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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이 오다 주춤, 다시 여름으로 돌아간 것 같이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는 계절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가을을 맞이하면서 태어나 몇 번 째 맞이하는 가을인지 돌이켜 봅니다.
 
지난 주 젊은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있습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네…."
"지금 몇 살이지?"
"서른이요."
"내가 서른 살이면, 서른 살이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웃음 나오겠다. 살다보면 힘든 일도 있는 법이야."
 
 
그 말을 하고나니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 역시도 그 누군가에게는 내 나이를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인데.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봅니다.
 
나의 인생을 사계절로 나누어보니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살고있습니다. 딱히 풍성하게 거둘 열매는 없지만 그동안 살아온 과정들 모두가 감사할 뿐입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행복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시기도 나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었음을 이제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양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지도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양지를 걸어가길 원하지만 원하는 길만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지 않는 음지 쪽을 걸어갈 때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지가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가끔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혹은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요즘은 나이가 들면서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염려와 지나간 날의 근심을 오늘로 가져오지 않으니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넉넉해 짐을 느낍니다.

 

물질의 소유, 남에게 인정받음, 경쟁, 이런 것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내 삶의 속도를 찾아가니 살아가는 삶의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보다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슬방울, 어디에 맺히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떨어진 낙엽 위에 맺혀 가을 색으로 물들어버린 이슬방울, 혹은 꽃잎에 앉아서 짧은 순간이라도 밝게 빛나는 이슬방울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이 이슬방울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하늘 혹은 나무나 산, 강을 품고 있는 이슬방울을 보면 품 넓은 사람을 보는 듯하고, 작은 바람에도 툭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보면 작은 고난에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연약한 사람을 보는 듯 합니다. 아침 햇살에 이내 말라버리는 이슬방울을 보면 인생의 짧음을 보게 되고, 그 이슬방울들이 모여 바다에 이른다는 생각을 하면 짧은 우리네 인생도 그리 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을,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펼쳐진 상황들 중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다 내 곁에 있는 행복한 것들을 죄다 놓친다면 그것 또한 지혜로운 삶은 아닐 것입니다.
 
가을을 맞이하면 그저 쓸쓸하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번 가을은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제사 비로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내 삶의 가을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몇 번째 가을을 맞이하시는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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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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