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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안으로 들어서자 철제 빔 한가운데 유골을 발굴한 장소가 천막 속에 보인다
▲ 금정굴 금정굴 안으로 들어서자 철제 빔 한가운데 유골을 발굴한 장소가 천막 속에 보인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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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성도 이름도 없이 흙에 묻혀 지낸 세월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겠느냐
얼마나 서럽고 원통했겠느냐

그 소나무 몸뚱아리에 그대들 붉은 피 새겨도
승천하는 용처럼 멋지다 넋 잃는 사람들이여
구천을 떠돌던 그대들 혼백 접동새로 밤 새워 울어도
그 소리 구슬퍼서 차암 좋다 속삭이는 사람들이여

죽어 흘러간 모진 세월 너무나 괴로웠구나
당달봉사 반벙어리 삶 너무나 슬프고 쓸쓸했구나
해가 있어 그대들 억울한 죽음 되살려주랴
달이 있어 그대들 못다 한 삶 다시 살아주랴

그래
이제 이승의 한 툭툭 털고 편히 잠들거라
여기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대들 주검 결코 잊지 않으마
그 너덜너덜 찢긴 시간 꼼꼼히 기워주마

- 이소리, '죽어도 죽지 못하는 금정굴' 모두

금정굴 들머리에 서자 한껏 찌그러진 장승 몇 하얗게 씌어진 '금정굴'이란 팻말을 머리에 이고 있다
▲ 금정굴 금정굴 들머리에 서자 한껏 찌그러진 장승 몇 하얗게 씌어진 '금정굴'이란 팻말을 머리에 이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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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다. 가을빛에 잠긴 오솔길에 점점이 피어난 하얀 구절초와 연보랏빛 쑥부쟁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가슴 밑바닥이 저려온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매달린 도토리, 언덕배기 곳곳에 쑤욱쑥 자라나 은빛 얼굴을 부채살처럼 쫘악 펴고 있는 억새, 가끔 불어오는 갈바람에 바늘손을 파르르 떠는 소나무를 바라보아도 눈물이 핑 돈다.   

왜일까. 오늘따라 저만치 흔들리고 있는 풀 한 포기, 저만치 뭉게구름을 머리에 얹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아도 자꾸만 죄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동안 지천명에 이르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 누군가에게 무슨 죄를 지었을까. 길라잡이도 모르는 그 어떤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닐까. 

한국전쟁 때 억울하게 학살된 원혼들이 떠돌고 있는 금정굴. 그 금정굴이 있는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서 자꾸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길라잡이 혼자 느끼는 작은 망상일까. 아닐 것이다. 금정굴에 얽힌 역사의 쓰린 상처를 뒤늦게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그때 가족과 친인척을 잃은 사람들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같을 것이다.    

그들 민간인들은 왜 아무런 죄도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억울하게 총살당해야만 했을까. 누가 민간인 학살을 지시했을까. 한 갑자가 다가오는 그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이들 원혼들과 유족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이 땅에 발을 딛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는 또 무엇을 했을까.  

저만치 파란 천막에 덮여있는 금정굴이 보인다
▲ 금정굴 저만치 파란 천막에 덮여있는 금정굴이 보인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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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 주변에는 '영령들이시여, 이제 편히 쉬소서', '산자들이여 우리를 기억하라', '진실을 통한 화해 상생'이란 현수막과 유골 발굴 당시 현장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 금정굴 금정굴 주변에는 '영령들이시여, 이제 편히 쉬소서', '산자들이여 우리를 기억하라', '진실을 통한 화해 상생'이란 현수막과 유골 발굴 당시 현장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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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금정굴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굿을 하고 위령제를 지내면 뭐합니까. 다 살아 있는 사람 잘 되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산 사람이 진 빚잔치를 하는 거지 뭐."
"하긴, 그렇게 역사의 못을 확실하게 박아놓아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에휴!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 이런 곡소리 나는 굿 말고 어디 신나는 굿 좀 할 수는 없을까?"
"형 직업이 그런 걸 어쩌겠어. 이 땅에 살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한 둘이라야지."

27일(토) 아침 10시. 중랑구 면목동 한신아파트 앞에서 무당시인 오우열(52) 형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고양에 있는 금정굴로 간다. 강변로를 끼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반짝반짝 흔들리는 은빛 억새가 오늘따라 유난히 슬퍼 보인다. 아침햇살에 눈부신 윤슬을 톡톡톡 굴리고 있는 한강도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금정굴 앞에 닿은 시각은 아침 10시 50분쯤. 금정굴 들머리에 서자 한껏 찌그러진 장승 몇이 하얗게 '금정굴'이라 씌어진 팻말을 머리에 이고 있다. 오솔길로 접어들자 저만치 사람들 몇 경사가 제법 심한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다. 유족회 관계자들과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 속에 진보신당 심상정 전 의원의 모습도 보인다.

