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리. 전라도 말로 '못난 놈' 정도로 이해하면 맞을 것 같다. 며칠 전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가까이 사는 지인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면 단위 이웃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우리 한 번 뭉쳐볼까'하고 사발통문을 돌리면 '재까닥' 모여지는 게 시골 사는 재미인데 그 날도 이렇게 마련된 자리였다.
대부분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라 화제는 자연스레 추석명절에 모여들 형제들 뒤치다꺼리며 차례 음식 마련하기 등 명절을 앞둔 크고 작은 애환으로 모아지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한 지인이 명절 때면 만나게 되는 재경 동창들과의 상봉을 끝내고 느껴지는 쓸쓸한 소회를 털어놨다.
"우리 초등학교 졸업생이 총 150명인데 고향에 남은 사람은 나까지 다섯 명밖에 안 된단 말이요. 여개서 나고 자라 부모님 모시고 고향을 지키는 내가 한 번도 못났다고 생각 않았는데 요새는 그 맘이 안 드는 거여. 일찌감치 서울로 나가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그 왜 있잖아? 그랜저 아니 에쿠스 타고 내려와 큰소리 땅땅치며 역세권에 15억 주고 산 땅이 1년 만에 100억이 됐다는 둥 뻐기는 걸 보면 참 허망하더라구.똑똑한 것들은 죄다 빠져나가 저렇게 날고 기는데 나는 뭔가? 나도 진즉 저 애들처럼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면 이보다는 잘 살지 않았을까? 다 늙도록 이 좁은 촌구석에서 부모님 모시고, 선산지키고 때 되면 찾아오는 형제·친척들 치다꺼리하며 이것이 뭐여?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옛말처럼 고향을 못 떠난 내 자신이 결국 '모지리'라는 걸 증명하는 거 아냐…."도시 친구들과 비교되는 무능 앞에 입맛이 쓰다 고향에 남아서 농사도 짓고, 국밥집도 하고, 소도 키우고, 지방 공무원도 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 모두 한 눈 한 번 안 팔며 부모님과 처자식 건사하느라 최선을 다했건만 남은 건 도시 친구들과 십수 년 차이 나게 보이는 주름투성이 얼굴과 허름한 살림살이. 고향을 지켰다는 자긍심은커녕 한없이 초라해진 늙음만 남은 셈이니 지인의 한탄도 무리는 아니다.
고향에서 뼈 빠지게 농사를 져 살림을 차츰차츰 늘려나간 사람들의 허탈감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농촌에서 아무리 땅을 늘려놓은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시골 땅 부자, 일 부자'라는 말도 있듯이 땅이 아무리 많은들 그 땅이 서울에서처럼 큰 재산이 될 가망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주변에 부자 소리 듣는 지인들을 보면 하나 같이 땅으로 승부를 본 사람들이란다. 자기 직장에서 성실히 일해 차곡차곡 저축을 하는 모범적인 생활인들의 귀착은 고작 자식들 공부시키고 중대형 아파트 한 채 소유하는 게 대부분이라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찌감치 이재에 눈을 뜬 지방 유지들은 하나같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더라도 자식들이 있는 수도권에 투자한단다. 모두들 한없이 천박해진 물질만능 세태를 한탄하면서도 그 와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무능 앞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왕 '버린 몸'이라고 치자. 자식들만큼은 우리보다 나아야 하지 않을까? 이구동성으로 농촌은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넓은 세상에서 제 기량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희망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도시와 농촌 간의 불공정 게임에 우리 자식들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잖아요. 우리 애들은 서울로 보낼랍니다. 다만, 아이들 결혼시킬 땐 꼭 집안을 볼 거예요. 근본도 없이 땅 투기로 부자가 된 사돈은 사양합니다. 아무리 부잣집이라 해도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인간들과 어떻게 상종해요?"한 지인이 이렇게 열변을 토하자 옆에 있던 지인이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꺽정말어. 그런 부잣집들이 웬만한 집구석하고 사돈 맺으려고 하간디? 그래도 그 수백억 부자들이 나보고 부럽다고 그러데. 뭐, 말로만 그러는 거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래. 수백, 수천억 가진 놈이나 우리처럼 촌에서 자연과 함께 산 놈이나 죽을 때 맨손으로 가는 건 똑같지 않겠어? 재산 모으려고 머리통 터지는 놈들보다 우리처럼 욕심 안 내고 조금 벌고 조금 먹고 인간 도리 저버리지 않고 사는 인생, 이것도 길게 보면 괜찮은 것 같아."아름다운 '모지리'들이 없다면 어디에 정붙일까선대 조상 묘소는 물론 그 주변에 버려진 이름 모를 묘소 벌초까지, 옆구리가 결리도록 하루 종일 예취기를 돌리고 온 지인들의 웃음엔 그늘이 없었다. 어디 남정네뿐이랴. 먼 데 사는 까닭에 빨라야 명절 전날 밀어닥치는 시 형제 식솔 챙길 준비 하느라 입술 부르트는 시골 아낙들도 마찬가지다.
명절만 돌아오면 온갖 매스컴에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주부들의 사례발표에 열을 올린다. 도심에 사는 주부들도 이럴 정도인데 시골에서 시어른 모시며 농사까지 거들어야 하는 농촌 아낙의 고달픔을 말해 무엇하리.
명절에 쓸 깨 볶고 형제들한테 나눠 줄 참기름부터 짜둬야 한다. 그다음 차례상에 올릴 송편 재료 준비하랴, 싱싱한 생선 사서 손질해 꾸들꾸들 말려놓으랴 나물 재료까지 꼼꼼히 챙기려면 느긋하게 앉아있을 새가 없다.
게다가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형제·자매들인데 섭섭하게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는 터. 시동생, 조카들 손에 안길 먹을거리까지 장만하려면 그 고단함이 몇 배 더 증가된다. 그러나 비록 '이녁' 몸은 고단해도 '짜잔한' 시골 선물 받아들고 좋아하는 동서들 얼굴 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짜증과 고단함이 일시에 사라진다니 그 마음씀에 할 말이 없어졌다.
출향 인사들이여. 고향에 남은 '모지리'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그들마저 없으면 고향의 푸근함은 누가 지킬 것인가. 햇볕에 그을려 거무튀튀해진 얼굴, 흙일에 닳고 닳아 뭉툭해진 손가락. 잘난 사람들 앞에 내 형제, 내 친구라고 당당하게 내세우기 머뭇거려질 정도로 촌스런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이 아름다운 '모지리'들이 없다면 정붙일 곳이 너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