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도 이랬으면···."
YTN 노동조합(위원장 노종면)의 16일 '생방송 시위'를 현장에서 취재한 한 인터넷신문 기자의 소감은 이러했다. 살짝 상기된 얼굴. 최근 YTN을 비롯해 KBS, MBC 등 미디어 분야를 취재하고 있는 이 기자에게도 이날 YTN 노조의 투쟁은 신선한 듯했다.
현장을 지켜본 기자의 느낌이 이 정도라면, 당사자로 직접 참여했던 YTN 노조원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한 노조원은 "공정 방송을 사수하겠다는 높은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더 뜨거워지고, 응집력 높아진 YTN 노조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구본홍 사장 반대를 외치며 공정방송 사수 운동을 벌이고 있는 YTN 노조의 활동이 심상치 않다.
아침마다 구본홍 사장 출근 저지에 나선지 어느덧 60일이 넘었다. 무더운 여름을 온전히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보낸 셈이다. 당연히 지칠 법도 하다. 하지만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운동의 열기는 높아졌고, 활동의 응집력은 더 끈끈해졌다.
그렇다고 그동안 사측이 부드럽게 나온 것도 아니다. 부·팀장 개편이 있었고, 노조원들에 대한 인사이동 조치도 있었다. 징계 대상자 76명의 명단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사측은 임장혁 <돌발영상> 팀장을 비롯해 12명의 노조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민영화 카드'를 흘렸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YTN 재승인 문제를 언급했다. 그야말로 회사와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다.
사측과 정부의 전방위 공격... 그러나 YTN노조는 강했다
하지만 노조는 더 '세게' 나왔다. 인사이동 조치에는 불복종으로 맞섰고, 징계 대상자 명단이 공개됐을 때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직원들이 "나도 징계하라"고 앞다퉈 나섰다.
지난 2일부터 나흘동안 진행된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전체 조합원 395명 중 360명(투표율 91.9%)이 참여해 275명(76.4%)이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 집행부도 놀란 높은 투표율과 찬성율이었다.
그리고 17일부터는 연가 투쟁과 더불어 YTN 기자들이 '공정방송' 리본과 '낙하산 사장 반대' 배지를 착용한 채 뉴스를 전하기로 했다. 노종면 위원장은 "'리본·배지 투쟁'은 지금까지 해온 활동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일 '생방송 시위'는 이런 "강력한 싸움"의 신호탄 성격으로 진행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방송사고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사안이었지만 그 효과는 컸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것일까. 누리꾼들이 먼저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우선 <오마이뉴스>에 오른 댓글 제목부터 보자.
"어려운 시기에 YTN노조는 보석 같은 존재" - 주니엄마
"YTN화이팅! 御用(어용) 언론인 부끄러운 줄 알아야." - 캐논
"하는 걸 보니 YTN이 KBS, MBC보다 낫다" - 꽃잎
"YTN은 기필코 승리하리라!" - 허수애비
"또 보고싶다, 멋지다, 감동스럽다." - 감자깡
"이제 YTN뉴스 볼란다." - 랄
17일 새벽 1시 30분 현재, 관련기사에 총 87개의 댓글과 의견이 달렸다. 절대 다수가 YTN 노조를 지지하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소름이 끼쳤다"고도 했다. 누리꾼 '123'은 언론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찬사를 던졌다.
"권력에 맞설 수 있는, 바른 말 할 수 있는 자만이 언론인이란 이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서서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아무리 세상이 험난해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승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YTN 뉴스 볼란다"
'수원시민'은 YTN 노조원들을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와 비교했다. 그는 "손석희씨가 (MBC에서) 앵커를 할 때 방송 민주화 관련 배지를 달 때의 그 설래던 상황을 그의 자서전에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며 "오늘 이 장면은 그 당시 선배들을 능가하는 용기 있는 모습으로 방송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장식할 것이다. 감사하다"고 적었다.
'휴먼'은 "그 허를 보기 좋게 찔러서 공론화시키는 열정이 놀랍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그렇게 길이 생기는가보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지지를 보내며 고마운 마음 전한다"고 밝혔다.
몇몇 누리꾼은 YTN 노조와 비교하며 KBS 노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조한진'은 "KBS노조는 '낙하산 사장에 원칙적으로 반대' 하니 뭐니 말장난하며, 투쟁하는 척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고 지적했다.
'나무' 역시 "공정방송을 위한 YTN 노동조합의 싸움을 보면서 MB를 위한 방송을 선택한 KBS 노동조합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라며 꼬집었다.
YTN 노조로서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 예상은 못했다"며 "노조 사무실로 격려 전화도 많이 걸려왔는데, 공정방송을 원하는 국민들의 응원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무식한 정부 혼내 주는 막내가 나타났다"
17일부터 YTN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리본과 배지를 단 기자들은 뉴스와 더불어 '공정방송 사수'의 메시지를 시청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현재 분위기로 봤을 때 시청자들은 더욱 YTN 노조를 응원할 게 뻔하다. 사측은 편집과정에서 문제의 화면에 대해 삭제를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사측은 17일 오후 3시 인사위원회가 열어 인사이동 조치를 거부한 노조원 24명에 대한 징계를 논의한다. 징계 대상 노조원 24명은 모두 인사위에 참여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로 했다. 이들의 징계 양상에 따라 노조의 대응은 달라질 것이다.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16일 '생방송 시위'를 마치고 노조 공지를 통해 "내일(17일)부터 제작되는 모든 리포트에 배지와 리본 패용 화면이 삽입될 수 있도록 조합원 여러분의 결연한 동참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의 글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최시중씨까지 나선 걸 보니 우리의 지난한 투쟁이 정점에 이른 듯합니다. 조금만 힘을 냅시다."
노조의 힘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 누리꾼은 "무식한 정부를 우리 막내(YTN)가 혼내 주는 구나"라고 적었다. 구본홍 사장은 분명 예상보다 훨씬 무서운 막내를 만난 듯싶다. 든든한 지원군과 관중을 얻은 '막내의 투쟁'에 많은 눈길이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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