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공연은 오후 3시30분부터 시작되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3시에 끝나고 30분 정도 여유를 갖고 공연이 진행됐다. 이 30분 동안 연희자들은 공연을 준비하고, 관객들은 쉬는 시간을 가지며 자리도 옮겨 앉고 자료도 보며 공연에 대비한다. 3시30분이 되자 봉산탈춤 진행자 겸 해설자가 나와 봉산탈춤 전체를 개관하고 오늘 이뤄질 공연 내용을 소개한다.
봉산탈춤은 7개 과장으로 구성된다. 4상좌춤, 8목중춤, 사당춤, 노장춤, 사자춤, 양반춤, 미얄춤의 7개 과장이다. 이중 이날 공연에서는 4개 과장 즉 4상좌춤, 8목중춤, 노장춤과 사자춤을 선보인다. 4상좌춤 과장은 사방의 신에게 예를 올리는 마당이다. 4상좌가 춤을 추면서 사방의 부정한 기운을 몰아낸다. 8목중춤 과장은 여덟 명의 목중이 온갖 화려한 몸짓으로 파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목중이란 먹중의 다른 표현으로 먹물옷을 입은 중이라는 뜻이다.
노장춤 과장은 나이든 노장스님이 소무의 유혹에 빠져 타락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노장스님은 소무를 취발이에게 빼앗긴다. 취발이는 소무와 살림을 차려 아이를 낳고 취발이는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자춤 과장은 가장 이국적이다. 부처님의 사자(使者)인 사자(獅子)가 목중들을 혼내주는 장면이다. 목중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모두 한바탕 화합의 춤을 춘다.
내용을 설명하고 나서 진행자는 관객들과 함께 장단과 추임새를 해 본다. 전통적으로 봉산탈춤의 장단은 덩더쿵 장단이다. 덩더쿵 덩더쿵으로 이어지는 친숙한 장단을 말한다. 그리고 추임새는 공연 중간 중간에 관중이 넣는 반응으로 공연의 흥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추임새로는 얼쑤, 잘한다, 그렇지, 어이 등이 있다. 장단과 추임새를 배우고 나니 봉산탈춤을 훨씬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봉산탈춤이 스님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까닭
봉산탈춤에는 스님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파계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들의 부정은 양반에 대한 풍자이고 당시 사회 전체에 대한 풍자이다. 당시 사회의 지도층에 대해 직접 풍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스님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4상좌춤은 흰색 가사와 고깔을 쓴 네 명의 상좌가 나와 느린 춤을 춘다. 이들의 춤은 사방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무로 정적이면서도 품위가 있다. 4상좌의 흰색 가사 바깥에는 빨간색 장삼을 걸쳤고, 고깔의 끝에도 빨간 깃을 덧댔다. 그래서인지 흰색 가사와 고깔이 더 돋보인다. 아래에는 치마를 입었는데 파란색으로 흰색 가사와 잘 어울린다.
이들의 춤은 어찌나 우아한지 마치 학이 너울거리며 나는 듯하다. 얼굴에 쓴 탈도 흰색 바탕에 눈만 크고 코와 입이 작아 정결하면서도 순수해 보인다. 표정 역시 뭔가 수줍어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탈이 그로테스크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비해 4상좌는 순수하면서도 우아하다.
이에 비해 8목중은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머리는 화려하게 치장했으며 옷도 울긋불긋하다. 그리고 이들이 추는 춤도 역시 역동적이다. 8명의 목중이 화려한 동작으로 춤을 추면서 파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파계라는 말이 그렇게 실감나지는 않는다. 파계라고 하면 불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인데 그것이 춤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8목중춤에서는 목중들이 사설을 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사설이 잘 들리지 않는다. 여덟 목중들이 차례로 나와 자기만의 고유한 춤사위를 잠깐씩 보여주고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들 여덟 목중들이 모두 나와 함께 춤을 추며 한바탕 놀이판을 펼친다. 전체적으로 역동적이기는 하지만 주제의식이 덜 드러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춤을 즐기고 시간 보내기에는 적당한 과장이 바로 8목중춤이다.
