 요즘 당내에서는 박근혜 의원 쪽으로 옮기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당내 기류 변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는 한가로워 보인다. 그러나 물 아래 오리발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한나라당 차기 대권 주자들의 최근 정치 행보가 그렇다. 주먹 쥐고 서로 물어뜯는 권력 싸움은 없다. 다만 당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보이지 않는 보폭 넓히기가 한창이다. 2~3년후 이들이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낼 경우, 중반 판세가 결정된다. 숨막히는 대권 경쟁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의 유머'에 숨겨진 의미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4월 총선과 친박 의원 복당한 이후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침묵하지 않고 있다. 측근 의원들은 "맡은 공식 당직이 없는데, 어디에서 말하라는 것이냐"며 의아해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새롭게 들어간 상임위 활동을 위해 보건·복지와 관련한 공부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측근 의원들은 "지난 대선 때 이미 보건, 복지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해 놓은 상태다. 언론들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웃어 넘겼다.

 

그럼, 박근혜 전 대표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박 전 대표가 최근 측근 의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퀴즈를 냈다고 한다.

 

"'명박산성'에 시위대가 아무도 못 올라갈 때, (촛불)여중생 한 명이 간신히 올라갔데요. 그 여중생이 명박산성에 올라가서 가장 처음으로 한 행동이 뭔줄 아세요?"

 

옆에 있던 측근 의원들은 "'쇠고기 수입 반대' 플랜카드를 내걸었다", "구호를 외쳤다" 등의 답변을 하거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표 왈, "핸드폰을 꺼내서 자기 사진을 찍었데요. 하하".

 

박 전 대표는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한 시위 문화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다시 박근혜 전 대표가 낸 퀴즈다. 이번엔 촛불집회 배후론과 관련해서다.

 

"촛불집회에서 유모차에 타고 있던 어린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플래카드에 뭐라고 써 있는 줄 아세요?" 역시 측근 의원들이 답변을 못하자, 박 전 대표는 "'제 어머니의 배후는 접니다' 라고 씌여 있었데요. 아이는 엄마 등에 매일 업혀 있잖아요. 하하"

 

박근혜 전 대표는 예전부터 측근 의원들과 모이면 '썰렁 유머'를 곧잘 선보이곤 한다. 특히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는 전라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는가 하면 사투리와 관련한 유머를 암기해 뒀다가 호남을 방문할 때마다 써먹곤 했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어느 유력 정치인보다 호남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호남뿐이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경선에서 수도권에서만 이 대통령에게 밀렸을 뿐 전통적 지지 지역인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당내에서 가장 거대한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렇다고 그의 유머에 '여유'만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 측근 의원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고 봐서 가만히 있지만, 박 전 대표 생각에 MB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는다면 언제든 나서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쇠고기 파동 때 "재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재협상을 해야지요"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유머에 '칼'이 도사리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유머'의 가장 큰 힘은 역시 '스킨십 강화'다. 지난달 박 전 대표는 권영진 김성식 윤석용 김선동 의원 등 서울지역 초선 의원들과 오찬을 했다. 친박계 김선동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친이계다. 이날 오찬은 권 의원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지난 4일 대구 지역 의원들과의 오찬은 텃밭을 챙긴다는 의미가 강했다.

 

지난달 친박 무소속 연대 의원들이 주축이 된 공부모임 '여의포럼' 모임에 두 차례 인사 차 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소주를 조금 마신 뒤 조금 있다 맥주를 마시고 몸을 흔들면 폭탄주가 된다"고 농담을 하는 등 의원들에게 친근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내 의원들을 만날 필요성은 느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드러내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임기 초 부진으로 그런 요청이 잦다고 한다. '세 불리기'라는 오해를 받지 않으면서도 당내 접촉면을 늘리기 위한 '박근혜의 줄타기'가 한 동안 계속 될 것이다.

 

'전투력' 배가시키는 김문수의 꿈

 

"대통령이 소심해졌다, 용기를 잃어버렸다." (7.22일 수도권 규제철폐를 위한 범도민 결의대회)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정신 나간 정책", "(대선 때 전폭 지지한 경기도민에게) 배은망덕한 정부"(7.24. 수도권 규제 철폐 촉구 비상결의대회)

 

"대한민국은 중국 공산당보다 규제 더 많이 하는 곳"(8.6. 라디오 인터뷰)

"수도권 규제는 공산당도 안 하는 짓이다."(8.14. 라디오 인터뷰)

"이 대통령이 잘해야 희망이 있는데 지금 봐선 걱정이다."(8.18. 잡지 인터뷰)

"경제대통령을 하라고 뽑았는데, 경제를 못 살리면 대통령이 된 의미가 없다."(8.29. 경기도 기관장 모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최근 쏟아낸 발언들이다. 집권여당 소속 지자체장이 대통령을 향해 한 발언 치고는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지난 7월 21일 정부가 '선(先)지방발전, 후(後)수도권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지역발전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부터다.

