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신 : 10일 새벽 0시 10분]
밤 11시 45분 여의도 KBS 본관 앞.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의 방송이 끝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MB는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어려워지는 경제, 소통이 안 되는 국민과 정부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혀를 찼던 이들이었다.
중간에 자리를 뜬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중간에 자리를 뜨던 임순지(36)씨는 "왜 벌써 자리를 뜨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보기 힘들다, 사실 다 짜고 하는 문답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특히 임씨는 "'정부는 왜 불법행위를 하는 이들을 가만히 놔두냐'고 하는 것이 지금 국민 여론"이라던 이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를 토했다.
"저 말은 지금 우리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조계사에도 2백명 가까운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고 서울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고 들었다. 이 대통령에겐 이들이 국민으로 안 보이는 것이다."
"오늘 방송 본 국민 모두 MB에게 낙제점 줬을 것"
방송 직후 만난 시민들도 임씨의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
최진석(31)씨는 "오늘 방송에 점수를 준다면 -100점"이라며 "최악의 거짓말 방송 잘 봤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통령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대학생에게) '주동자는 아니죠'라고 농담을 던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며 "그 농담은 이 대통령이 정말 국민을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오늘 방송으로 인해 또 착한 국민들이 저 립서비스에 속아 이 대통령 한번 더 봐주자고 할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60대 아주머니는 "이 대통령 말은 믿을 수가 없다"며 "남자건 여자건 말을 했으면 실천이 뒤따라야하는데 이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 이렇게 나올 때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냐"며 "자식들도 내가 이렇게 거리 위로 나오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다.
김 아무개(45. 남)씨는 "오늘 이 대통령이 사실상 자기 고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겠다고 공언하는 것 봤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대통령이 이번 방송 반응을 보면 당황할 것"이라며 "오늘 방송을 본 이들은 대부분 이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낙제점을 매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1신 : 9일 밤 10시 21분]
"현수막도 걸지 못하게 하면서 무슨 언론의 자유냐!"
"공영방송 장악하고 국민의 대화 웬 말이냐!"
9일 밤 9시 여의도 KBS 홀 앞. 40여명의 KBS 직원들이 촛불을 높이 들어올렸다. 직원들의 수의 2배가 넘는 청원 경찰들이 그들을 원형으로 둘러싼 상태였다.
KBS 신관 보도본부 4층 베란다에서 '공영방송 사수하자'고 적힌 현수막을 늘어뜨리려던 직원 10여명도 마찬가지였다. 현수막은 채 펴지기도 전에 청원경찰과 대통령 경호팀의 우악스런 손길에 의해 구겨졌다. 청원경찰에 저항하던 KBS 직원들의 상반신이 난간 위로 떨어질 듯 밀리는 위험천만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촛불 든 KBS 직원들 포위한 청원경찰... "우리도 국민이다, 우리와도 대화하라"
앞서 청원경찰들은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 촬영스튜디오 입구가 있는 KBS 홀 곳곳에 퍼져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1백여 명의 의경들도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밤 8시 30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직원들이 촛불을 밝히기 시작하자 사원행동 쪽으로 다가와 "저쪽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다"며 촛불을 끄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KBS 사원행동은 끝까지 촛불을 끄지 않았다. '아침이슬', '흔들리지 않게' 등 민중가요를 부르며 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결의를 높였고 "MB정권 방송장악 온 몸으로 저지하자", "우리들도 국민이다, 우리와도 대화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특히 사내에 현수막도 걸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분노는 대단했다.
KBS 사원행동 측은 "회사 내 현수막도 못 걸게 하는 등 표현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이 정부의 행태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앞으로도 계속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모습은 이날 <열린음악회> 방청을 위해 KBS를 방문했던 일반 시민들도 이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일부 시민들은 핸드폰과 가지고 있던 디지털 커메라를 이용해 베란다에서 청원경찰과 경호팀에 저항하는 KBS 직원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잠실에 사는 모녀, 서 아무개씨와 유 아무개씨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머니 서씨는 "저런 모습을 보면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우리나라가 다시 군사독재 때로 돌아간 것 같다"며 "대통령이 온다고 현수막 하나 걸지 못하는 게 정상이냐"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불교나 쇠고기파동에서 그랬듯 국민들이 지칠 때까지 두었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며 "대통령은 말로만 사죄하지 말고 행동으로 반성한 것을 내보여야 한다"고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딸 유씨는 "대통령이 국민을 너무 무시한다, 더 이상 국민들이 참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닌 것에 대해선 끝까지 싸워 바른 것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밤 9시 10분 경 예상했던 KBS홀이 아닌 제3의 통로를 통해 스튜디오로 입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KBS 사원행동은 시위를 멈추고 이날 밤 8시부터 KBS 본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방송장악·네티즌탄압 저지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 등과 결합했다.
KBS 사원행동과 범국민행동, 그리고 시민 150여명은 밤 10시부터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를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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