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옛길에는 낭만이 있을까? 이름 없는 민초들의 애환이 느껴질까? 고개 마루에서 유랑자를 맞는 죽령주막의 탁배기 맛은 어떨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고서 죽령옛길을 찾았다.
가을은 아직 제 빛깔을 내고 있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아주 오래전 시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비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봇짐을 멘 보부상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세상만사를 귀동냥하는 것도 재밌을 것만 같다.
먼저 죽령주막부터 들렀다. 죽령고개를 넘으면 단양이 나온다. 죽령주막은 단양과 영주를 나누는 경계지점에 있었다. 그 시절에도 주막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고개마루에서 무수히 많은 민초들이 잠시 숨을 골랐을 것이다.
곤드레나물밥과 막걸리가 나왔다. 지천에 널린 곤드레로 만든 음식이어서인지 그 시절의 정취를 느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구황식품의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먹기 곤혹스러울 정도의 맛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유랑자는 물건을 팔고 목돈 좀 만진 보부상처럼 호기를 부렸다.
"주모! 여기 두부한모 주시오~"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죽령옛길을 걸었다. 일행들이 모두 내려간 후의 옛길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세상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돈다고. 옛길을 걷는 이 순간만이라도 그런 세상에서 동떨어지고 싶었다. 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없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더 여유가 있었던 이유를 옛길을 걷는 동안 알게 될 것만 같다.
옛길에는 무수히 많은 사연이 깃들어서인지 등산로를 걷는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낙방해서 돌아오는 선비의 기분을 떠올리자 갑자기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울적한 기분을 달래준 건 야생열매 ‘으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으름껍질을 발견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으름덩쿨이 눈에 많이 띈다. 껍질을 벌리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 으름이 제법 먹음직스럽다.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에는 으름도 나물의 소재였다. 풋으름 껍질을 얇게 저며 썰어 무치거나 볶아서 먹었었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으름에도 이처럼 선인들의 고단한 정취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이 길을 걷던 선인들도 으름을 맛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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