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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이야기
▲ 표지 DMZ 이야기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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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의 키는 비무장지대에 숨어 있다. 산짐승과 들짐승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는
다면 우리는 전쟁이 남긴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책 속에서)

80년대 대학에는 '전방 입소 교육'이란 게 있었다. 모든 남학생들이 2학년 때 의무적으로 교련 수업의 일부로 받아야 했던 과정이다. 덕분에 여학생들은 1주일을 강의 없이 쉴 수 있었다. 남학생들이 전방으로 떠나는 날 여학생들은 과별로 돈을 모아 담배며 휴대용 반짇고리 세트 등을 사주며 버스를 향해 하얗게 손을 흔들었다.

전방에 입소한 뒤 소대별로 모여 철책선 앞에서 정신교육을 받았다. 철책선 너머에는 몇몇 병사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철책선 가까이 다가서면 소곤소곤 대화라도 주고받을 만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차려, 열중쉬어, 우향우, 좌향좌"를 되풀이하며 군기를 잡던 교관이 지휘봉으로 그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놈들이 북한 놈들이다. 똑똑히 봐라. 너희들이 서 있는 전방은 이런 곳이다. 방심하면 저놈들이 너희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놈들을 향해 함성을 지른다. 저놈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도록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른다. 실시!"

교관의 명령에 따라 고래고래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교관이 북한 놈들이라 지목했던 병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망은커녕 고래고래 고함치는 우리들을 향해 빙글빙글 웃기까지 했다. '무서운 놈들'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소리가 작다며 교관이 다그쳤다. 교관의 계속되는 명령에 따라 우리는 전방을 향해 악을 써댔다. 온몸을 쥐어짜 외치는 악악 소리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철책선을 넘더니, 겁도 없이 비무장지대를 향해 날아갔다. 철책선 너머 앉아 있던 병사들은 여전히 빙글대며 우리를 구경했다.

지뢰밭 일궈 사는 사람들

겨울마다 홀연히 등장하는 DMZ 눈꽃세상
▲ DMZ의 겨울 겨울마다 홀연히 등장하는 DMZ 눈꽃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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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군 해안면(일명 펀치볼)에는 지뢰 할머니가 살고 있다. 6.25 전쟁 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할머니 가족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도 좋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이곳에 이주했다.

밭을 일구고 살던 어느 날 할머니는 밭 옆에 돋아난 고사리를 뜯으려다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잃었다. 큰아들이 중학생 때였다. 큰아들은 여름 내내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다. 불행은 계속 이어졌다. 큰아들은 41세가 되던 해 12살짜리 조카를 데리고 토끼 사냥을 갔다가 지뢰 사고를 당해 둘 다 죽었다. 둘째 아들도 37세 되던 1984년에 밭 주변에서 지뢰 사고를 당했다.

할머니 말고도 이 마을에는 지뢰 피해자들이 더 있다. 지뢰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해 이곳에 와서 죽을 각오를 하고 밭을 일궜다. 사람들은 마을로 들어올 때 각서 한 장씩 썼다. 사고가 나도 군부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이 마을의 지뢰사고는 분단이 빚어낸 '생계형 안보재해'였다.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주축이 돼 마련한 대인지뢰 피해 보상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상위 1% 기득권층의 이해를 좌우할만한 문제가 아니어서 국회의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삐라의 추억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박춘영 할머니
▲ 지뢰 할머니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박춘영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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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삐라를 주우면 행복했다. 학교나 경찰서에 가져다 내면 공책, 연필, 책받침 등의 학용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용품이 귀해 공책 아래, 위 여백까지 줄을 그어 써야 했던 때라 삐라는 학용품을 교환할 수 있는 돈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삐라가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하는 아버지 따라 산비탈을 오르다보면 나뭇가지에 산비탈 돌무더기 사이에 군데군데 삐라가 있었다. 공책이나 연필을 얻고 싶은 생각에 차곡차곡 주워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은 산에서 삐라 보기 힘들다. 삐라를 주워 학용품을 타던 시절의 추억이 요즘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없다. 분단 한국사의 상징처럼 한반도에 흩뿌려졌던 삐라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과거 속의 일로 잊혀져가고 있다.

그런데 전방에는 요즘도 가끔 삐라가 떨어진다. 예전처럼 북에서 내려오는 삐라가 아니라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내용의 삐라가 떨어진다. 남쪽의 종교, 사회단체에서 군당국의 눈을 피해 북쪽으로 날려 보내는 삐라다. 

이렇게 날린 삐라가 비무장지대 남쪽 인근 논밭에도 떨어지는데, 이 삐라가 물에 젖지도 않고 잘 찢어지지도 않아 밭이나 논밭에 떨어지면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주워 신고한다고 대가를 주는 것도 아니니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며 주민들은 한숨을 쉰다.

지구촌 땅 끝 마을에서 평화 찾기

지구촌의 탄피를 모아 만든 DMZ 평화의 종
▲ 평화의 종 지구촌의 탄피를 모아 만든 DMZ 평화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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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DMZ 기록은 궁극적으로는 지구촌 땅 끝 마을에서 희망을 찾는 작업입니다. 전쟁을 통해 진화해온 인류가 가장 최근에 남긴 전쟁유물인 DMZ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열쇠를 찾고 싶었습니다. 저는 무슨 대단한 이론으로 중무장하거나 기존의 논문 자료를 영리하게 꿰어 맞추기보다는 분단현장에서 마주치는 아주 작은 것에서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저자 서문에서)

이해용 기자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분단이 빚은 풍경 속에서 성장했다. 성장한 뒤에는 연합뉴스 강원 취재본부 기자로 중동부전선 DMZ를 10년 이상 출입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에게 DMZ의 실상을 바로 알리기 위한 작업에 몰두해서 <DMZ 이야기>를 출간했다. 2003년 <비무장지대를 찾아서>를 출간에 이어진 두 번째 결실이다.

삼각팬티 모양의 지뢰 표지판이 빨래처럼 철조망에 걸려 있는 곳, 마을 잔치에 초청되는 내빈들이 주로 권총 찬 군인들인 마을, 지뢰밭에 매달려 질긴 목숨 이어가는 사람들, 지구촌 냉전은 끝났지만,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곳에서 평화와 공존을 꿈꾸며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DMZ 이야기,글, 사진 이해용/눈빛/2008.9/15,000원

전방입소 교육에서 철책선 너머 있었던 병사들이 북한군이 아니라는 건 전방에서 퇴소할 무렵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DMZ 이야기 - 지구촌 땅끝 마을 비무장지대 답사기 Demilitarized Zone

이해용 글.사진, 눈빛(2008)


태그:#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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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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