몸뚱이가 꽤 굵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오솔길을 따라 5분쯤 올라가자 저만치 파란 천막에 덮여있는 금정굴이 보인다. 금정굴 주변에는 '영령들이시여, 이제 편히 쉬소서', '산자들이여 우리를 기억하라', '진실을 통한 화해 상생'이란 현수막과 유골 발굴 당시 현장 사진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마치 원혼들과 산자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처럼.

금정굴 앞에 서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때 총을 쏜 그 경찰들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금정굴 안으로 들어서자 철제 빔 한가운데 유골을 발굴한 장소가 천막 속에 보인다. 그 곳을 바라보며 합장한 채 반 배를 두 번 하며 속으로 '부디 편히 쉬소서'라며 묵념을 올린다.

착잡한 마음으로 금정굴 밖으로 나오자 저만치 김이하(49) 시인과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 사진을 찍고 있다. 비디오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발굴 당시 찍은 여러 유골 사진 중 해골에 동그란 구멍(총알자국)이 나 있는 사진을 바라보자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불끈 치민다.

금정굴 앞에 서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 금정굴 금정굴 앞에 서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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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가 그때 흰옷을 입고 삽으로 제 묻을 자리를 파던 그 착한 사람들의 슬픈 눈빛으로 흔들린다
▲ 금정굴 구절초가 그때 흰옷을 입고 삽으로 제 묻을 자리를 파던 그 착한 사람들의 슬픈 눈빛으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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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경찰서 앞에서 진실과 화합의 노제를 지내다

"서둘러. 늦겠다."
"행사가 몇 시부터죠?"
"오전 11시부턴데 상여가 태영 사거리에서 일산경찰서까지 오려면 조금 늦을 거야. 하지만 나로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어. 상여꾼들과 함께 일산경찰서 앞에서 노제를 지내려면 미리 가서 준비를 해야지."

아프다. 금정굴을 품고 있는 야트막한 산자락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풀과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마치 그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원혼들이 피를 토하며 내뱉는 곡소리 같다. 저만치 풀숲을 헤집고 점점이 피어나 있는 구절초가 그때 흰 옷을 입고 삽으로 제 묻을 자리를 파던 그 착한 사람들의 슬픈 눈빛으로 흔들린다.       

금정굴을 뒤로 하고, 서둘러 일산 태영사거리로 향한다. 10분쯤 지나 태영사거리 앞에 도착하자 거기 상복을 입은 상여꾼들과 상여,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색 만장을 든 사람들이 상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만장에는 '학살현장 보존' '진실은 밝혀진다' '유해공식감정안치' '피해의 완전한 원상회복' 등의 글씨가 그때 쏜 총탄처럼 박혀 있다.

구성진 요령소리와 상여노래를 들으며 상여를 따라 일산경찰서 앞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쯤. 일산경찰서 앞 도로 곁에는 무당시인 오우열 형이 사과, 배, 바나나, 참외, 귤, 명태포가 올려진 제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상여와 상여꾼들이 도착하자 오 시인이 현대판 살풀이굿을 추며 구성진 곡을 뽑기 시작한다.        

그때 한 노인이 이 모습을 보고 "뭐하는 짓거리냐?"라고 묻는다. 그때 이춘열(고양금정굴사건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한국전쟁 때 금정굴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 원혼을 달래는 행사"라고 답한다. 하지만 노인은 "우리 아버지도 6·25 때 죽었는데? 금정굴에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던데?"라며 꼬치꼬치 따진다.

상복을 입은 상여꾼들과 상여,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색 만장을 든 사람들이 상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금정굴 상복을 입은 상여꾼들과 상여,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하양색 만장을 든 사람들이 상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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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일산경찰서 앞 도로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 금정굴 유족들이 일산경찰서 앞 도로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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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고양시 예산 700만 원 보조받아 치른 행사 

"할아버지, 이 영령들은 전쟁을 하다 돌아가신 군인들이 아니라 착한 민간인들이랍니다. 이 영령들은 죄도 없이 금정굴로 끌려가 경찰들이 쏜 총을 맞고 억울하게 죽은 분들이랍니다."
"뭐어? 경찰들이 멀쩡한 사람을 왜 죽여? 뺄갱이 짓거리를 했으니까 죽였겠지."   
"할아버지, 이 수많은 영령들을 두 번 죽이지 마시고 그냥 돌아가십시오. 할아버지 말씀을 유족들이 들으면 얼마나 속이 쓰리겠습니까."

한동안 노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도중에 노제가 끝나고, 상여는 다시 본 행사(제58주기 고양금정굴 학살 희생자 위령제전 및 제1회 고양부역혐의사건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릴 문화광장으로 향한다. 그때 무당시인 오우열 형이 다가와 노인을 달래 보낸 뒤 "그 노인 참 고집도 세네. 반공연맹 뭐 이런 데 소속된 노인일 거야"라며 한 마디 툭 던진다.    