 

김 지사는 이 대통령을 향해 '배은망덕한 정부', '망국적 정책', '공산당보다 더한 규제' 등의 원색적인 독설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제 막 임기 6개월이 지난 '살아있는 권력'에게 이런 식의 직격탄을 날리는 것은 대통령 임기말 레임덕 때나 볼 수 있는 보기드문 풍경이다.

 

김 지사는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후 자유주의·시장경제 지지자로 변신하기는 했지만, 70~80년대 옥고까지 치른 전형적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의 이미지에서 풍겨나는 날카로움은 그의 '투쟁성'에 기반한다. 이재오 전 의원 등과 함께 민중당 출신이면서도 한나라당 내에서 내리 3선(15·16·17대) 의원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투쟁성'은 늘 오해를 받아왔다. 최근 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김 지사의 독설에 대해서도 당내 시선이 따갑다. 박희태 대표는 최근 "상궤를 넘어섰다"고 비판했고, 이 대통령측에서도 "정부의 실정에 기대 반사이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며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권력에 '각을 세우면서 크는' 대권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김 지사측은 강하게 부인하지만 당내에선 그의 '강성 발언'을 대권을 향한 '준비 운동'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요즘 하는 얘기는 이명박 대통령 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데 보약이 될 것"이라며 "보약은 쓰긴 하지만 분명히 약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일 공격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에서 자제를 요청한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공격이 아니라 충언"이라며 "나는 감옥을 가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산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권과 관련해서는 "아직 청와대에 대한 꿈은 없다. 국회의원도 꿈을 꾸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이라며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40세까지 살 생각도 못하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회를 포착하는 데는 맹수보다 더 날쌔다"는 언론의 평가가 말해주듯, 기회가 오면 그는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기 위해 '전투력'을 배가 시키고 있다.

 

정몽준의 '거침없이 대선 하이킥'

 

국제축구연맹(FIFA)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정몽준 최고위원은 베이징올림픽 기간에 무려 네 차례나 중국을 찾았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8강 진출 좌절은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겨줬다. 당장 축구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가 대폭 줄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열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월드컵 인기를 등에 업고 대선 코 앞까지 갔다가 실패한 정 최고위원도 그렇고, 게임에 이길 때만 인기를 끄는 축구도 그렇고 '바람을 탄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바람을 탄다'는 것은 그만큼 고정 지지층이 적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 최고위원의 최대 약점은 당내 입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이 자신만의 '정지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친박계보다 구심점이 약한 친이계의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7.3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에 입성한 이후 당 운영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보이콧을 하는가 하면, 스스로 기업인 출신이면서 최근 기업인 대규모 사면에 대해 시기상조론을 내세우는 등 독자적 목소리를 내왔다. 얼핏보면 당내 불협화음으로 보이지만, 청와대와의 거리두기와 '화합형 리더'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버스비 70원 발언'으로 각인된 재벌 엘리트 이미지를 벗고, 일반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겸손 모드'로 돌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에 대해서도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지난달 12일 영국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신지애 선수와 골프 라운딩 약속을 잡았다가, 전날 호남 지역을 전격 방문해 지역 현안 사업을 점검했고, 다음날엔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골프를 취소하고 상경했다.

 

지난 전당대회 직후 '최고위원 권한 강화'를 주장하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던 홍준표 원내대표가 민주당과의 원 구성 협상 결렬로 사면초가에 빠지자, 먼저 손을 내밀어 위로하는 등 힘을 실어주는 모습도 연출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불가근 불가원'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 정체성 확보를 통해 고유영역을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정 최고위원은 청와대의 '회전문 인사', '보은 인사'를 강력히 비판하는가 하면, 당정이 추구하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여권에서는 그의 이같은 노력이 '인기 회복을 위한 일회성'으로 끝날 것인지, 재벌 총수 이미지를 벗고 독자적인 영역 구축에 성공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태그:#박근혜, #정몽준, #김문수, #대권주자, #3인3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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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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