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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연습하셨어요?"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더 크게) 연습을 얼마나 했느냐고요~"
"나는 '허리가 꼬부라져가지고 못한다' 그랬더니 '괜찮다' 해서 나온 거여."

강화군 불은면에 위치한 오마이스쿨은 어르신들의 첫 데뷔 무대였다. 어르신들은 9월 26일 강화군노인복지관에서 주최한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주일마다 찾아오는 '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한 달이 넘게 연습을 했다.

운동장에 쳐놓은 커다란 천막 아래에는 강화군에 있는 22개 경로당에서 온 50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였다. 그 중 피에로, 치어리더, 빨간 드레스 소녀, 반짝이 옷을 입은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행사 전 오마이스쿨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작품들을 감상할 수가 있었다. 어르신들이 직접 빚어서 1260도 고온에서 구운 '야무진' 도자기들은 투박한 멋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붙여본 속눈썹, 어색해!

강화도 다운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다.
 강화도 다운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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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의 총 22개 경로당 중 12팀이 '장수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무대 대기실로 쓰인 오마이스쿨 강당에 들어가니, 분장을 받기 위해 '쌩얼'로 오셨다는 할머니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늘 어떤 춤을 준비하신 거예요?"
"거 있어. 무조건 좋아서 달려가는 거!"
"노래 '무조건'이요?"
"어 그거. 저번에는 그 뭐지 어머나 어머나 하는 그거였는데 어려워서 바꿨어."
"연습은 많이 하셨어요?"
"연습은 했는데 금상(금방)하도 금상(금방) 까먹어."

오마이스쿨 근처에 산다는 나정윤(71) 할머니는 자식들 모두가 신성 초등학교(지금의 오마이스쿨) 졸업생이라고 했다. 신성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오마이스쿨로 리모델링될 때 옛날 생각이 난 할머니는 짓고 있는 학교에 구경 오기도 했단다.

"그래도 이렇게 춤도 추시고, 분장도 하시고 좋으시죠?"
"그치, 좋지. 세상이 좋으니까 그런 거지. 늙은이한테 누가 그렇게 하노."

할머니는 장미란 선수라며 셔츠에 직접 그려낸 둥글둥글한 사람 그림을 보여 주셨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저마다 입고 있는 셔츠를 내밀며 그림들을 보여주셨다. 돌고래 모양, 사람 모양, 꽃게 모양등 종류도 모양도 다양했다.

"이거 떼버려야지 거슥(불편)해서 죽겄어."
"고우신데요 뭘.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요? 저한테 다들 백 원씩 내셔야 돼요."
"(할머니 일동) 그래, 그래~"

분장이 시작되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 붙여보는 속눈썹이 어색한지, 할머니들은 자꾸만 눈을 깜빡이며 거울 앞에 붙어 있었다. 몇 번을 손사래를 치면서도 화장해주는 손에 가만히 얼굴을 맡기는 할머니들.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은 사회복지사 최정미씨는 "속눈썹 하나에 이렇게 좋아하신다"며 거금(?)을 투자해서 속눈썹을 샀단다.

90세 할머니의 깜찍한 춤 실력

강화도 문산리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서 춤을 추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강화도 문산리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서 춤을 추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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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12개의 경로당을 돌면서 댄스 강습을 했다는 전현조(34)씨는 "어르신들이 춤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세요. 의상도 그렇고, 속눈썹도 그렇고, 대부분 처음이잖아요."
"연습은 어떻게 했어요?"
"경로당에는 방학이 참 많아요. 추석방학, 농번기 방학, 이거 끝나면 추수 방학이 있을 걸요? 그래서 연습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틈틈이 연습하는 데에 의미가 있죠. 보시면 참 재미있을 거예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본격 '댄스타임'이 시작되었다. 한국전통민요협회의 구성진 민요 가락과 박수를 자아낸 마술 공연이 이어진 후 첫 번째 팀인 온수 1리 경로당의 부채춤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는 올해 아흔 살이 되는 황점례 할머니도 있었다. 공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 노련한 무대 매너가 돋보였다.

이어서 각 경로당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댄스들이 펼쳐졌는데, 그 중 네 명의 할머니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가면 할아버지'는 단연 인기였다. 치마를 입고 가면을 쓰곤 무대에 오른 '가면 할아버지'는 "저도 여자입니다"라고 소개해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저 할아버지 마누라 대신 나온 거다"며 귀띔했다

능내촌 경로당 팀은 옛날 교복을 입고 트위스트 킹에 맞추어 흥겹게 발바닥을 비벼댔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 드레스를 입어봤다"는 빨간 드레스의 오상 2리 경로당 팀은 멋진 캉캉 춤을 선보였는데 마지막에는 치마를 뒤집어서 속바지 입은 엉덩이를 보여주는 도발적(?)무대매너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재미는 무대 밖에 있는 법! 색색의 풍선을 든 '방청객'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환호가 공연의 흥을 돋우었고, 노래 중간 중간마다 앞으로 나오신 어르신들은 덩실 덩실 춤을 추셨다. 한쪽에선 '불량 어르신들'이 무대 위의 춤을 안주 삼아서 소주에 새우깡, 그리고 막 잡았다는 벌건 '생'돼지고기를 검정 비닐봉지에서 꺼내고 있었다.

"건강하게 사는 비법? 걱정 안하고 마음 편하면 되는 거지."

강화도 야곡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강화도 야곡 경로당 어르신들이 26일 오후 강화도 불은면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행복한 실버 장수댄스 경연대회'에서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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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실버' 행사의 어르신들은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모두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웃음'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면 그 말을 잠시 곱씹고는 한 박자 늦게, 그러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어르신들. 그 얼굴에는 욕심 없는 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농사일을 지으러 가는 어르신들은 그 굳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리고 멀어서 잘 안 나와서 아쉽다며 몰래 디카로 내 모습을 찍어서 보여주시기도 했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얼굴에 자꾸만 미소가 번져갔다.

건강하게 사는 비법을 묻자 "거 별거 아냐. 걱정 안하고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하면 되는 거지"라고 대답하는 고복순(87)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행복한 실버 도자기 전시회'
오는 10월 5일까지 강화군 불은면의 오마이스쿨에서는 강화군 노인 복지관이 주최하는 '행복한 실버 도자기 전시회'가 열린다.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다양한 도자기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손자국이 묻어있는 도자기들이 멋스럽다.

"우리 맨든 건 없어?"
"저쪽에 있잖여"
"이게 일갱이 엄마꺼여."

오마이스쿨에서는 곳곳에 전시된 도자기 중 자신의 작품을 찾기 위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코를 박고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고, 옆집, 앞집 친구들의 작품을 찾아내면서 기뻐했다.

작품을 중에서는 '탐'나는 도자기들이 많았는데, 어르신들이 직접 만드신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자식들이 와서 살짝 봉투를 건네고 가져가는 경우에만 거래가 가능하다고 했다. 일반인들을 위해선 오마이스쿨 교문 앞에서 목걸이는 5000원, 일반 다기는 2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태그:#행복한 실버, #실버댄스 경연대회, #도자기 전시회, #오마이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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