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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0~13일 동안 자전거로 안데스를 넘어가는 과정을 전합니다.

'꼬끼오'와 '멍멍이'의 차이

07시 15분 기상. 어제 그렇게 완벽하게(?) 캠핑 준비를 하고 잤는데도 조금 추웠다. '꼬끼오'(닭)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아침을 알려줬다. 왜 그렇게 "꼬끼오" 소리가 잘 들렸나 했더니, 바로 5m도 안 되는 곳 앞에 닭장이 버티고 있던 것이었다.

현지인들 집 인근에서 캠핑을 하게 되면 보통 꼬끼오가 알아서 깨워주는 일이 많기에 기상용 시계가 따로 필요 없다. 캠핑 시에 꼬끼오가 있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멍멍이가 있는 것은 잠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멍멍이 친구들은 필자와 눈을 맞추고 있을 때는 그렇게 과묵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보이지만, 필자가 텐트 속으로 들어가면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병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필자가 몸을 살짝 뒤척일 때마다 사정없이 '멍멍이 소리 연속발사' 기술을 자랑한다.  텐트가 흔들리고 머릿속이 울릴 정도로….

그와 나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적'이 된다. 화가 나서 텐트 문을 열고 혼내려고 하면 다시 그 '순수한 눈빛'으로 필자를 바라보다가, 텐트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지쳐 잠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 ⓒ 박정규

"같이 안데스 넘을래요?"

오! 슬리핑 백에 스며들던 서리 녀석들이 프라이에 보기 좋게 걸려있다. 하하! 이제 더
이상 신발에게 '엎드려 뻗쳐'(서리 방지를 위해 뒤집어 놓았다)를 시키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비가 와도 방을 빼지 않아도 된다(방수가 안 되기에 비가 오면 철수해야 했다).

간단하게 사과와 현지 과일로 아침을 먹고 성경을 읽은 후에 마지막 짐을 챙기는데 귀가
좋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차 마시러 와요." 마리아다. 차 마시러 오라는 말은 아침을 먹으러 오라는 소리기에 짐을 내버려두고 달려갔다.

정겨운 은색 큰 냄비에 계란 반숙이 10개 가량 자유분방하게 숟가락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반숙된 노른자를 빵으로 콕콕 찍어 먹거나, 다 익은 부분을 빵 위에 올려먹으면서 차 한잔 하는 것이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저녁이다.

농담으로 남자 친구에게 같이 안데스를 넘어가자고 하자 웃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조심해요, 좋은 여행 되세요!" 마리아와 친구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안데스를 향해 출발!       

 카메라를 들이대자 깜짝 놀란 친구
카메라를 들이대자 깜짝 놀란 친구 ⓒ 박정규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저녁의 단골손님인 계란요리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저녁의 단골손님인 계란요리 ⓒ 박정규

라이더는 라이더끼리 통한다

동네 길을 벗어날 무렵, 자전거 가게가 보인다. 가서 길을 물어보니 누구보다 라이딩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 당연하게 미소로 대해준다. 루이스는 포루티죠까지(정상 인근의 마을) 갔다 온 경험이 있다.

"얼마나 걸려요?"
"여기서 68km, 3시간이요, 당신은 5-6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역시 사이클 속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구나, 거기다 짐까지….

"날씨는 그리 춥지 않고 눈도 오지 않아요. 처음에 7km 가량 천천히 올라가다가 60km 가량의 급경사를 올라가야 해요. 28개의 커브길이……." 

 안데스 가는 길을 위해 챙긴 '전투식량'
안데스 가는 길을 위해 챙긴 '전투식량' ⓒ 박정규

12시30분. 12km 지점의 도로 식당. 날씨는 화창한 봄 날씨다. 길도 2차선이고 갓길이 없지만 그리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아, 산이… 안데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밥도 먹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는데,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조금 비싸 보이는 식당이지만 먹고 가기로 했다. 칠레는 다 따로란다. 소파도(국), 음료도 별도로 계산하는데 꼭 같이 나오는 것처럼 물어본다(소파는 같이 나오는 곳도 있으나, 사전에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다). 메뉴를 모두 챙겨 먹고 나자 날씨도 좋고 여기까지 길도 어렵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이상한(?) 혼잣말을 한다.

'오르막이 너무 쉬우면 어떡하지? 눈이 없으면?'

 화창한 봄을 연상케 하는 안데스 가는 길
화창한 봄을 연상케 하는 안데스 가는 길 ⓒ 박정규

어, 밀짚모자를 쓴 말 탄 아저씨가 말 무릎까지 키가 자란 멍멍이 두 마리를 몰고 간다. 뒤에서 빨간 트럭이 오자 멍멍이들은 재빨리 도로 밖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멍멍이가 말을 몰고 가는지 말이 멍멍이를 몰고 가는지 모르겠다.

 말 타고 개 두 마리를 몰고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말 타고 개 두 마리를 몰고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 박정규

'아싸, 한 방 터졌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멘도사의 카지노를 광고하는 대형 광고판이 눈에 띈다.

