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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비를 비롯한 사교육비 부담이 학부모들의 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하고 있는 현실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 지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서민들의 경제 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차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학원비가 물가 상승의 주범이어서 물가 관리 차원에서 이를 바로 잡을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장을 한참이나 모르는 순진한 일이어서 일선 교육청 직원들의 일감만 괜히 늘어나게 생겼다.

 

대통령이 지시하고 이를 받아 대개의 언론이 사회면 톱기사로 학원 관련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일선 교육청 평생교육담당 직원들은 전국의 모든 학원들을 일제 점검한다고 법석을 부릴 것이다. 실적을 보여줘야 하니까 몇몇 군데 학원은 수강료 과다 징수 등의 명분으로 행정조치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몇 군데 학원은 문을 닫을 것이고 또 몇 군데는 과태료 처분을 받을 것이다. 한 두어 달 지나면 단속실적이 발표되고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생길까? 학원비가 인하되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들어 서민 경제가 좀 여유가 생길까? 정말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주변의 몇몇 관료들 말고 우리나라에 있는 걸까?

 

아이들이 왜 학원에 다니는지 정부는 알까?

 

가장 쉬운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 보자. 우선 아이들이 학원을 왜 다닐까? 물론 바둑이나 피아노나 태권도 학원 말고 입시·보습학원을 말하는 거다. 학교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아닌가? 그렇게 보면 피아노 학원 같은 예능계 학원도 사실 인성을 길러주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내신관리 차원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립형 사립고나 외고 같은 소위 특목고 입시에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의 그 많은 과목들이 모두 최우수 등급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으면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고 만다. 특목고 안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일류 명문대 수시에서는 사실 특목고 출신 학생들을 선발해 가기 위한 전형을 하고 있지 않나? 서울대 안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서울대나 고려대 등 일류대를 가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대통령도 고대 출신이고, 주변의 참모나 내각의 각료들, 집권당의 주요 간부들 학벌을 한번 확인해 보시라.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녀들 일류 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지방도시는 매년 수능이 끝나고 나면 수시나 정시로 서울대 두어 명 보내면 학교 전체가 경사가 난 듯이 현수막을 내거는 풍속이 있다. 해당 아이가 거주하는 아파트 입구에도 그런 현수막을 내건다. 왜 그럴까? 말 그대로 경사니까, 우리나라 일류 대학으로 진학했고, 머지않아 이 나라의 최상층부에 진입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특목고에 갈 수 있거나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다면, 아니 특목고나 서울대를 나오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회 구조라면 대통령이 시시하게 학원비 단속 지시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니 특목고나 서울대는 차치하고라도 일반 중고등학교에서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교육과정에서 목표로 하는 학업의 성취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일 할 수 있는 사회구조라면 더 이상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문제를 제기했으니까 이제 답을 해보자.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시스템 내에서는 아무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고 해도 학원을 비롯한 사교육 시장은 소멸되지 않는다.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학교 수업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그럼 공교육이 비정상적이라는 말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데, 교사들을 좀 더 긴장시키는 구조로 가지 않으면 공교육이 점점 사교육 시장으로 포섭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원 강사의 수업이 조금만 양에 차지 않으면 아이들은 아무 머뭇거림 없이 그 학원 수강을 그만 두고 다른 학원으로 옮겨 간다. 이것이 이 대통령이 그렇게 강조하는 실용주의가 정확하게 관철되고 있는 시장의 현실이다.

 

학원비 단속? 구태의연한 전시행정 그 이상 아니다

 

아이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길 원하는 수요가 실재한다면 공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대책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올바른 순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교육 수요를 유발하는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을 밀고 나가는 한, 백약이 무효일 것은 온 세상이 다 안다.

 

서울에 이중 언어로 교육하는 국제중학교를 설립해서 아이들을 모집하면 그 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공교육에만 맡기겠는가? 세상이 다 아는 이치를 두고 학원비를 단속하겠다고 나서는 건 구태의연한 전시행정 그 이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거진 문제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수강료를 받는 학원은 단속을 해야 옳을 것이다. 학원비를 소위 과다 징수하는 곳은 사실 강남 일대의 유명 학원들 몇몇이다. 그것도 영어와 수학, 특히 영어학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내가 사는 지방도시에도 규모가 큰 영어학원이 그리고 몇몇 수학학원만이 아이들이 몰리고, 그래서 학원 운영자는 돈을 벌고 학부모들은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

 

왜냐고? '모든 국민들이 고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곧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그 과수요를 조장한 사람들이 학원비를 잡겠다고 나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됐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부터 잘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할 터인데 지금 하는 일은 그게 아니지 싶다.


태그:#사교육비, #학원비, #국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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