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이튿날 국제어린이도서관을 찾아 나섰다. 아이들과 함께 책 한권 여유롭게 읽지 못하고 학원 뺑뺑이로 일류대 진학을 꿈꾸는 한국 엄마들이 보면 깜짝 놀란다고 하니 솔직히 얼마나 잘해 놓고 사는지 궁금했다. 가재미 눈을 뜨고 취재에 돌입했다.
그런데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도서관 외관 건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린이도서관치고는 너무 웅장했다. 외관에 기가 눌려 타임 캡슐을 타고 중세시대를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기자가 야릇한 기분이 든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제어린이도서관에 사용되고 있는 옛 황국도서관은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메이지 시대 서양식 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도쿄도가 선정한 역사적인 건조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 1906년 건설된 구 황국도서관 청사를 이용해 2000년 5월 5일 아동도서 취급전문 도서관으로 문을 연 것이다.
일본의 첫 국립 아동 전문 도서관으로 1906년(메이지 39년)에 문을 연 뒤 1929년(쇼와 4년)에 증축됐기 때문에 메이지 시대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도 읽을 수 있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국제어린이도서관으로 새 옷을 입은 이 건축물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Tadao Ando)가 설계했다. 안도 타다오라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아닌가. 전 프로복서 출신으로 오사카 후리츠 죠토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인물로 지금은 도쿄대학 특별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고졸의 프로복서 출신 건축가가 국제어린이도서관을 개수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개수에 대해 역사적 건조물의 보존과 재생, 현대 시설로서의 활용이 더해져 외장과 내장은 옛 형태를 보존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일본인들의 옛것에 대한 애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원은 옛 사진을 이용한 샹들리에 복원까지 섬세하게 이뤄졌다. 제35회 BCS상(건축업계회상, 2004년), 제15회 BELCA상(건축, 설비보존추진협회상, 2006년)을 수상하면서 국제어린이도서관은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보기 위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도쿄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의 역사성을 그대로 보존한 어린이 도서관은 조명, 의자 높이, 전시실, 프로그램 등 모든 것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져 운영되고 있었다. 몇 십억을 들여 건축했지만 습도 조절이 안 되는 서울시내 강동구 관내 지역 도서관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심지어 100년 전 건축물의 벽돌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일본. 옛 것을 소중히 알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일본인들의 집념이 대단해 보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아주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뒤에 미국 등 아무도 일본을 얕잡아 보는 나라가 없는데, 유독 한국인만이 일본이 별것 아니라고 큰소리 친다는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자신감은 우리 것을 소중하게 보존할 줄 아는 지혜를 바탕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터무니없는 피해의식에서 시작된 자신감은 언젠가 꺾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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