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곳엔 소록도가 있었다

녹동터미널에 선착장 가는 길
▲ 관광지의 표피를 쓴 소록도 녹동터미널에 선착장 가는 길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새끼 사슴을 닮았는가?
▲ 소록도 지도 새끼 사슴을 닮았는가?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휴가 둘째 날, 실로 오랜만에 홀로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섭섭해 하는 여자 친구와 식구들을 남겨두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을 독촉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마음만 동하면 앞뒤 없이 배낭 하나 딸랑 매고 무조건 떠났지만, 회사에 몸이 묶인 이후로는 주말에 놀러가는 것도 버거운 것이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점점 야성을 잃어버리고 주어진 일상에 길들여지는 나의 모습. 따라서 이번 여행은 나의 야성을 찾기 위한 길이었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꿋꿋이 날선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다시금 나를 벼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생각으로 지도를 바라본다. 어디를 가야 할까? 이틀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멀리, 그리고 오랜만에 홀로 떠나는 길이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좋을 듯싶었다. 때마침 엊그제 TV를 통해 간장게장 무한 리필로 유명한 여수의 한 식당도 보았는데 남해 여수쯤으로 목적지를 잡을까? 혹여 여수 향일암을 간다고 하면 그 다음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여수에서 출발한 나의 시선은 해안선을 쭉 훑기 시작한다. 여수에서 순천으로, 순천에서 고흥으로, 그리고 갑자기 멈춰선 나의 시선. 그곳엔 바로 소록도가 있었다. 

소록도?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청준 선생님의 별세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소록도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10년 전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은 이후 꼭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었다. 게다가 이런저런 핑계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소록도야말로 나의 초심을 확인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가 아니던가.

여수의 무한리필 게장이 못내 아쉬웠지만, 결국 난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소록도로 발길을 잡았다. 후회는 없었다. 10년 전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면서 느꼈던 부채의식을 또다시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를 결심한 이상 뭉그적댈 필요는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흥이었지만 지도만 보더라도 그 엄청난 거리와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터, 서둘러야만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겨우 타게 된 고흥 녹동항행 버스. 녹동이란 지명 역시 소록도처럼 사슴과 관련된 것인가? 어쨌든 난 버스 속에서 10년 전에 읽었던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기억

10년 전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소설
▲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10년 전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소설
ⓒ 문학과지성사

관련사진보기

10년 전 내가 <당신들의 천국>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진학 후 난 사회과학 서적만을 읽을 뿐 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어느 날 사회과학 세미나를 위해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야만 했었다. 대체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리도 오래된 소설을 읽고 오란 말인가.

투덜대며 읽기 시작했지만 소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난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면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쓰던 '문둥이'란 단어가 얼마나 역사가 깊고 폭력적인 단어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으며, 말로만 들어오던 그 소록도가 얼마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공간인지, 사회적으로 '문둥이'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통용되고 있는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그것의 재생산. 이미 우리는 한센병의 전염 가능성이 매우 낮고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까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센인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천형 나병에 걸린 '문둥이'로 통용된다. 그것은 그만큼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당장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통해 '문둥이'의 무서움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어머니는 가끔 당신이 초등학생일 때 겪었던 '문둥이'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데, 등하교를 하기 위해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던 공동묘지에는 항상 문둥이가 있었고 아이들의 간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그들을 만나면 무조건 뛰어야 했다는 것이 바로 '문둥이'에 관한 어머니의 기억이었다. 그렇게 한센인에 대한 편견은 대를 이어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결국 그 구전을 통한 사회적 편견의 재구성에 대한 인식은 내게 부채의식을 남겼다. 한센인의 고통이, 근대라는 공간 속에서 대다수의 '우리'를 위해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 행위의 결과인 이상, '우리'에 속한 나 역시 사회적 공범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비국민 중의 비국민으로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로서 '정상적'인 우리를 위해 강제적으로 희생양이 되어왔던 한센인들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그런 나의 부채의식 마저도 다시 한 번 성찰하게끔 만들었다. 소설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부채의식이란 것마저도 '당신'들의 편견에 기반을 둔 감정은 아닌지, 오히려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갚겠다는 나의 행위가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살아서 '동상'을 세우려는 소영웅의식의 발로는 아닌지, 소설은 꼬집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소록도를 가지 못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10년 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데 내게 큰 영향을 주었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그것은 잘 쓰인 소설 한 권이 잘 쓰인 사회과학서적 백 권보다 그 사회에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으며, 나의 객체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가 오히려 더 큰 독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 작품이었다.

자,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비극적인 공간 소록도에 도착한다.

