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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12일 서울역에서 만난 KTX 여승무원 최지혜(28·가명)씨는 "고향으로 떠나는 KTX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뻔한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한숨부터 내뱉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부모님이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다음 명절 땐 집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군들 추석을 맞은 서울역에서 온 몸에 쇠사슬을 감고 하루 종일 귀향객들을 바라보고 싶을까. 지혜씨는 서글픔이 앞선다. 일부 귀향객들의 따뜻한 시선이 "눈물날 정도로 고맙다"는 그는 무표정한 얼굴엔 고개를 떨어뜨린다. 특히 찌푸리는 얼굴 앞에선 도망가고 싶단다.

 

이어 지혜씨는 "어쩔 땐 쫓아가서 '왜 그런 식으로 보느냐'고 반문하고 싶다"며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누가 잘못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답답하다고도 했다. 

 

KTX 여승무원 외면한 강경호 사장... "사람에 대한 예의는 있나"

 

지혜씨는 쇠사슬 농성 이틀째인 이날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어젯밤 승강장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그 곳에서 잠을 이뤘지만 개운하지 않다. 

 

하루 종일 허리를 펴고 앉아있는 건 고역이다. 머리·어깨·허리·골반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몸이 아픈 건, 몸을 많이 못 움직인 탓도 있지만 쇠사슬 때문이기도 하다.

 

지혜씨는 "쇠사슬을 몸에 처음 걸쳤을 때 그 무게감에 놀랐다, 하루 종일 온 몸을 X자로 쇠사슬을 감고 있으려니 몸이 견뎌내질 못 한다"고 말했다. 지혜씨가 기자의 몸에 쇠사슬을 묶자, 그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음이 느껴졌다.

 

"몸이 아픈 거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힘들다"고 지혜씨는 말한다.

 

어제(11일) 저녁 KTX 여승무원 문제 해결의 키를 가지고 있는 강경호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이 KTX 여승무원들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쳤단다. 지혜씨 옆에 있던 김현지(29·가명)씨가 말했다.

 

"아무리 사태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해도 농성하고 있는 우리를 봤으면 '고생한다'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애써 우리가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KTX를 탔다는 그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지 의문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 날 오전, 아침 식사로 나온 김밥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지혜씨는 서울역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농성에 돌아오더니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오전 11시 고개를 바닥에 파묻고 말았다. 옆에 있던 현지씨가 한동안 그의 허리를 두드려줬지만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한나라당·민주당의 '국민'에 그녀들은 없었다

 

같은 시각, 서울역 광장에서 대합실로 가는 길목은 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정세균 대표, 원혜영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민주당은 국민 편입니다'는 전단을 나눠주며 귀성 인사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섰다. 기자들이 그들을 둘러쌓다. 좁은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온 승객들은 민주당 지도부와 기자로 큰 혼잡을 겪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서울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개찰구에서 전단을 돌렸다. 

 

개찰구 바로 아래에는 KTX 여승무원들의 농성장이 있었다. 한 코레일 관계자는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KTX 여승무원을 만나지 않고 돌아섰다.

 

이날 정세균 대표는 '서민 위한 부가세 인하'라는 어깨띠를 맸다. 그가 나눠준 전단에는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를 지키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이것을 본 현지씨는 혀를 끌끌 찼다.

 

"우리에게 추석 인사하는 게 어려운 일인가. 민주당 분들이 비정규직법을 만든 사람들인데, 우리한테 눈길도 안 줄 수 있나. 사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은지 오래 됐다. 너무나도 씁쓸하다."

 

이날 한나라당은 귀성 인사 장소로 서울역이 아닌 영등포역을 찾았다. 현지씨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겠지만, KTX도 서지 않고 정차하는 새마을·무궁화 열차수도 급감한 영등포역에 왜 귀성 인사를 가느냐, 우리가 뛰쳐나올까봐 서울역에 못 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속는 셈 치고 다시 교섭... 결렬되면 더 강한 투쟁"

 

이날 역시 귀성 인사를 위해 서울역을 찾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는 KTX 여승무원들을 만났다. 진보신당 관계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석은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추석'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KTX 여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강 대표는 KTX 여승무원들에게 "오늘 강경호 사장이 자회사 정규직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여승무원들은 "처음부터 코레일은 정규직을 약속했다, 그러나 자 회사는 언제든지 청산할 수 있다"며 강 사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강 대표는 이후 다시 강경호 사장 쪽과 접촉해 "성실한 교섭에 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결국 KTX 여승무원들은 강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오후 5시 40분께 쇠사슬과 함께 농성을 풀었다. 김영선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은 "우리는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게 아니다, 성실한 교섭을 위해 우리가 농성을 풀겠다"고 말했다.

 

KTX 여승무원들은 속는 셈치고 다시 한 번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이번 교섭도 결렬되면 더 강한 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서울역 서부역 인근 40m 조명철탑에선 오미선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대표 등이 17일째 내려오지 않고 있고, 부산역에서는 단식농성이 11일째를 맞았다. '더 강한 투쟁'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태그:#KTX 여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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