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지… 뭐."
9일 낮 서울 중구에서 만난 한 시중은행 시장분석팀장의 첫마디였다. '9월 위기설'의 도화선이 됐던 외국인 보유 채권의 집중 만기일을 맞은 이날 오전 금융시장에 대한 느낌을 물었을 때였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오늘 아침) 신문에 그렇게 샴페인을 터뜨려 놨으니…"라며 "그래도 좀 지켜봐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금융시장은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지난 8일 사상 최고의 폭등세를 보였던 주식시장은 하룻만에 폭락 양상으로 돌아섰다. 하룻동안 100포인트를 왔다갔다 하는 그래프 모습은 시장 투자자들의 불안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외환시장도 마찬가지. 지난 8일 하루동안 36원 넘게 떨어진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20원 가까이 다시 올랐다. 환율시장이 급락에서 급등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36원 떨어졌다가 20원 올랐다가... 그런데 '위기 끝'?
이같은 금융시장의 불안은 "9월 위기설은 없다"는 정부의 장담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물론 당장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시장의 불안심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여전하다. 오락가락한 외환정책으로 시장의 혼란을 가져왔던 정부는 위기설을 둘러싼 뒷북 대응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게다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보다는 성장 중심의 정책추진은 가계불안과 시장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9일부터 11일까지는 '한국경제 심판의 날'이다. 특히 '9월 위기설'의 도화선이었던 외국인 보유 채권 만기가 몰려있는 날이 9일과 10일이다. 이틀 동안 몰려있는 채권 규모는 67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원 규모다.
이 돈을 외국인들이 대부분 팔고 나간다는 시나리오가 '9월 위기설'의 발단이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외국인들이 이들 채권을 다 팔고 떠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9월 초 국내 채권을 꾸준히 사들였다. 게다가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외환보유고가 당장 펑크날 정도도 아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지나면 위기설의 허상을 알게될 것"이라고 장담한 것도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 또 지난 8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이었던 미국 대형 모기지 업체에 대한 구제금융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8일 하룻동안 종합주가가 76포인트가 뛰어오르는 등 폭등양상을 보였고, 원-달러 환율 역시 크게 하락했다. 여러 언론들은 앞다퉈, 금융시장이 급속히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9월위기설은 '헛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9일 금융시장은 전혀 딴판으로 흘렀다. 주식시장은 열리자마자 마치 그동안 손해봤던 것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는듯 주식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전날 크게 떨어졌던 환율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러를 사려는 주문이 쇄도, 폭등세로 돌아섰다.
주가는 전날보다 22.15포인트 하락한 1454.50으로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도 전날보다 19.9원이나 올라 1101.3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환시장 역시 불안한 모습을 보인 하루였다.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 그러나 신뢰 상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어제 미국정부의 모기지업체에 대한 구제금융 발표로 주식시장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미국발 신용위기가 시장에서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이어 "당장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겠지만 여전히 금융시장은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안심하기엔 이르다"면서 "시장 주체들의 불안심리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9월 위기설' 같은 위기는 없겠지만, 국내 경제에 걸친 위기적인 징후들은 뚜렷하다고 말한다. 민간 소비는 4년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침체 국면이 뚜렷하고, 기업 투자 역시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이는 다시 고용감소로 이어진다.
올해 경제성장은 3%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이고,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갈 조짐이다. 경기침체 속의 물가상승 국면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사실상 들어간 상태다.
문제는 이같은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의 일관성있는 정책과 믿음을 시장에게 줘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 강만수 경제팀의 경우 고환율정책 실패 등으로 이미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성장지상주의를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에 반하는 무리한 정책을 쓰다가 결국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다"면서 "현재와 같은 위기 국면에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도 "경제 안정화를 위해 들어가는 고통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가 절실하다"면서 "신뢰가 없으면 시장에 대한 약발이 먹히질 않아 그만큼 비용이 더 들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대신 당국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도 시장안정을 위한 효과를 낼수 있다"면서 "현 경제팀으로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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