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예비행사 예산 60억원.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시작은 크고 화려했다. 그러나 정체성 혼란 문제가 불거지면서 축제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다투던 끝에 초대 축제감독이 1년 만에 그만 두고, 2대 감독도 2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다. 그 동안 예산은 45억원, 38억원, 25억원, 18억5천만원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논쟁 끝에 '소리'의 개념을 '인간의 목소리를 갖고 만든 음악 성과물'로 정리했다. 3대 곽병창 예술감독이 2004~2007년, 4년 동안 축제를 진행하면서 행사가 많이 안정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2004년 부임한 안숙선 조직위원장이 5년째 연임한 것도 축제 안정에 영향을 끼쳤다.
초기 혼란을 이겨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재미'. 축제 조직위원회는 올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축제 주제는 '소리 나누기 오락 더하기'로 정했다. 젊은 관객들 마음을 잡기 위해 야외콘서트와 심야행사를 첫 도입했다. 모험이었다.
지난 28~29일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전주세계소리축제 현장을 찾았다.
비 오는 가운데 야외공연장 점유율 75%, 대중의 마음을 잡다
축제가 시작되기 전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대부분 지역의 아침 기온이 10℃ 미만인 가운데 사람들이 두툼한 옷을 꺼내 입었다. 축제를 여는 쪽에선 불길한 징조였다. 안숙선 조직위원장은 하늘에 대고 빌고 또 빌었다. 부정 탈까봐 나쁜 말, 나쁜 생각도 하지 않고, 덕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다. 정성이 통한 탓일까. 주말을 맞이하면서 날씨는 평년 기온을 되찾았다. 행사장을 방문한 날 만난 자리에서 "다행히 날씨가 좋다"고 하자, 안 위원장이 털어놓은 말이다.
이번 축제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행사는 27일 밤에 처음 시작하는 야(夜)콘서트. 매일 밤 9시 대중음악 가수들과 퓨전 국악밴드 등이 올라 무대를 꾸민다. KBS '열린 음악회' 방식을 축제에 끌어들였다. 축제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가능했지만, 조직위는 승부수를 던졌다. 행사장에 와야 우리소리도 들려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저녁 8시 30분경 부슬부슬 잔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직위 관계자들 얼굴이 굳어졌다. 하늘이 흐린 가운데 관객들이 행사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연 시작. 두 번째 연주자가 나왔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관객들 대부분이 우산을 폈다.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직위에선 우비를 나눠주기 시작했지만, 받는 사람은 소수였다.
총 입장관객은 약 4500여명. 점유율 75%였다. 안숙선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젊은 사람들 마음을 잡아야 해."
지루한 판소리, 어! 30분 넘어가니 슬슬 재밌네
소리축제는 총 6개 분야 57개 공연으로 꾸며진다. 중국, 루마니아, 러시아, 이탈리아, 몽골 등 해외공연도 13개나 된다. 그래미상 수상자 재즈 연주자 다이안 리브스, 2008 베이징올림픽 홍보예술단 베이징 세계예술단의 공연을 비롯 마술과 마임 등 공연이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핵심은 역시 우리소리다. 무용극 판소리 심청가 <청의 눈물>과 야외에서 열린 판소리 다섯바탕을 봤다. 청의 눈물은 화려한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용궁 신, 인당수 신 등 무대에 공을 들인 흔적이 잘 드러났다. 뺑덕어멈과 잔치에 참가한 봉사들은 과장된 몸짓을 선보이며 객석에 큰 웃음을 줬다. 특히 10여명의 봉사들이 객석에 뛰어들어 법석을 떨자 관객들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관객분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반부 지루한 전개가 다소 흠이었다.
판소리 다섯바탕은 현미, 정경화, 유하영, 조정희, 정승희 등 젊은 소리꾼이 실력을 뽐낸 자리. 그 동안 실내공연장에 열리던 판소리를 야외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시 실험이었다. 29일 오후 3시 공연을 봤다. 대공연장에선 아프리칸 타악기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실내공연장에선 가족연회컬 <타이거헌터>가 진행 중이었다.
햇볕은 따가웠고, 주위 공연장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판소리 공연장까지 들렸다. 객석에 앉은 사람은 약 20여명. 그 중 한쪽에 앉았다. 연주자인 유하영씨는 판소리 다섯바탕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 <흥부가>를 불렀다. 아주 열심히 불렀지만 지루하기만 했다. 역시 우리소리는 지루한 것인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다른 곳에 갈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소리 하나쯤은 들어야지'하는 마음이 맞섰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30분이 지나자 슬슬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고수가 말을 뽑아내며 객석 분위기를 띄운다.
