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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물의 세상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 사람들의 삶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모릅니다. 차이가 있다면 간혹 인간은 절망하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 간혹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하지만 식물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어떤 위험스러운 상황이 닥쳐도 그곳에서 온몸으로 부딛쳐야 하는 그들, 추석을 맞아 벌초로 잘려나갔지만 저 땅 속 깊은 곳 남아있는 뿌리는 다시 새순을 돋게 하고, 새순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른 새순이 그랬던 것처럼 이른 아침이면 제 몸에 있는 물을 내어놓습니다.

 

 

이미 오이풀의 꽃은 거반 지고 없습니다.

꽃 윗부분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작은 꽃, 그 작은 꽃도 가만 들여다 보면 신비롭습니다.

그렇게 꽃을 피우고, 이젠 내년을 기약하는가 싶었는데 다시 새순을 내다니, 꽃을 피우지 못한들 삶에 대한 열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추석날 시골에 들렀다가 오후에 풀섶을 걸으며 내일 아침 이슬이 맺히면 좋을 소재들을 하나 둘 눈여겨 보아두었습니다. 거미줄, 오이풀, 쇠뜨기, 강아지풀, 이런저런 꽃들과 이파리들을 보면서 새벽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슬은 생각했던 것만큼 내리질 않았습니다. 봐 두었던 거미줄도 사라진 것을 보니 밤새 산짐승이나 날짐승이 거미줄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이풀과 쇠뜨기는 실망을 시키지 않고 제 몸에서 내어놓은 물방울 보석으로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쪼그리고 앉아서 담다가,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결국 풀밭에서 뒹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막내가 "아빠는 나보다 더 개구쟁이네?" 합니다. 꼭 막내만한 초등학교 시절에 오이풀을 따서 손바닥에 '탁! 탁!' 내리치면서 "오이 냄새 나라, 수박 냄새 나라, 참외 냄새 나라"하며 주변의 온갖 들풀들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일액현상이 만들어낸 물방울 보석, 그들을 보면서 '텅 빈 충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비우고 또 비우기에 그들의 가고 오는 모습 모두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마음을 보는 듯합니다. 

 

작은 잎맥들이 연결되어 이파리의 끝으로 제 몸의 물을 내어놓습니다. 그렇게 물이 돌고 돌면서 그들은 초록의 생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물을 내어놓지 않고 축적하기만 한다면 저 잎맥들이 터져서 초록의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들도 광합성작용을 멈추고 열심히 물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겨울 몸에 남아있는 물이 얼어서 팽창이 되고, 나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죽는다고 합니다. 비움, 목마름, 그것이 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자신만을 위해서 축적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유하면 할수록 더 소유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그는 풍성하면서도 늘 부족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누면서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작은 이슬방울은 세상을 담아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근처에 있는 가을 코스모스를 담았네요. 아침 나절 잠시지만 그 순간만큼은 실물보다도 더 예쁘고, 신비스럽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작은 이슬방울 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보니 이런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사치인 것처럼, 하릴없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재충전, 그렇습니다. 짧다면 짧은 인생 길이지만 재충전하지 않고 쉼없이 달려가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치면 절망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연을 바라보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이풀, #일액현상, #이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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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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