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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 부부에겐 새로운 도전과제가 주어졌다. 우리의 일상에 '평화(첫째딸아이의 태명)'가 찾아온 것이었다. 평화의 방문이 여러 가지 도전을 우리에게 던져주긴 했지만, 그때는 마냥 아이는 예쁘기만 했고 즐겁고 행복한 방문인 것만 같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로 언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물론 이런 도전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됐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도전들을 헤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평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 둘 해볼까 한다.

일회용 육아용품 쓰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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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두 가지를 약속했다. 그 하나는 반드시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전적으로 아내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지만 아내 역시 이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회용품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생태적인 이유가 으뜸이었음은 당연하다.

마침내 첫째딸 평화가 자연분만, 그것도 수중분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엄마의 젖으로 살이 오르고 키가 자랐다. 물론 나는 산후조리를 해야하는 아내를 대신해 열심히 천기저귀를 빨아서 뽀송뽀송한 평화의 엉덩이를 유지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편안하게 쉬고 있던 토요일 오후 일이 터진 것이다. 워낙 깔끔(?)한 성격인 평화는 그날도 역시 볼 일을 보고 난 뒤 축축해진 천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리에게 '응애'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아내가 평화의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부탁해 방안 한쪽에서 뒹굴뒹굴 TV를 보던 나는 이내 '또 쌌어?'라는 볼멘소리를 던지며 기저귀를 한 장 빼들었다. 이제 막 아이에게 수유를 끝내고 옷을 추스리고 있는 아내를 보며 난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면서 나는 자주 볼 일(?)을 보는 평화에게 "혹시 소화불량 아니야?" "얘는 너무 많이 먹는 거 같애". "정말 걱정이다, 과식하면 안 좋은…"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사실 그 중얼거림은 평화에게 하는 부탁이었기도 했다.

사실 임신 중 나는 아내에게 아이의 기저귀 빨래는 모두 내가 하겠노라고 했다. 세탁기에 빨아도 된다는 아내의 중재를 과감히 거절하고 기왕에 생태적 육아를 선택한 바 손빨래를 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첫날 24장의 기저귀 빨래... 초심은 사라졌다

첫날 정확히 24장의 기저귀빨래를 하고 난 후 나는 속으로 '이거 장난 아니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손빨래를 하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내겐 힘에 부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의 배설물도 한 몫 했다. 선배 엄마 아빠들의 말대로라면 내 아이의 배설물은 향기롭기까지 하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더럽고 냄새도 싫었다. 나만 그런 것인가? 또 혹시 몸에라도 닿을까 조심조심 빨래를 하니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기저귀손빨래 때문에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좀 참았다가 한꺼번에 볼 일을 보면 좋을 텐데….'

하여튼 그렇게 불편했던 마음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 궁시렁거리는 소리로 표현되었나 보다. 물론 그런 맘으로는 기저귀를 조심스럽고 편하게 갈아줄 리도 없었을 터이다. 나의 이런 불평이 아이에게 들렸는지, 나의 무성의한 손놀림이 아이를 화나게 했는지 아니면 그 모두 때문인지 결국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나의 이런 행동을 처음부터 보고는 "꼭 기저귀를 갈 때 아이를 울리네요, 기저귀 빨래 때문에 당신이 힘들고 또 그 힘든 마음 때문에 아이와 우리가 서로 맘에 상처를 받는다면 이제부턴 종이 기저귀를 쓰던가요"라고 했다. 손빨래로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아내가 눈치채버린 것이었다.

처음엔 그 소리를 듣고 정말 솔깃했다. 그런데 그 솔깃함도 잠시였다. 그 땐 이미 천기저귀를 빠는 것이 단순히 세탁의 의미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아이의 엄마로 아이에게 수유를 위해서라도 항상 아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아이의 상태를 늘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들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나마 기저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오늘은 똥이 황금색이네?" "오늘은 똥을 4번 쌌구나" "어! 똥색깔이 좋질 않네, 어디 아픈가?" 등등 나와 있는 기저귀를 통해 아이의 건강상태를 살펴보며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저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 아이의 건강 정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던 천기저귀, 왜?

서로 다르지만 닮은 두 아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아볼 줄 알며 뭇 생명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 '평화'와 '온유'에게서 한수 배우다 서로 다르지만 닮은 두 아이.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아볼 줄 알며 뭇 생명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길...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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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만큼 큰 나눔이 있을까? 아마도 모든 사람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헌신적 나눔을 이웃에게 실천한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천기저귀를 빨면서 '평화'에게 한 수 배웠다. 내가 조금 더 수고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다른 이의 마음·슬픔·고통·기쁨….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애쓰고 돌아보면 보이는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점들.

이렇게 살핀 문제점들을 만나면 수고로운 천기저귀 빨래를 하듯 행동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도 함께 돌돌 말려 쓰레기통에 버려질 일회용기저귀같은.

어느새 둘째 아이 온유가 15개월이 되었다. 부끄럽게도 언니 때와는 달리 일회용기저귀로 키우고 있다. 많이 무뎌지고 많이 물러졌다. 비겁한 변명 같지만 다른 방법으로 육아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늘여가며.

우리집 차는 주2일 근무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하루 밖에 일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들과 필요한 짐을 싣고 멀리 가야할 때를 빼면 출퇴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아내,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볼 때도 마을의 재래시장을 이용한다.

심각한 응급상황이 아니면 병원에 가야할 때도 유모차를 태우고 아기띠를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를 좋아한다. 신나게 놀고 싶으면 '요이 땅~' 달리기 시합을 하며 한강으로 달려가 자전거도 타고 연날리기도 하며 논다. 그렇게 해도 기름값이, 다른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친환경 육아, 부자가 되는 길

경제도 어려운데 우리집 엥겔지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아내가 한살림과 생협의 식품과 생활재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누구처럼 가장 안전한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우리의 높아지는 엥겔지수로 우리의 땅이, 그곳을 지키는 농부가 살 수 있다는 아내의 주장을 넘어설 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해서이다.

덕분에 대형마트에 가서 충동구매할 일이 없어 좋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영세상인과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는 일이 없으니 더 좋다. 필요할 때 마다 들르는 재래시장의 떡볶이 집 아주머니와 사는 이야기 나누며 온 가족이 함께 먹는 떡볶이와 어묵도 아주 제맛이다.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차에는 이웃에게서 물려받은 책과 옷, 장난감이 가득하다. 이웃 사촌 언니의 어린 시절이 담긴 옷을 입고, 오빠의 낙서와 서투른 글씨가 쓰인 책을 읽으며 언니도 되어보고 오빠도 되어본다.

손때 묻은 장난감으로 두 자매는 신나하며 사이좋게 논다. 새 옷이 아니어도 새 책이 아니어도 새 장난감이 아니어도 나누어준 언니 오빠의 넉넉한 마음을 아는지 부자가 된 듯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부도 부자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가족 그린 특종 응모글'



태그:#한살림, #생협, #일회용품, #육아,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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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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