 멘도사의 카지노를 광고하는 표지판
멘도사의 카지노를 광고하는 표지판 ⓒ 박정규

강물소리가 들린다. 잠시 조나단을 길가에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인부 두 명이 사람
머리가 쏘옥 들어갈 만한 6m는 되어 보이는 검은 파이프를 운반하고 있다.

 작업중인 인부들
작업중인 인부들 ⓒ 박정규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이어주는 길목

흔들 다리다! 시원한 물줄기 위에 건너편 마을과 수 십 미터를 이어주고 있는 다리는 튼튼해 보인다. 철골 구조물이 양쪽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고, 그물망이 다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꼬마는 신이 났는지 다리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다. 자전거 여행자와 세상을 유일하게 이어주는 한 줄기 '인터넷 선'처럼, '흔들 다리'는 마을과 도시로 이어주는 한 줄기 '바람'이리라….

뭔가 다른 생각을 할 때마다 트럭들이 두 눈, 두 귀 가득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고 붕붕 거리며 지나간다. 아르헨티나 친구의 말에 의하면, 칠레-아르헨티나를 이어주는 이 길목을 사랑하는 바퀴 달린 친구들이(트럭, 관광버스, 승용차 등) 하루에 600대 정도라고 하니까,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를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수학여행가는 것처럼 관광버스가 단체로 지나가기도 하고, 속도를 자랑하는 오토바이 동호인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빠른 거북이보다 조금 더 빠른 트럭들이 줄지어 지나가기도 한다.

 끊임없는 트럭들이 도로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끊임없는 트럭들이 도로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 박정규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스노우 체인을 판다는 광고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아, 여기가 안데스가 맞기는 맞나 보다. 조나단이 좋아할 만한 건 없을 것 같은데, 부디 눈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날이 저물어 갈 무렵에 리오블랑코(Rio Blanco)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28개의 급커브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내일의 전투를 위해 오늘은 이 마을의 호스텔에 머물러야 한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마을에는 숙박시설이 없고 15-20분은 올라가야 한단다. 이런, 슬슬 피로의 그림자가 길어지게 시작했는데….   

 산 아래 마을인 리오블랑코를 지나고 나니 호스텔이 나왔다.
산 아래 마을인 리오블랑코를 지나고 나니 호스텔이 나왔다. ⓒ 박정규

 재미있는 경고 표지판
재미있는 경고 표지판 ⓒ 박정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 반갑다

그냥 자고 싶었지만, 피로를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샤워기를 돌렸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도 조절을 해야 할 만큼 뜨뜻한 물이 반겨준다.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두 개의 숙소가 있었다. 첫 번째 고급스러워 보이는 곳은 4인실에, 온풍기, 화장실이 딸려 있는 방이 18,000페소(한화 36,000원)였고, 두 번째 숙소는 2인실에 침대만 있고, 공동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지만 7,000페소(아침 포함)였다.

그 돈이면, 1주일 밥값이라고 놀라는 필자에게 젊은 여직원이 저렴한 두 번째 숙소를 알려준 것이다. 고마운 친구다. 일반 도시는 보통 5,000페소(한화 10,000원)에 잘 수도 있지만 여기는 위치가 위치인 만큼 어쩔 수 없다.

원래 눈 속 위에 집을 펼치고(텐트) 자고 싶었는데, 그럴 눈을 만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몸은 '자'본이기에 경제력과 필요와 기회에 따라 쉬게 해야 한다. 한번에 헐레벌떡 내달리고 말 3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한 페달, 한 페달 느리지만 끝까지 달려가야만 하는30,000,000미터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2008년 9월11일 목요일. 칠레 리오 블랑코(Rio Branco)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희망여행 여행노트

1. 이동경로.  
Los Andes -> Rio Branco
2. 주행기록.
주행거리: 45.98km / 주행시간: 4시간 35분 / 평균속도: 10km/h
3. 사용경비: 2,900 PESOS ( 1U$ = 500 PESOS)
점심식사: 2,900
4. 음식
아침: 계라 반숙, 빵2 
점심: 고기, 밥, 토마토, 엠파나다
저녁: 고기와 밥, 빵, 소파, 차
5. 숙소: 호스텔
6. 신체: 약간의 근육통, 간지러움, 전체피로, 왼쪽 종아리 근육통 여전함.
7. 위생: 따뜻한 물로 샤워(깨끗해요~)
8. 길 정보: 생각보다 길은 서서히 올라갔지만 이상하게 피로가 제법 느껴졌다.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 희망여행 카페: www.kyulang.net

* 희망여행 저서: 대한민국 청년 박정규의 '희망여행'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는 '희망을 찾고, 나누며,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2006년 5월 16일 '희망을 찾아 떠나는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 2월 28일까지 몽골여행, 중국종단, 인도여행, 미국횡단, 쿠바일주, 남미일주, 북아프리카 횡단을 계획중입니다. 2008년 9월 현재 남미 여행 중입니다.



#안데스#칠레#희망 여행#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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