"아따, 박수 치려면 치고, 말라면 마시오.""아이구, 목마르다. 물 좀 마시고 해야 쓰겄네. 괜찮죠?"소리꾼은 부채를 '홱' 펼치기도 하고, 바닥에 털썩 앉아 소리를 하기도 한다. 고수와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판소리는 그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었다. 원래 30분 예정이었던 판소리는 20분을 더 한 뒤 마쳤다.
근처 실내전시관엔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1905-1961)전이 열리고 있었다. 1930년 '쑥대머리'가 실린 음반은 100만장이나 팔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전시관 크기는 작았지만, 임방울의 생을 아는 데는 충분했다.
"내 소리를 들으러 오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듸, 돈 좀 없다고 구경을 못 한 대서야 쓰겄는가.""어허! 나가 소리 헐라고 이 세상에 태어났제 돈 벌라고 태어났남."짧게 요약한 몇 마디 말로도 임방울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계악기 및 원시미술전에선 우리 악기 금과 슬을 봤다. "금슬이 좋다"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단다. 두 악기가 항상 붙어 다녀 그런 말이 만들어졌다고. 지금까지 금슬이 악기 이름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우리 악기에 대한 무식이 탄로나는 순간이었다.
야외 대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프랑스 마임3인조 레스 호올스먼은 데이비드 베컴, 미셸, 모리스라는 이름의 말을 타고(?) 나왔다. 사실상 의상에 불과한 이들 말을 타고 이들은 자국 대통령 사르코지 표정을 흉내내며 익살을 떨었고, 파리 소리를 내고 삼각뿔 모양을 만든 뒤 "이것이 파리 에펠탑"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보이는 300여 관객들은 먼 나라에서 온 단원들의 몸짓에 박장대소했다.
재미있었던 장면은 식당가에 있던 흰찰쌀보리빵 판매대. '무밀가루' '무방부제' '무멜라민'이란 글이 붙어 있다. 멜라민 공포는 어느새 축제 현장까지 들어와 있었다.
객석점유율 7.6% 증가, 여전히 그들만의 축제 평가도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방향을 내세운 조직위측 의도는 들어맞았다. 28일까지 3일 동안 평균 좌석점유율은 78.8%. 2008년 71.2%에 비해 7.6%가 올랐다. <흥부와 놀부>와 <청의 눈물>은 90%가 넘는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주최측에선 야외공연이 신설되고, 실내공연 관객이 늘면서 예년에 비해 2~3배 늘었다고 평가했다.
관객의 질을 확인하기 위해선 유료관객수가 중요하다. 조직위측에선 "패키지 티켓이 많기 때문에 유료관객수는 축제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공연, 중공연, 소공연과 실내공연, 야외공연을 적절히 섞은 것도 좋았다. 관객들은 입맛에 따라 동 시간대 여러 공연을 골라 볼 수 있었다. 27일 메달리스트 최민호, 왕기춘, 김재범 선수 긴급 사인회 마련, 우천시 야외콘서트장 비옷 배포, 야외식당가 카드기 설치 등 세심한 손길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눈에 띈다. 야외행사장과 실내전시장의 연계문제다. 야외행사장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이 실내전시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이틀 동안 둘러봤을 때 1층 임방울전시장(무료)을 비롯, 2층 세계악기 및 원시미술전(유료)는 한산했다. 행사장 동선이 물흐르듯이 이어지지 않으면 사람이 많은 곳엔 정체현상이 벌어지고, 한산한 곳은 파리만 날리게 된다. 단기간에 해결할 순 없고, 경험이 쌓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명인홀 입구가 찾기 어려운 점, 명인홀에 가려 식당가가 잘 보이지 않았던 점도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 각 시별 특색음식 하나씩 갖고 나오도록 식당가를 그렸지만, 그러한 주최측의 의도는 잘 구현되지 않았다. 식단은 그다지 개성이 없었고, 1지자체 1식당이라는 안배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단 음식값이 비싸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전주 시민들 중 소리축제를 "우리 지역 대표 축제"로 생각하지 않는 이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주 시내 상인과 시민들, 다섯 명의 택시기사를 통해 여론을 수집했다. 답변 유도를 피하기 위해 똑같이 "전주사람들은 전주소리축제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한결같이 "관심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유에 대해선 "경제 불황"을 공통으로 내놨다.
14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임아무개(57)씨는 "전주소리축제 가자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했고, 한 택시기사는 "그들(예술인들)만 즐기는 축제"라고 쓴소리를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들은 종종 택시를 타고 여행지를 이동한다. 택시기사가 축제 홍보대사가 돼서 축제를 안내하고, 소개하면 어땠을까. 설령 축제를 찾지 않았더라도 축제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을까.
8년된 축제라곤 하지만, 세계 유명 축제에 비하면 아주 짧은 역사다. 게다가 그 중 절반은 축제 방향에 대한 논란으로 시간을 보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전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소리축제는 방황을 끝내고 이제 첫 발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전주세계소리축제 www.sorifestival.com, 063-274-9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