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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다 

"나는 임 박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3개 국어로 필기하고 메모한다는 동양의 수재를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3개 국어란 한글과 한자와 알파벳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서양인들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임 박사나 나나 조국을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아직 미국 국적을 내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캠퍼스에서 몇 번 마주쳐 목례를 나눈 정도인 임수경을 가까운 사람처럼 격의 없이 대했다. 그는 놀랍게도 임수경이 무엇을 실험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임수경에게 녹음된 대화를 들려주었다. 아인슈타인과 대화한 이들은 여러 명인 듯했다. 재작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페르미를 비롯해서 대부분이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계 물리학자, 화학자라고 아인슈타인은 설명해 주었다.

임수경은 녹음기를 노려보며 녹취된 대화를 청취했고, 아인슈타인은 왈츠라도 감상하는 듯한 자세로 천정을 올려본 채 손가락을 책상 위에서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라늄 원자핵 연쇄 반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생각해 보지도 않은 일입니다.

녹음기 속의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들이 논문의 개요를 간단히 말하자, 처음에는 그들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녹음기 속의 과학자들이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 때서야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들의 견해에 동의를 표시했다.

과학자들은 독일이 우라늄을 손에 넣었을 경우의 위험성을 말했다.

-우라늄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마침 우라늄 채광권을 벨기에가 갖고 있으니 벨기에의 여왕과 친분이 있는 박사께서 벨기에를 움직여 독일에게 우라늄을 팔지 못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은 녹음기를 껐다.

"나는 그들의 요구대로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우라늄은 콩고 아닌 다른 데에서도 구할 수가 있다는 것을 임 박사도 아실 겁니다."

임수경은 이제 자신이 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를 보시자고 한 이유를 질문해도 되는지요?"

"얼마 전 당신의 글을 학회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연 날리며 놀았던 서울 북촌이 그립다고 한 글 말입니다. 아름다운 에세이였습니다. 사실은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편지 문안을 부탁드리려고 뵙자고 한 것입니다. 나는 글도 잘 못 쓰지만 우라늄 붕괴 연구 실험의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실 리가 있겠습니까?"

"정말입니다. 요즘 우리집 개가 아파서 통 시간이 없었습니다."

"부인께서는 어디 가셨는지요?"

"사실 개 치료는 우리 마누라 전담입니다. 그런데 마누라가 한 시간 가량 개를 돌보고 오면 곧 세 시간 정도 몸이 아픕니다. 그런데 마누라 치료 전담은 나입니다."

임수경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다음 날 자신이 작성한 편지를 아인슈타인에게 갖다 주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합중국 대통령 귀하
각하, 오늘 저는 페르미를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의 논문을 검토해 본 결과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라늄 핵이 새롭고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임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라늄 연구와 관련된 몇 연구 사례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급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하께서 다음의 사실과 저의 권고 사항을 각별히 유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최근 넉 달 동안에 이루어진 이렌 퀴리와 페르미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놀라운 일이 현실화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라늄을 이용한 핵 연쇄반응의 결과로 생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만간 실현될 수가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라늄 연쇄반응을 폭탄 제조에 쓸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살상 무기가 될 것입니다. 폭탄 하나로 도시 전체를 일거에 날려버릴 수가 있는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을 헤아려 볼 때, 미국 정부는 우라늄 연쇄반응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을 신속하고도 다각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는 이 일을 가장 신뢰할 만하며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맡기셔야 할 것입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평안북도 정주 신안소학교 교원 장준하는 겨울방학을 맞아 평양에 가 있었다. 그는 방학이면 언제나 도보 또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식민지 조선의 농촌 실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했다. 그는 이번에도 평양까지의 아득하고 황폐한 겨울 길을 걸어서 갔다. 그는 전시동원체제가 도회보다 시골에서 더 먹혀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원산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 운동과 소작농들의 쟁의가 격화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장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는 그리 관심이 높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연이 기독교 신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주일을 맞아 예배를 보기 위해 평양 산정현 교회로 갔다. 산정현 교회는 담임 목사인 주기철을 중심으로 신도들이 똘똘 뭉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뒷자리에 앉아 주보를 펴 보았다. 그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화여전 전도 합창단의 음악 예배가 마련되어 있었다.

장준하, 민족의식이 뚜렷한 소학교 교원

장준하는 유달리 민족의식이 뚜렷한 청년이었다. 그가 성장한 곳은 평안북도 의주였다.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밭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만학도인 그의 아버지가 아직 공부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학과 신학문에 두루 소양이 있는 조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준하의 조부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일찍부터 사학을 만들어 한학과 신학문을 가르쳤던 조부를 마을 사람들은 장 교사 어른이라고 불렀다. 조부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전형적인 개화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살던 마을에는 이따금씩 쫓기는 조선 독립군들이 숨어들었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와 나뭇단 속에도 숨고 밭 속으로도 몸을 감추었다. 그런데 그런 독립군을 밀고하는 조선인도 더러 있었다.

"누구는 나라를 찾겠다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험한 일을 하는데 누구는 왜놈의 개가 되어 독립운동하는 애국자를 밀고하고 다니니 이 무슨 꼴이란 말이냐? 성이 무너지는 것은 외적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도적 때문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나라를 잃은 것도 그리고 그 나라를 찾지 못하는 것도 모두 그런 자들 탓이다."

장준하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 그는 광막한 만주 벌판을 아울렀던 발해나 고구려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녔더라면 오히려 그런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백두산과 압록강에서 신출귀몰한다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들은 그 이야기들이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아인슈타인#장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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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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