바다를 건너 소록도로

아픔을 싣고 움직이는 배
▲ 소록도와 뭍을 오고가는 배 아픔을 싣고 움직이는 배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가깝고도 먼 그곳
▲ 녹동항에서 바라본 소록도 가깝고도 먼 그곳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창 밖으로 고흥군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른 논밭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우주와 관련된 간판들이었다. 우주 장례식장부터 시작해서 우주 문방구, 우주 약국 등 많은 간판들이 우주를 운운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지역과 달리 고흥군의 도로는 과도하게 쭉쭉 뻗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고흥군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우주항공산업의 영향인 듯했다.

아마도 지역주민들은 고흥을 '우주'와 관련된 공간으로 특화시켜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이 몇 천 년 해 내려온 벼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재,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수와 같은 산업단지도, 해남·강진과 같은 별다른 관광자원도 없이 오직 벼농사밖에 몰랐던 지약주민들에게 고흥반도 끄트머리에 지어지고 있는 외나로도 우주센터는 마지막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그 간판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허망함이었다. 이곳에 우주산업단지가 세워진다고 한들 과연 지역민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아예 대놓고 벼농사의 씨를 말리려는 정부의 정책에 못 이겨 '우주산업'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자신의 삶에 덧대어 보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에게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물론 우주산업의 발전으로 그 지역이 골고루 잘 살게 된다면야 다행이겠지만, 과연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시대, 개발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진 이 시대, 천년을 넘게 지어온 벼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갑해졌다. 과연 이 시대 우리의 선택은 미래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많은 이들의 안녕을 위하여 제발 이 시대의 판단이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녹동항 터미널. 버스에서 내리니 아침에 오락가락하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남해 파도 결에 산란되는 햇빛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어디 내가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을 보기 위해 소록도를 왔던가.

사람들에게 소록도 가는 길을 물었다. 섬이 바로 지척이지만 배를 타고 5분은 가야 한다고 했다. 배 삯은 천 원. 녹동항에 도착해서 바라보니 소록도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수영을 대충 해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짧은 거리. 그래, 바로 저 거리만큼 우리는 '한센인'이라는 타자를 만들어 내고 그들을 차별했던가.

소록도를 육지로 만든 다리
▲ 소록대교 전경 소록도를 육지로 만든 다리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파출소와 병원표지가 보인다
▲ 소록도 선착장 파출소와 병원표지가 보인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많은 한센인들의 한이 서린 바다
▲ 소록도에서 바라본 육지 많은 한센인들의 한이 서린 바다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배에 올라 소록도로 향했다. 뭍에서 섬까지 채 5분도 되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어느 항해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가져온 온갖 편견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으며, 그 많은 한센인들이 평생 건너보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그 바다를 건너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눈들이 이 바다를 바라보며 한을 품었을까?

저 멀리 소록대교가 보였다. 완공은 되었지만 개통을 미루고 있는 중이라 했다. 아마도 많은 한센인들이 저 다리를 보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을 것이다. 이젠 육지가 되어버린 소록도. 뭍사람들은 다리를 연결시키며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지웠을 테지만 아직 소록도에는 저 다리 건너기를 거부하시며 살아가시는 분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소록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파출소와 국립소록도 병원 표지판이었다. 900명 쯤 되는 섬의 치안을 위해서, 그리고 뭍과 연결되는 유일한 선착장을 지키기 위해서 들어서 있는 파출소이겠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 저 자리에 들어선 것일까? 한센인들이 뭍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님 뭍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어쩌면 공권력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구분인지도 모른다.

조그마한 선착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40~50명의 아줌마들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곧 커다란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그들. 그곳에는 '창녕농협 주부대학 자원봉사단'이란 글자가 큼지막이 적혀 있었다. 물론 가슴 속 깊은 곳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닌 한센인들을 위해 찾아온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쳐줘야 했으나, 과연 저런 의례적인 행사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편견과 부채의식이 지워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 전체적인 자위에 가까웠다.

자원봉사단을 지나자 국립소록도병원 현판이 걸려 있는 아치문이 나타났다. 소록도의 입구였다. 왠지 모를 음산함. 비가 오고 시간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혼자 생각해보지만 그것은 분명 핑계였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들어온 ‘문둥병’의 이미지는 나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혹여 한센인들의 손길이 닿은 것들을 내가 만져 문둥병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소록도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인 자위가 아닐까?
▲ 자원봉사단 그것은 사회적인 자위가 아닐까?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편견이 만들어낸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한 그곳
▲ 소록도의 입구 편견이 만들어낸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한 그곳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록도, #우리들의 천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