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에서 나오는 서너 명의 아저씨들이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인지 똑같은 작업복을 입었다. 자판기 커피에는 대부분 멜라민이 들어간 프림을 쓴다는데, 그걸 마시는 아저씨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판기 주변을 둘러보니 그 어디에도 뭐라고 써붙인 글이 없다. 자판기 커피가 있는 곳이 어디 여기뿐일까. 요즘 웬만한 식당에 가면 커피는 그저 공짜다. 자판기 커피는 우리 동네만 해도 빵집이나 문구점, 은행과 편의점 근처에도 있고, 도서관에도 있다.
"다른 과자 안 먹이고 쌀과자라고 해서 챙겨 먹었는데 정말 배신감이 들어요. 중국산 아닌 게 없는 세상에서 이젠 뭘 먹이나 싶네요.""간식으로 고구마 먹이고 있어요. 근데 이게 며칠 갈 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이야 막 떠들다가 잠잠해지면 그 때도 먹지 말아야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동네 엄마들이 멜라민 때문에 털어놓는 고민들이다.
그러면 과연 유기농 식품 잘 팔리나멜라민이 들어간 품목이 발표된 직후에 동네 마트의 과자 코너에는 '식약청고시 멜라민관련 305개 일시판매중지 상품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알림글을 써 붙였다. 그러니 안심하고 쇼핑을 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림글만 읽고 갈 뿐 과자를 장바구니에 넣지는 않았다. 그나마 알림글이라도 있는 곳은 마트뿐이다. 아파트 주변 작은 슈퍼마켓에서는 멜라민에 대한 아무런 표시나 언급이 없다. 그러니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이 꼼꼼하게 챙기고 따져가면서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멜라민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나 역시 장을 볼 때는 중국산을 기피하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중국산 콩나물과 두부를 먹을 때도 있었다. 중국산과 국산의 값 차이가 두 배 이상으로 나긴 하지만, 대신 양을 줄여 남기지 않고 귀하게 먹으려고 한다.
동네에서 유일한 유기농 가게를 들러보니 손님 두 사람이 장바구니 가득 물건을 사고 나간다.
"멜라민 때문에 요즘 유기농제품을 찾는 손님들이 많이 늘었나요? 아기 엄마들은 아이들 간식으로 유기농과자나 식품을 더 찾을 것 같은데요?""아니, 그렇지 않아요. 멜라민 얘기는 계속 나오지만, 손님들은 값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취급하는 것은 모두 국산이고 일반매장에서 파는 것과 값 차이가 있거든요. 소비자들은 저렴하면서 양이 많은 것을 선호해요."대전광역시 유성구 송강동에서 유기농 가게를 운영하는 김영희씨는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을 섞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양심도 문제가 있지만, 제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그것들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소비자 의식이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식으로 통밀 식빵과 감자로 만든 과자 두 개를 샀다. 우리 밀과 옥수수가루·현미유·고구마전분이 들어간 원재료가 모두 국내산이다. 미국산 밀가루에 백설탕·쇼트닝·혼합식용유에 산도조절제와 합성착향료가 버무려진 과자에 길든 내 입맛에 통밀 식빵은 네 맛도 내 맛도 없었다. 하지만 씹을수록 구수하고 입맛 끝이 담백하다.
줄줄이 멜라민 세상멜라민이 없다고 적합판정을 받은 제품이 나흘 뒤에 다시 부적합판정을 받았다. 뭔가 확실한 건 없고 먹을거리에 불안만 커지는데, 다시 어이없는 뉴스가 들린다. 우리 집에서는 거의 날마다 쓰고 있는 코팅프라이팬. 그 코팅 팬의 90%가 멜라민 수지란다. 그래서 코팅이 벗겨지기 전에 버려야 한다니…. 코팅 조금 벗겨졌다고 바로 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루가 멀다 하고 줄줄이 터지는 멜라민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빼먹었던 소소한 즐거움도 없어졌다. 내일은 또 어떤 제품에서 멜라민이 나오려나?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와 세종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