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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밤 10시 100분간 5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에서 패널 질문에 대답하는 이명박 대통령.
 9일 밤 10시 100분간 5개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한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있습니다'에서 패널 질문에 대답하는 이명박 대통령.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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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다가 이숙이 <시사IN> 뉴스팀장의 질문과 답변까지 보고는 함께 있던 사람들의 성화로 드라마 <식객>으로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사람의 질문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끝까지 시청하는 것이 별 의미없다고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 오늘 사이에 혹시나 하여 관련 기사를 들추어 보다가 역시나 하면서 올 봄 얻어 들었던 4자 성어가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無信不立(무신불립).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물음에 족병(足兵), 족식(足食), 민신(民信)이라 답했다. 말하자면 안보와 경제, 백성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그 중 하나를 버리라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 묻자 족병을 버리라 했고, 또 하나를 버리라면 무엇을 버려야 하느냐 묻자 족식을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민신은 버릴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백성과의 신뢰는 나라의 근본이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한나라'당'만의 대선공약?

그 날의 대화에서 대통령은 등록금 절반 공약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자신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답하였다. 곧바로 등록금네트워크의 반박성명이 나왔다.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나라당의 대선공약이 대통령 후보인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당의 후보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잖은가? 차라리 솔직하게 그 공약이 무리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처럼 말을 뒤집는 것은 아 자신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서 뒤집은 것이 아니라고 할 터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소용없을지 모르겠다.

사실 대통령만 자신의 약속을 번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운하를 둘러 싼 공방을 보노라면 어느 한 고위직이 "중단된 게 아니다" 그러고 나면 곧바로 다른 장관이 "안하는 게 맞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그리곤 곧바로 어느 구석엔가에서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아마 모두들 대통령이 하듯이 내가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고 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모든 사람들의 발언이 여러 개의 이명박 정부가 있어서 나오는 발언이 아니라 단 하나의 이명박 정부에서 나오는 발언으로 알고 있는 것이어서 어느 말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게 된다. 정부내의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말을 바꾸어가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정책 일관성 없으면 투자도 살아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투자에 나서고 그동안 서랍속에 들어 있던 사업계획서가 금방이라도 집행될 것 같던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투자에 나서고 그동안 서랍속에 들어 있던 사업계획서가 금방이라도 집행될 것 같던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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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9월 위기설은 '설'로 끝났고, 대통령도 위기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기라는 단어를 꺼낸 것은 그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긴장하라고 한 말이라고 에둘러 갔다. 허허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 어떤 구체적 정책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들고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포진해 있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야인 시절에 수도 없이 하던 말들이었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을 경우에 경제주체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투자와 생산활동에 적극적일 수 없으며 천변만화하는 정책에 따른 투기만 성행하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투자에 나서고 그동안 서랍속에 들어 있던 사업계획서가 금방이라도 집행될 것 같던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어느 정책이 실제 집행될지, 되더라도 변화는 없을지 확신이 없는 경제주체들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할리 만무하다. 이런 게 쌓이면 위기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이렇게 신뢰가 없으면 결국 무신불립,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많은 글을 써 온 <문화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등골에 땀이 날 정도로 무서운 말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에서 버릴 수 없는 것을 너무나 쉽게 버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無信不立.   

* 필자가 '無信不立'이라는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올 봄 신영복 선생님과 성공회대 서도반 교수들의 서화전에 나오는 출품작 때문이었다. 출품할 글 중의 하나로 신영복 선생님은 이 말을 추천했고, 조희연 교수가 글씨로 옮겼다. 대통령 취임식 무렵이었으니 신영복 선생님은 이미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계신 셈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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