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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입구에는 예쁘고 귀여운 남녀 석장승이 서 있다.
▲ 관룡사 석장승 관룡사 입구에는 예쁘고 귀여운 남녀 석장승이 서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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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하면 대개 부곡 온천을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제2의 경주’로 불릴 만큼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이다. 6가야 중 하나인 ‘비화가야’(빛벌가야, 비사벌)는 물론, 서기555년 신라로 복속된 이후까지 발전한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창녕은 ‘제2의 경주’로 불릴 만큼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이다

<창녕문화재를 찾아서> 10회까지는 거의 발품으로 답사했다. 먼저, 창녕시장1길로 접어들면 국보 술정리동3층석탑과 보물 서삼층석탑을 만난다. 계속해서 창녕읍사무소로 조금 가면 만옥정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신라진흥왕척경비와 퇴천리3층석탑, 대원군 척화비, 그밖에 창녕객사와 선정비가 있다. 또, 만옥정 공원을 나와서 한 마장 정도 걸으면 목마산성 아래 송현동 고분군에 닿는다(송현동 고분군은 현재 발굴 중이다).

이어 눈 발치로 보이는 창녕박물관에 들러 ‘비화가야’의 유물들을 관람하고 나면, 맞은편에 교동 고분군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읍내 쪽으로 들어오면 창녕석빙고가 턱하니 버티고 있다. 주변에 통뼈감자탕을 맛깔스럽게 잘하는 가게가 있어 출출한 뱃속을 다독이기에 충분하다. 그 길로 창녕군청 쪽으로 곧장 가다가 창녕군청 올라가는 길에서 100m쯤에 탑금당치성문기비가 있다. 이게 대략을 도보로 가능한 창녕의 문화재다.

창녕읍내에는 걸어서 답사가 가능한 문화재가 많다

이번 11회부터는 창녕문화재 두 번째 답사코스로 계성-관룡사다. 계성에서 차를 몰아 옥천계곡으로 접어들면 양편으로 길 안내하듯 늘어선 산들의 풍광이 장관이다. 물 좋아 계곡이 아름다워 ‘옥천(玉泉)계곡’이라 했는데,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국풍의 집들이 새롭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광들이다. 이제 옥천계곡이 전원주택지로 손꼽히는가 보다.

계성을 출발한 지 십여 분 옥천계곡 매표소다. 이어 채 오 분을 숲길을 달리니 관룡사다. 그런데 여느 사찰 산문과는 달리 관룡사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에 관룡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오솔길 양편에 서 있는 석(石)장승을 만난다. 차도가 생기기 전에 이 길이 아마 절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을 것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여(女)장승인데, 얼굴에 부드러운 선을 유지하고 있다.
▲ 관룡사 여석장승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여(女)장승인데, 얼굴에 부드러운 선을 유지하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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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있는 것이 남(男)장승이고, 얼굴 선이 부드러운 여석장승에 배해 턱이 각져 있다.
▲ 관룡사 남(男)석장승 왼쪽에 있는 것이 남(男)장승이고, 얼굴 선이 부드러운 여석장승에 배해 턱이 각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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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석장승은 한 쌍으로 만들어져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예쁘고 귀여운 남녀상인데, 왼쪽에 있는 것이 남(男)장승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여(女)장승이다. 전반적으로 거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왼쪽이 2.2m, 둘레 0.7m, 오른쪽은 2.5m, 둘레 0.8m로 조금 차이가 난다. 상투와 둥근 머리가 툭 튀어나온 왕방울눈, 주먹코, 그리고 아래로 뚫린 콧구멍, 방방한 턱 등이 특징이다. 다만 남장승의 턱이 각진 데 비해 여장승은 부드러운 선을 유지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

관룡사의 석장승은 “소박하고 친밀하다”

일반적으로 절에 있는 장승은 절의 경계나, 논밭, 절에서의 사냥이나 어로의 금지, 호법(護法, 불교수호) 등을 표시하기 위하여 세우거나 좋은 형국으로 바꾸기 위해, 또는 절의 수문신으로 민속신앙을 수용한 경우에 세웠다. 또 장승의 기원은 고대 성기(性器)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寺田)의 표시로 이용되었다는 여러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승을 지방에 따라 벅수 벅시 법수 수살목 당산할매 등으로 불렀다. 장승은 소속과 위치에 따라 마을을 지키는 마을장승, 사찰입구나 사방 경계에 세워진 사찰장승, 지역간의 경계, 성문(城門), 병영(兵營), 해창(海倉), 관로(管路) 등에 서 있는 공공장승 등이 있다.

이 곳 장승은 관룡사의 소유 토지의 경계를 위한 표지(標識)이지만, 그 외에도 사찰 토지 안에서의 사냥과 어로를 금지하는 호법(護法), 절에 잡귀가 출입하는 곳을 막아주는 수호신, 풍수 지리적으로 허한 곳을 보충해 주는 비보(裨補) 등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 석장승는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소박함과 친밀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장승은 모두 절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위상에 걸맞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 관룡사 경내 입구에 서 있는 석장승 두 장승은 모두 절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위상에 걸맞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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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종국 기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에 알토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태그:#관룡사, #석장승, #수호신,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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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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