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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일까. YTN·MBC·KBS 세 방송사에서 요즘 펼쳐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느닷없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YTN이 그렇다.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YTN 사장이 바뀔 때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 예상치 못했다. YTN에 '낙하산 사장'이 오리라는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하지만 YTN노조와 기자들의 저항이 이처럼 완강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마침 불붙기 시작한 '촛불'의 응원 때문일까. 물론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YTN 사람들의 이 완강한 저항과 투지를 설명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들에게는 남다른 무엇이 있다.

 

반면 KBS는 예상대로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이 정권은 예상대로 KBS 장악 시나리오를 관철했다. 그 방법은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었다. 상식과 관행을 조롱하며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온갖 방법들이 총동원됐다.

 

그 결과는 공영방송의 본산을 자임하는 KBS로서는 참담하다. KBS 출신 첫 사장은 KBS 안팎에서 '관제사장'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그의 행보는 KBS의 위상을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그가 취임한 이후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KBS가 20년 이전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닌지 모른다.

 

KBS노조의 침묵, 정연주에 대해서는 '코드박살' 외치더니

 

무엇보다 예상을 뛰어넘은 것은 이런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KBS 내부의 내응이다. 정권의 KBS 장악 기도에 저항해왔던 기자와 PD, 사원들에 대한 보복 인사가 줄을 잇고, 이 권력이 못마땅해왔던 프로그램을 아무런 내부 평가 없이 없애겠다고 공공연하게 공언하고 있지만, KBS 노조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연주 사장에 대해서는 권력과의 연계를 주장하며 '코드박살'을 외치던 KBS노조가 이 정권과 정확하게 코드를 맞추고 있는 '관제사장'의 행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말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비단 박승규 위원장을 비롯한 현 노조 집행부의 '코드' 때문 만일까. YTN이 그런 것처럼 KBS 사람들 다수가 그렇지 않은데 노조 간부들만 그런 것일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조직은 있을 수 없다. KBS 구성원들의 다수가 암묵적으로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노조가 그런 길을 홀로 갈 수는 없다. 양심적인 기자들과 PD들이 인사상의 불이익도 마다하지 않고 거의 매일 KBS의 역행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다수의 다른 직종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반증 아닐까.

 

MBC는 그런 점에선 YTN과 KBS 중간쯤 있어 보인다. 느닷없이 '촛불'의 진원지로 몰린 <PD수첩> 제작진들과 MBC노조가 권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경영진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장과 사원들이, 노와 사가 얼마든지 힘과 지혜를 모아 MBC를 지켜낼 수 있었는데도 경영진은 권력의 압력에 내부 균열의 틈을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의 평균 생활에 비춰볼 때 결코 남부럽지 않은 여생이 보장되고, 이제는 명예와 자존심을 중시할 만도 한 경영진들이 왜 그렇게 나약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방송인들로서는 험한 시절을 맞는 것은 모두 똑같은데 왜 이런 다른 풍경들이고 다른 모습들일까. KBS나 MBC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 있는 YTN 사람들이 방송의 본모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이처럼 결사적일 수 있을까. KBS '관제사장'과 그의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KBS노조와 다수의 사원들은 어떻게 이렇게 권력에 순응할 수 있는 것일까. MBC 경영진들은 어찌 그렇게 어정쩡한 것일까.

 

아직은 모두 현재진행형의 일들이다. 예단하거나 속단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일 KBS·MBC·YTN의 미래는 오늘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결정돼 있는 것은 없다. 변화하지 않는 것 또한 없다.

 

당장 KBS가 관제방송의 길을 간다면 앞으로 누가 그들을 위해 시청료를 더 내겠다고 할 것인가. 국민의 입을 막고 귀를 어둡게 한 다음에 어찌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권력이 방송을 재편하겠다고 기세등등하지만, 언젠가는 시민들이 시민주권의 이름으로 방송의 전면적인 재편을 요구하게 될지 모른다. 시대의 역행은 또 다른 시대의 전혀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태그:#KBS노조, #YTN, #권력의 방송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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