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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 폐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최근 잇따른 지방의회 비리로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미 민주당 이시종 의원이 지난 4일 지방선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가운데, 정치권은 물론 각종 풀뿌리 단체 및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주요한 과제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에 관한 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애초 광역단위로만 허용되었던 정당공천은 1994년 선거법 개정으로 기초의회에까지 허용되었다. 그러나 1995년 지방선거 직전 여·야간 변칙적인 법 개정으로 기초의회 정당공천은 다시 배제되었고, 2005년 선거법 개정에 이르러 또 다시 허용되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정당공천 문제는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하며 수많은 논의를 거쳐 왔다.

 

그렇다면 정당공천 문제가 '배제→허용→배제→허용'이라는 쳇바퀴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거대 보수정당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당공천 문제를 정략적으로 활용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 다시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며 쳇바퀴만 부여잡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이 주장이 정말 올바른지 진지하게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정당공천 폐지 주장, 근본적 정치개혁 필요성 은폐시켜

 

우선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주장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주장의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정당공천제가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결과적으로 지방분권이 약화되거나 변질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당정치가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폐해가 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실제로 우리의 지방자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위 '풀뿌리 보수주의'라 불리는 지역의 기득권 세력들은 일부 거대 정당의 손과 발을 자처하며 중앙정당과 긴밀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각종 선거에서 표를 동원하는 조직책 역할을 담당하며 그 대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받는다. 때문에 공천헌금 강요나 국회의원 줄서기 같은 구태를 좀처럼 벗어던질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바꾸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당공천이 폐지되면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정당공천이 배제된 지방의회 선거를 경험한 바 있고, 그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정당공천 폐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 주장은 더 근본적인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은폐시키는 잘못된 주장이다. 적어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경우는 그렇다.

 

문제는 거대정당의 '정치독점구조'

 

반면 정당공천이 허용돼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지방자치가 행정적 차원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 차원의 성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방자치는 주민참여와 분권을 통해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앞당기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지방자치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주민과 지방자치단체를 매개할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상향식 주민의사형성을 매개하고 지역 주민을 대변할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당의 활동이 활성화됨으로써 지방자치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은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거대정당의 '정치독점구조'가 문제이다.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참여가 지역의 기득권 세력과 결탁된 일부 정당으로만 제한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특히 지방선거에서의 이러한 독점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지방자치제도(117조, 118조)를 온전히 구현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때문에 거대정당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이용하여 사실상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를 지배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다양한 정당 또는 꼭 정당이 아니더라도 여러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해 정치적 다원주의를 이루게 된다면 이는 지방자치의 이념에도 부합할뿐더러, 서로 간의 견제와 감시를 통해 각종 비리와 부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정당설립의 자유와 국민들의 선거권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독점구조'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비밀은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그리고 '선거법' 등 각종 정치 환경 속에 숨어있다.

 

정당의 설립과 구성 요건을 바꿔야

 

우선 정당의 설립과 구성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시·도당은 5곳 이상 두어야 하며, 각각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요건들은 정당의 본질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다.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 (정당법 제2조)

 

그렇다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중앙당이 수도에 소재해야 하고 전국적으로 1천명 이상의 당원이 있는 시·도당을 5곳 이상 둬야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히려 이러한 요건은 정당의 본질을 훼손한다. 그리고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진입장벽으로 기능하면서 거대정당들 위주의 정치독점을 용이하게 만든다.

 

독일의 예, 선거인단체(Wählervereinigungen)

 

독일은 우리와는 달리 정당에 일정한 요건을 요구하는 등록 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정당법에 따라 6년 연속 연방의회 또는 주의회선거에 자신들의 고유한 후보자명부를 가지고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정당의 법적 지위는 상실된다.

 

독일에는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참여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정당이 아니어도 정당과 똑같은 지위로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의 초지역적인 속성이 지방자치와 상충한다고 판단해 이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둔 것이다. 이른바 선거인단체(Wählervereinigungen)가 그것이다. (김남철, "다양한 정치세력의 지방선거 참여를 위한 법적 과제", 공법연구 제35집 제3호)

 

선거인단체는 선거인그룹 혹은 지방자치단체정당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활동이 지역문제에 국한된 정치세력이다. 바이에른 지방선거법에는 이를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기타의 인적 결사체 또는 그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도 정당이 아닌 정치세력에게 정당과 동등한 선거참여 권한을 제공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령 마포에는 '공룡발톱'이라는 지역어린이센터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곳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먹을거리와 지역의 교육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들이 지역의 먹을거리와 교육 정책에 대해 관여하고 더 나아가 이웃 주민들과 함께 선거인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주민참여, 지방자치가 아니겠는가.

 

공정한 경쟁을 위한 다른 조건들

 

정당의 설립과 구성 요건을 완화하고 선거인단체에 공천권을 부여하는 일은 단지 출발선을 맞추는 일에 불과하다. 어떤 선수는 잘 조성된 트랙 위에서 뛰고, 또 어떤 선수는 모래밭길 위에서 뛴다면 이것 역시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거대정당의 정치독점을 돕는 다른 조건들을 바꿔야 한다.

 

첫째, 국고보조금 제도를 대폭 바꿔야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을 배출하거나 전국선거에서 득표율이 100분의 2 이상인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각 정당이 지급받은 국고보조금은 총 149억 7500만원. 이 중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가져간 금액은 119억 7900만원이다. 게다가 선거 때에는 별도의 선거보조금이 수백억 원 지급된다.

 

자발적인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에게, 그것도 일부 거대정당에게 몰방으로, 게다가 50%를 밑도는 투표율로 치러진 선거를 기준으로 이렇게 많은 세금을 퍼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절대적 상한선 마련과 여러 정당과 정치세력에 대한 상대적 형평성 고려가 시급하다.

 

둘째, 선거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현행 헌법은 선거운동에 관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면서 법률이 정하는 바를 제외한 선거 경비를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16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거결과가 기탁금 반환요건(선거후보자의 득표수가 유효투표총수를 후보자수로 나눈 수 이상이거나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15 이상인 때)을 충족 할 때에만 국가가 이를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기탁금 반환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겠나. 수백억씩 국고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받아 챙기는 거대정당들밖에 없다.

 

그밖에도 투표도장을 줄 세우는 기호제도, 지역을 할거 하며 기득권 연합을 공고히 만드는 소선거구제도, 생색내기 비례대표제도 등 뜯어 고쳐야 할 선거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독점의 방패막이들을 걷어치워야

 

우리가 지방의회의 각종 문제점들을 더 이상 묵은 치부장처럼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지방자치야 말로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진정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의회의 각종 문제점들을 모두 다 거대정당의 정치독점과 그를 용이하게 만드는 각종 정치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른바 진보정당들의 지역정치 및 지역대안 부재, 풀뿌리 주민 조직의 취약성 등 지역정치의 또 다른 주체들이 가진 내적인 한계들 역시 극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바뀔 것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정치독점의 방패막이들을 걷어치우지 않고서는 지방의회 개혁도, 온전한 지방자치 실현도 불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조영권 기자는 사회당 지역정치팀장입니다.


태그:#정당공천,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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