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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도로 정체. 서울토박이인 나는 한 때 그런 고생을 하고 싶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도로 정체. 서울토박이인 나는 한 때 그런 고생을 하고 싶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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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의 귀향 풍경은...

전라도 어머니와 경상도 아버지 사이의 서울 딸내미들, 우리들의 고향은 서울입니다. 사진 속,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명절 때엔 자주 시골을 방문하기도 했었나 봐요.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서둘러 하늘나라로 가시고, 우리 가족의 큰집은 일산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그것도 귀향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면 그 소요시간은 명절날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차를 타고 딱 20분이 걸려요.

설과 추석에만 방문하는 일산은 저에게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동네 사람들이 싸악 빠져나간, 한산한 잿빛 성냥갑 신도시입니다. 아침 차례를 드리고 쌩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끔 때때옷을 입고 공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뿐이에요.

그래서 연휴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TV에서 들려오는 귀향과 귀성 대란, 꽉 막힌 고속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서울역사와 고속터미널 풍경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남의 일이죠. 때로는 우리도 하루 웬 종일도 좋으니 그 행렬에 함께 해 비좁은 차 안에서 몸을 비비 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구운 감자며 호두과자 군것질을 할 시간만을 기다려보고 싶기도 했어요.

서울 토박이의 귀향 도전

그래서 머리가 꽤 크고 나서 언젠가, 우리도 시골에 가자고 조르고 졸라 외갓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어요. 기차는 이미 매진이었죠.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붐비는 고속터미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꽤 재미있었죠. 천천히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우리도 간다~’하고 음표를 그리며 신나하기도 했지만요.

정말 귀향이라 하는 것은 생각만큼 낭만적인 건 못 되더군요. 터미널에서 신나게 챙겨두었던 간식이 바닥을 드러내고 읽던 책도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즈음 되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벌건 후미등, 한 시간 내내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차창 밖 풍경, 그런 것들은 정말 진을 쪽 빼는 일이었어요.

탈출하듯 버스에서 내리자 발바닥이 마치 붕 뜬 듯 현실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정작 도착한 시골에서도 어머니는 물론 오래간만에 만나는 식구들이 참 반가웠겠지만 우리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니 어색하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돌아오는 길도 역시나, 귀향이니 귀성이니 하는 것에 학을 뗄 만큼 힘든 길이었어요.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로 뱅글뱅글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며 서울에 닿았죠.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터미널 주변에는(아마도 고향의 마음이 가득 담긴) 짐을 바리바리 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집으로 돌아갈 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도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한밤의 한강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내 고향 서울, 언제나 한가위만 같아라

사람 많고 복잡한 서울이 내 고향이다.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나는 한가위의 서울이 좋다.
 사람 많고 복잡한 서울이 내 고향이다.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나는 한가위의 서울이 좋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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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오히려 오고가는 데 진 다 삔다. 일 년에 두 번 쉬는 날인데 괜히 움직이면 몸만 힘들지 그냥 집에서 자는 게 엄마는 쉬는 거야."
"나도 마지막 날에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했어. 가긴 어딜 가. 힘만 들지."

그 후 몇 번의 귀향 도전 후 가족들의 일관적인 반응들 덕분에, 그리고 큰집이 일산이라는 가장 큰 이유로 우리들의 귀향(?)은 다시 집에서 차를 타고 20분 거리가 되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거실을 빼곡하게 채운 친척들, 거나한 제사 음식, 송편 만들기, 윷놀이도 없지만 우리 집 명절은 평소에 얼굴도 보기 힘든 가족이 한 집에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시장에서 사 온 솔잎 붙은 송편과 동태전을 집어먹고 그득그득 선물로 들어온 과일박스에서 사과와 배를 깎아 먹으며 하루 종~일 '명절다움'을 중계해주는 TV로 명절감각을 잃지 않는 평범한 가족이지요. 아마 이번 2008년 한가위도 조용한 명절, 쉼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이 고향인 다른 친구들과 연락이 닿는다면 종로 혹은 명동쯤에서 그이들과 만나 서울 토박이들끼리의 수다를 떨고 있겠죠. 놀라울 속도로 쾌속 주행을 하는 버스를 타고 말예요.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을 그 한산함과 여유로움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도 한가위의 서울, 저의 고향이 참 좋아요.

언제나 한가위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태그:#추석,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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