재미로 따지면 넷째 과장 노장춤 장면이 최고제4과장 노장춤 장면은 노장과 소무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8목중이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노장을 데리고 다른 한 패는 소무를 가마에 태워 등장한다. 일종의 결혼 장면이다. 노장과 소무는 잠깐 동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먼저 신부처럼 족두리를 쓰고 혼례복을 입은 소무가 춤을 춘다. 노장 스님은 잠시 엎드려 있다가 지팡이를 들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일어선다.
노장스님은 이제 얼굴을 드러내고 소무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춤을 춘다. 노장스님은 검은색 바탕에 점이 많이 박힌 추악한 탈을 쓰고 있다. 노장과 소무는 점점 가까워진다. 노장은 소무에게 접근해 등으로 소무를 살짝 밀어본다. 소무는 노장스님에게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굿거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 노장스님은 지팡이를 놓고 염주를 벗어 소무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염주를 소무의 목에 걸어준다. 소무는 염주를 벗어던진다. 노장스님은 다시 얼굴을 씻고 치장을 한 다음 다시 소무에게 접근한다. 다시 소무에게 염주를 걸어주니 소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
마침내 둘은 얼굴을 마주보고 두 손을 서로 잡고 하나가 된다. 그런데 이때 취발이가 나타나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다. 취발이는 소무를 차지하기 위해 춤을 추며 사설을 한다. 결국 노장스님은 취발이의 도전을 받아들여 그와 한바탕 대결을 벌인다. 노장스님은 지팡이를 들고 취발이를 무찌르려 한다. 그러나 여의치 않다. 이번에는 취발이가 대나무 잎으로 만든 무기를 동원 노장스님을 공격한다. 두어 번 공격에 노장스님이 당하지 못하고 결국 도망을 친다.
취발이는 승리의 춤을 추며 소무에게 접근한다. 처음 소무는 역시 취발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취발이는 역동적인 춤으로 소무를 유혹한다. 그래도 소무의 반응이 없자 이제는 돈으로 소무를 유혹한다. 결국 소무는 돈에 넘어가게 되고, 취발이와 소무는 살림을 차린다. 이후 소무는 취발이에게 아이를 낳아주고, 취발이를 이 아이를 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서역에서 와 우리 것이 된 사자춤
다섯째 과장은 사자춤이 중심이다. 사자는 원래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이다. 그러나 사자춤의 전통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권32, <잡지(雜志)> 악(樂)조에 보면 최치원의 '향악잡영시(鄕樂雜詠詩)' 5수가 나온다. 그중 마지막 다섯 번째 것이 산예(狻猊)이며, 이 산예가 바로 사자춤이다.
일만 리 머나먼 길 사방 사막 지나오느라 遠涉流沙萬里來털옷은 다 헤지고 티끌만 뒤집어썼네. 毛衣破盡着塵埃머리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 인덕이 배어 있으니 搖頭掉尾馴仁德웅장한 그 기개 온갖 짐승 재주에 비할 소냐? 雄氣寧同百獸才이런 전통이 이어져 봉산탈춤에도 사자춤이 보이는 것이다. 원래 봉산탈춤의 사자춤은 사자가 나타나 타락한 목중들을 징벌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목중 한 명이 채찍을 들고 사자와 함께 사설을 주고받으며 춤을 추는 것으로 되어 있다. 목중은 사자를 제압하기 위해 사자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그러나 사자도 목중을 제압하기 위해 큰 몸짓으로 무대를 휘젓는다.
결국 목중은 자신을 징계하려는 사자에게 굴복하여 회개를 약속한다. 사자는 목중을 용서하는 뜻에서 몸을 곳추 세워 두발로 선다. 몸을 세우고 얼굴을 돌리며 연기하는 사자의 모습은 봉산탈춤의 백미이다. 이곳에서 제5과장 사자춤 장면은 절정에 달한다. 사자는 목중의 참회를 인정하고 함께 춤을 추며 퇴장한다. 사자춤 장면 역시 봉산탈춤의 보편적 장단인 타령장단과 굿거리장단으로 이루어진다.
덧붙이는 글 | 안동탈춤페스티벌(9.26-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