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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정상호(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의 지역정치에 관한 강연이 사회당에서 개최됐다. 주제는 선거제도 변화와 지방자치 개혁. 최근 잇단 지방의회 비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모색해보는 자리였다.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하느니 지방에서 시장을 하겠다

 

정 교수는 지방정치의 핵심 과제에 대해 경쟁과 견제가 없는 지방정치를 혁신하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이는 지난 지방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전체 106명 의원 중 한나라당 의원은 무려 99명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결국 전체 의원의 30% 이상이 기소되는 돈 선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상호 경쟁과 견제를 통한 민주주의 작동은 애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 교수는 이런 현실이 독점적 지역정당체제,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유착, 중앙권력에 비해 시민사회단체의 감시와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지방권력의 현실 등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의 감시와 견제로부터 자유로운 지방권력의 문제는 한국의 시민운동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시민운동은 서비스 기능에 비해 정치성과 운동성이 강한 권익주창(advocacy)적 성향을 보여 왔다. 말 그대로 ‘준정당적’ 기능을 수행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향은 중앙권력, 그리고 서울에 한정된다. 그리고 비수도권일수록 권익주창적 기능보다는 서비스 전달 기능이 강해진다. 이는 지역의 경우 보다 많은 시민사회 단체가 권력의 견제와 감시보다는 국가나  지방정부의 물질적 지원과 연관이 있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 교수는 만약 누군가 자기에게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하겠느냐, 아니면 지방에서 시장을 하겠느냐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지방의 시장을 택할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그 시장이 얼마나 제왕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정치학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당체제는 ‘비정치 모델’

 

정 교수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결정적으로 외적 환경으로써 정치적 기회구조(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에 의해 좌우된다고 밝혔다. 정치적 기회구조란 새로운 정치세력 혹은 운동이 공적 정치체제 속으로 편입될 수 있는 조건을 말하는데, 선거제도 형태와 정치동맹 유무가 이것의 대표적인 요소가 된다. 정 교수는 이들 요소에 따라 4가지 정치 참여 모델을 제시했다.  

 

그럼 유럽 각 국의 녹색당 사례를 들어 위의 정치 참여 모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위의 표는 총선을 기준으로 의회 진입에 효과적으로 성공한 유럽 국가들의 최근 선거결과와 선거제도, 그리고 주요 좌파 정당의 권력 구조를 정리한 것이다. 위의 사례를 보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녹색당의 의회 진입은 성공적으로 드러난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선거에서 무려 55석의 의원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의 경우에만 유독 의석을 얻지 못했다. 왜일까.

 

녹색당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국가들 모두는 예외 없이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1, 제2당인 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혹은 사회당과 경쟁과 협력을 유지하는 동맹을 맺고 있다. 이것이 바로 독자 정당 모델이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다수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수대표제는 군소 정당에게도 개별 선거구에서 다수의 득표를 동등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매우 어렵다. 때문에 다수대표제는 거대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비례적이지 않는 선거결과를 낳기 쉽다.

 

그런데 이들 나라의 경우 선거제도가 강한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용가능한 정치적 동맹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독자적 정당화의 경로보다는 우호적 협력관계에 있는 기성 정당을 통해 그들의 요구와 가치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바로 정책연대모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은 전형적인 비정치 모델이다. 선거제도는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 기존 정당과 새로운 정치세력 간의 연대나 정책연합의 경험도 없다. 비록 비례대표제의 부분적인 도입으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했지만 말이다.

 

선거법 개정 없이 지방자치 개혁 없다

 

정 교수는 우리가 이런 비정치 모델을 계속 고수하는 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기존 정당의 독점 구조를 용이하게 하는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지방자치 개혁은 불가능하다며 지방의회의 문호를 여러 정치세력에게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다가오는 2010년 지방선거를 내다보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당공천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정당공천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그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제가 문제되는 것은 정당의 지역기반이 부재하며 후보자를 단순히 위에서 내려찍는 방식으로 임명하기 때문이지 그 자체로 어떤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반정당의 논리, 반정치의 인식체계로는 지방정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역을 정당과 정치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뜬 정당정치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정당공천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 정 교수는 이미 진보진영에서 시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래로부터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주민단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런 면에서 그는 문국현식 등장을 최악의 상황이라 평했다. 지역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이 단지 자신의 유명세만으로 지역의 후보가 되는 것은 정당의 책임 있는 지방정치에 그저 해악일 뿐이라고 혹평한다.

 

진보진영, 내부정치는 과잉 지역정치는 무능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보수정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조차 지역현안과 분야별 정책에 대한 준비 정도가 대단히 소홀하다는 것이다.

 

“지방정치의 결핍은 진보진영 내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 진보진영은 내부 세력 간의 과도한 대립과 갈등 등으로 내부정치 과잉상태에 놓여 있어요. 그로인해 지역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죠. 당연히 지역사회 의제개발이나 시민사회와의 다양한 교류 등 외부정치는 무능해질 수밖에 없었고요.”

 

정 교수는 진보진영이 지방정치의 가능성을 좀 더 키워나가길 당부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 아무리 정치적 기회구조가 바뀐들 지방정치의 개혁도, 진보진영의 정치참여도 그저 허황된 꿈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본 기자는 사회당 지역정치팀장입니다.


#지방의회 개혁#선거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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