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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9일)은 말 많고 탈 많은 한탄강댐 건설 사업에 대한 법원의 현장검증이 있는 날이다. 지난 10여년의 기나긴 싸움이 이제 그 종착역의 플랫폼에 진입하고 있는 느낌이다.

 

10년 전 임진강 유역에 실로 큰 비가 왔다. 파주·문산 지역이 침수되고 산사태와 농경지 침수로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그것도 96, 98, 99년 연이어 일어났다. 당시만 해도 임진강 유역은 접경지역으로 수방시설이 거의 되어있지 않았다. 더불어 파주·문산의 저지대는 배수시설도 없고 통문천의 철교나 하천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문산천의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범람하여 문산 시가지는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이에 놀란 김대중 정부는 수방기획단을 급조하여 기존에 있던 한탄강, 영평천 댐계획을 조기 추진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수자원공사와 토건기업들은 99년 한탄강댐 건설계획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수자원공사와 한탄강 주민들간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싸움의 이유는 한탄강댐 계획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한탄강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임진강 유역 수해 원인 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구두를 신고 양말을 신은 격이다.

 

이뿐이 아니다. 한탄강에서 2700CMS(초당 유입량)를 조절해야 한다고 목표치를 말해놓고 정작 계획에서는 2560CMS를 적어놓고 있었다. 이를 주민측 전문가가 지적하자 보완본에서는 2880CMS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처음에는 2만 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편익을 끼워 넣으며 다목적댐인양 했는가 하면, 대안비교에서는 댐 대신 제방을 쌓으려면 임진강보다 더 긴, 무려 570km를 쌓아야 하기에 댐이 가장 저렴하다고 할 정도로 무지막지하였다.

 

이때부터 수자원공사는 끊임없이 그들의 기본계획이 누더기가 되어감을 느꼈을 것이다.

 

주민들이 문제점을 제기할 때마다 고치고 또 고치면서 한탄강댐을 지어야 한다고 옹색한 변명만 하기 일쑤였다.

 

지금 초기의 정부나 수자원공사의 한탄강댐 책임자들은 거의 퇴직한 상태다. 정부의 국책사업 기본계획이 이렇게 누더기가 된 것은 아마 한탄강댐 사업이 처음일 것이다. 급기야  청와대 지속가능위원회는 "백지화하고 홍수조절댐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모순된 결론을 내린다. 환경부는 한탄강댐을 연중 15일 이하만 담수하라는 희대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하게 된다.

 

이에 국회도 감사원 감사를 의뢰해 감사원에서 한탄강댐 기본계획은 부풀려지고 조작되었음을 지적하고 책임자 문책을 포함해 원점재검토 의견을 내놓는다. 이때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몬스터는 없겠다 싶어 환호하며 백지화를 확신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너무 순진했다. 어느 날 노무현 정부는 한탄강댐 사업을 국무총리실에서 최종 검토하여 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주민들은 새로운 몬스터의 출현을 예감했다. 토건기업과 <조선일보> 등 언론들의 막후 역할 또한 빠질 수 없는 몬스터들이다.

 

압권은 홍수조절댐이던 한탄강댐이 2001년, 가뭄극복을 위한 댐으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2만 톤의 공업용수 공급만으로 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주민들이 환경문제를 제기하자 우리의 친절한 <조선일보>는 한탄강댐에 세계 최초로 물고기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1면을 할애해 보도할 정도였다.

 

댐 안에 사격장이 있는데 댐에 포탄이 맞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방송토론 질문자에게 "신속히 복구하겠다"라 답한 수자원공사 간부의 답변은 가히 어록에 남을 만하다. 홍수가 나면 홍수조절, 가뭄이 나면 용수공급, 지역발전문제가 있으면 지역경제활성화, 아무튼 한탄강댐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몬스터 중에 몬스터다.

 

이보다 더 큰 상처와 아픔은 수몰민들이었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아픔보다 하루아침에 댐반대와 찬성으로 나뉘며 불신의 댐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 중 댐을 기다리며 지난 10여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고통과 좌절과 상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외지 투기꾼들과 수자원공사의 부추김으로 수자원공사보다 더 절실하게 댐을 원하게 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농가부채를 갚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가 댐을 통한 보상금인 측면도 강하지만 댐을 기다리며 살아온 지난 10년은 불행 그 자체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수몰예정지의 땅값은 공시지가로 거의 10배가 올랐다. 댐이 된다면 찬성 주민은 반대 주민에게 감사해야 할 대목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역이 이렇게 붕괴되었다.

 

여기에 지자체의 무정견까지 보태져서 한탄강은 지난 10년 동안 강이 만들어지고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주민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내 앞마당에 물이 들어오는데 식구들만 바라보는 가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은 한술 더 떠 홍수조절댐을 다목적댐으로 전환하는 요구를 한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한탄강댐은 마치 두더지게임처럼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국무조정실에서 임진강특위를 만들고 1년간 검토 끝에 한탄강댐을 기존의 규모를 반으로 줄여 건설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처럼 3.05억 톤의 규모에서 1.27억 톤으로 줄인다고 하더니 부랴부랴 장관고시 할 때에는 다시 2.7억 톤에 연중 15일 담수를 조건으로 하는 도로 한탄강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상매입이라는 희대의 보상방법까지 동원하여 공사현장 주변의 땅 매입까지 진행하는 어처구니 없음에 주민들은 마지막 사법부의 판단을 의뢰했다.