오후 1시 30분쯤. 상여가 문화광장에 도착해 광장을 한 바퀴 휘이 돈 뒤 식장 왼편에 상여를 내려놓자 본 행사가 시작된다. "영령들이시여, 이제 편히 쉬소서"란 제목을 내건 이날 행사는 한국평화굿위원회의 '진혼제'를 시작으로 '전통제례', '해원상생 용서와 사랑을 위한 기도', '의례 및 희생자를 위한 묵념', 경과보고, 추도사, 추모시로 이어져 대동굿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행사 도중에도 식장에 마련된 김밥과 떡, 막걸리, 음료수 등을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문화광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인권평화영화제, 고양금정굴 평화공원 기원 사진전, 인권평화전시회 등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금정굴 학살사건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든다.

이번 행사에 걸개시를 내걸며 인권평화전시회를 주관하고 있는 문창길(49) 시인은 "그동안 유족들이 십시일반으로 행사를 치러냈다. 그중 고양시민회가 행사를 할 때마다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문 시인은 "올해 처음으로 고양시 예산 700만 원을 받아 행사를 치르고 있다. 시가 좀 더 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여와 상여꾼들이 도착하자 오 시인이 현대판 살풀이굿을 추며 구성진 곡을 뽑기 시작한다
▲ 금정굴 상여와 상여꾼들이 도착하자 오 시인이 현대판 살풀이굿을 추며 구성진 곡을 뽑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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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 공식사과 받은 것으로 끝난 것 아니다 

이춘열 집행위원장은 "황룡산 자락에 꼭꼭 묻혀 있던 슬픈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43년이 걸렸다. 이 명백한 사실을 진실로 인정받기까지 다시 14년이 더 걸렸다"며 눈물을 슬쩍 내비친다. 이 위원장은 "행사를 처음부터 지켜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4천만 원 이상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태봉 고양시민회 대표는 "2006년 5월부터 국가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어 2007년 6월 조사가 마무리된 뒤 같은 해 6월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금정굴 학살에 대해 진상규명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한다. 최 대표는 "사건 발생 57년 만에 고양금정굴 사건은 경찰 책임 하에 저질러진 불법학살로 공식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최 대표는 또 "같은 해 11월 20일에는 고양지역 성석리 구산리 덕이리 화전리 현천리 등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고양부역혐의희생자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결정을 내려 불법적인 민간인 학살임을 분명히 했다"며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금정굴유족회를 비롯한 전국의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이 정부와 끈질기게 싸운 결과"라고 덧붙였다.   

서병규 유족회장은 "우리의 일은 국가 차원의 공식사과를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서 회장은 "지금도 서울대 병원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유해를 공식 감정해 안치해야 하며, 위령탑을 세우고 평화공원을 만드는 일, 유족들의 피해와 명예를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일 등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금정굴사건'은 한국전쟁 때 치안을 담당했던 태극단원과 경찰이 북한군에게 부역을 했던 사람들을 처벌한다며 1950년 9월 25일부터 한 달 동안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에서 민간인 수백 명을 집단으로 총살한 뒤 암매장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3년 희생자 유족들과 고양지역 시민단체가 "국군의 9·28 수복 후 양민이 대량 학살돼 금정굴에 매장됐다"고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한국평화굿위원회의 '진혼제'를 시작으로 '전통제례', '해원상생 용서와 사랑을 위한 기도', '의례 및 희생자를 위한 묵념', 경과보고, 추도사, 추모시로 이어져 대동굿으로 마무리 되었다
▲ 금정굴 학살사건 합동위령제 한국평화굿위원회의 '진혼제'를 시작으로 '전통제례', '해원상생 용서와 사랑을 위한 기도', '의례 및 희생자를 위한 묵념', 경과보고, 추도사, 추모시로 이어져 대동굿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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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금정굴 학살사건, 정부 후속조치 빨리 해야

가을 달이 둥글게 떠 있었다
눈물에 얼비쳐서일까
달 속에 검은 상처가 웅크려 있음을 보았다
그 상처 감싸듯 불그레한 달의 살점들
한 겹 한 겹 헤집어 들어갔을 때
이 땅에서 억울한 죽음으로 세상 뜬 얼굴들
하나 하나 줄 서서 걸어 나왔다

- 이화국, '금정굴의 밤은 길다' 몇 토막

길라잡이는 이날 행사가 마무리 된 저녁 5시가 훨씬 지난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문화광장 벤치에 앉아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막걸리와 떡을 먹으며 금정굴 학살사건과 관련 있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꼭지점은 대략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부와 고양시가 금정굴 학살사건과 고양부역혐의사건 희생자를 위한 합동 위령제를 해마다 잘 치를 수 있도록 예산을 더 올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부에서 이들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위해 유골을 공식 감정한 뒤 안치하고, 위령탑을 세워 평화공원을 만드는 등 후속조치를 빠른 시일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들이 국가에게 요구하는 것은 희생자 이름 찾아주기와 추모공원 건립이다. 이는 곧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달래주는 일이자 다시는 이 땅에서 이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일 것이다. 이들이 진실과 화해를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태그:#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 #합동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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