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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늦둥이가 일본 뇌염 예방 접종을 받는 날이다. 이 땅에 생명을 내민 지 13개월 보름이다. 늦둥이라 말했지만 우리 부부 사랑을 통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동생 부부 사랑을 통하여 태어났다.

자기 엄마가 진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할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 낮에는 우리 집에서 지낸다. 우리 집에 온 지 9개월이 되었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아내는 늦둥이 키우는 재미가 이런 재미면 한 명 더 놓고 싶은 마음이지만 자기 태를 통하여 늦둥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보건소에서 예방 접종을 하고 옆에 있는 진주성에 가기로 했다.

"여보 우리 오래만에 진주성에 갈까."
"야 얼마만인가? 우리 차가 없을 때 아이들 셋과 버스 타고 어떻게 다녔는지 몰라요."
"차 있을 때보다 차 없을 때 촉석루에 더 자주 왔네요."

촉석루에 오르니 남강에 돛단배 하나가 유유히 떠 있다.

촉석루에서 바라 본 남강에 떠 있는 돛단배 저 멀리 망경산이 보인다
 촉석루에서 바라 본 남강에 떠 있는 돛단배 저 멀리 망경산이 보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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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돛단배다. 저게 언제부터 있었어요?"
"잘 모르겠는데. 얼마나 촉석루에 오지 않았어면 돛단배 있는 것도 몰랐을까?"
"예설아 돛단배다. 돛단배."

이른 시간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몇 분만은 구석 한 켠에 누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2000년 여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왔던 촉석루였다. 조카는 넓은 촉석루 마루가 좋은지 뛰어다닌다. 넘어져도 타지지 않는 마루인지 아내는 그냥 내버려둔다.

촉석루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큰 엄마와 함께 노는 조카
 촉석루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큰 엄마와 함께 노는 조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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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2000년 여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때가 좋았지요."
"그래요 인헌이(큰 아이)가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했지요. 아참 우리 막둥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예설아 큰 아빠다. 우리 사진 찍을까!"

하지만 조카는 사진 찍을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촉석루에 발길을 들여놓는다. 그들도 신기한 모양이다. 남강에 떠 있는 돛단배가 신기할 수밖에 없다. 몇 십년 전만 해도 돛단배는 강이 있는 마을과 나룻터에서는 어디든지 있던 배였지만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당신 돛단배 타보셨어요."
"응 아버지와 작은 형님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돛단배를 샀지. 기억나기로는 정말 볏짚단 크기만한 숭어도 잡았어요. 그 때는 정말 사천만에 고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어요."

아내에게 돛단배 이야기를 하니 왠지 마음이 아프다. 촉석루를 뒤로하고 조선시대 포정사는 조선시대관찰사감영 정문으로 사람들이 자주 찾는 누각이다. 포정사 앞에 서 있는 포졸은 아이들 주 관심 대상이다. 사람은 아니지만 옛 관찰사 감영 정문을 지키는 이들이 아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리라.

가을이 깊어가지만 아직 진주성은 푸르름이 넘쳐 흐르고 있다. 아내가 조카를 데리고 포정사를 오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지만 아직 진주성은 푸르름이 넘쳐 흐르고 있다. 아내가 조카를 데리고 포정사를 오르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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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안에 있는 '영남포정사' (도문화재 자료 제3호)는 조선시대관찰사 감영의 정문이다.
 진주성 안에 있는 '영남포정사' (도문화재 자료 제3호)는 조선시대관찰사 감영의 정문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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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몸을 귀찮게 하지만 오래만에 찾은 촉석루와 남강은 가을이 오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자연과 어울리는 쉼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준 가깝고 짧은 여행이었다.


태그:#늦둥이, #촉석루, #돛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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