 

행정법원은 두 차례의 현장 검증을 통해 아름다운 한탄강과 댐을 세우기에는 부적절한 유역의 사정, 그리고 어마어마한 다락터 사격장, 이미 잘 정비된 파주·문산의 수방대책 등을 보았다.

 

1심법원의 민중기 부장판사는 한탄강댐의 많은 문제점을 인정하여 댐규모를 절반으로 줄여 건설하는 방안을 합의해보라는 중재안을 내는 유례없는 조정안을 제시한다. 다시 한 번 주민들은 한탄강댐이 사법부에서도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법관 인사이동으로 바뀐 1심 재판부는 황당하게도 이를 뒤집고 한탄강댐은 별문제 없어 원고(주민측)의 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한다.

 

조선의 가치가 허물어져버린 고종 30년 고부군수 조병갑은 정읍천과 태인천이 만나는 곳에 만석보를 세우고 농민들을 수탈한다. 이것이 동학혁명의 발단이 된다.

 

한탄강댐도 96년, 99년에 기존의 댐이 무너져 버렸다. 어쩌면 한탄강엔 댐이 필요없다는 웅변이었을지도 모른다. 홍수조절능력도 물공급능력도 없는 댐을 위해 엄청난 혈세를 걷어야 한다. 수몰민들은 그 혈세를 나누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토건세력은 그 부스러기를 먹으려고 안간힘이다. 한탄강댐 건설의 가장 큰 책임은 노무현 정부에 있다. 그것이 낭비인 줄 알면서, 그것이 부패인 줄 알면서 무엇이 켕겨서 이리저리 눈속임을 하며 고시를 했는지 그들은 잘 알 것이다.

 

이제 1조원으로 시작한 한탄강댐은 아무 효용 없는 구조물을 위해 3조 아니 5조원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관리를 위해서 더 큰 돈이 구멍 난 독에 물 붓듯 들어갈 것이다. 탐진댐, 용담댐도 모두 애초 비용의 3~5배가 들었다.

 

지금 한국경제는 저마다 위기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한탄강댐 같은 혈세낭비 사업이 도처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토건기업과 수자원공사, 정부관료, 언론 그리고 삶에 찌들어 옳고 그름을 분명히 못하는 백성들과 하나 되어 축조되는 한탄강댐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한 세기 전의 만석보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공기업개혁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한탄강댐 사업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공기업 개혁의 본질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전 정권의 비리의혹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경제성이다. 한탄강댐은 그들 스스로도 경제성이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홍수조절댐의 경제성은 홍수조절효과다. 한탄강댐을 세우면 파주·문산에 완벽한 홍수조절이 되는가가 관건이다.

 

그러나 겨우 임진강 문산천 합류지점에 10cm 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이것이 무슨

경제성이 있는 것인가. 수위조절 효과는 댐 상류의 유역면적과 전체 유역면적의 비례관계에 있다. 소양강댐은 사실 한강홍수조절의 10%밖에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소양강유역면적이 한강유역면적의 10%이기 때문이다. 한탄강은 임진강유역의 17%이며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을 때 17%의 조절능력이 있는 것이다.

 

대림산업에도 묻고 싶다. 1조원을 대림의 자본으로 투자하고 이익을 내어야 한다면 과연 한탄강댐 사업에 뛰어 들겠냐고 말이다. 단지 국가의 세금으로 공사를 위한 공사를 하니까 그렇게 10년을 헤매고 있지를 않은지. 수자원공사에도 묻고 싶다. 한탄강댐 사업비가 1조원인데 과연 1조원으로 완공할 수 있는지.

 

10년 전에도 1조원이고 지금도 1조원이면 지가상승과 원자재가 상승은 다 어디에서 메울 것인가? 이번 예산 국회의 몫이기도 한 대목이다.

 

이렇게 한탄강댐 반대의 물결은 10년을 흘러왔다. 마치 한탄강의 흐름처럼 말이다. 한탄강댐은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단지 한탄강댐이 우리 모두를 시험하고 판단하고 심판할 뿐이다.

 

수자원공사, 건교부, 대림산업, 청와대, 환경부, 국회, 감사원, 사법부, 지자체, 수몰민들의 양심까지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훗날 한탄강댐이 구석기유적만큼이나 희미해 질 때까지 우리 모두에게 그때 너는 어떤 입장이었냐고 물을 것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한탄강댐을 이렇게 말한다.

 

거짓, 부패, 투기, 조작 그리고 토건세력에 의한 토건세력을 위한 토건세력의 댐이라고 말이다. 애초부터 불량한 의도, 신뢰할 수 없는 자료, 타당하지 않은 분석모형, 비민주적 절차까지 다양한 평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한탄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탄강댐은 “똥·덩·어·리”라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철우 기자는 전 국회의원(17대·열린우리당·경기 포천·연천)으로, 경기북도 추진포럼 대표, 여의도통신 주간으로 활동중입니다.


태그:#한탄강, #한탄강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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