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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 천관산 오르는 길 비가 내린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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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국도 2호선을 타고 장흥으로 향했다. 오늘(10.5)은 억새제가 열리는 장흥 천관산(天冠山. 723m)을 오르기로 하였다. 보성을 지나면서 차창으로 비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애들은 신이 났다. 비가 오면 산에 오르지 못 할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비가 더 오기를 기원(?)한다.

장흥을 지나 23번 국도로 빠져 들어가니 2차선으로 좁아들면서 산허리를 감싸고 올라간다. 비는 점점 굵어지지만 산행이 힘들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기분을 무척 우울하게 한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혹시 산에 못 올라가는 것 아닌지?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차는 이미 가득 찼다. 어떻게 주차를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나이 드신 주차안내 할아버지께서 직접 차를 인도하면서 주차장소를 지정해 준다. 비록 비포장에 흙무더기가 쌓인 주차장소지만 쉽게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비옷을 하나씩 입고 산행준비를 한다. 애들에겐 비옷을 입는 것만으로 힘든 산행이 즐거운 놀이가 된 듯하다. 산행은 천관산 대표 등산코스인 장천재에서 환희대로 올라 억새능선 길을 따라 연대봉으로 돌아오는 길을 잡았다.

천관녀는 왜 천관산까지 오게 됐을까?

600년 된 소나무 태고송이 수문장처럼 서있다.
▲ 태고송 600년 된 소나무 태고송이 수문장처럼 서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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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장천재(長川齋)에는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600년을 지켜왔다는 태고송이 당당하게 서있다. 장천재는 조선후기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 1727~1798)가 강학(講學)했던 곳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다. 한 눈 팔지 말고 얼른 억새 보러 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체육공원에서 올라서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소나무 숲속을 힘들게 올라서니 평평한 길이 나오고, 다시 산길을 가파르게 올라서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서서히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애들도 지치는지 자주 쉬기를 반복한다.

"산 이름이 뭔지 알아?"
"천관산이잖아요."
"그럼 왜 천관산이라고 했을까?"

"김유신 장군을 사랑한 천관녀가 천관산으로 들어와 숨어살다가 천관보살이 되었다고 한대. 그래서 바로 아래 천관사라는 절도 있대."
"그 이야기 알아요. 가야금 타고, 말목을 자르고."

윤성이가 김유신과 천관녀 이야기를 아는 체 한다.

천관산은 기암 전시장이다. 사랑이 깨져버린 바위모습이 재미있다.
▲ 재미있는 바위 천관산은 기암 전시장이다. 사랑이 깨져버린 바위모습이 재미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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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궁금증이 일었다. 왜 천관녀가 먼 경주에서 장흥 땅까지 오게 됐을까? 결론은 천관녀는 천관산에 오지 않았다. 천관녀는 천관(天官)의 딸이며, 하늘의 면류관인 천관(天冠)이 아니다.

옛날에는 천관산을 지제산(支提山) 또는 천풍산(天風山)이라 했다고 하며, 가끔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고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천관산은 대세봉(大勢峰) 일대의 기암첨봉들이 웅장하고 장엄한 경치를 연출하여 멀리서 보면 천자의 면류관과 흡사하게 보인다고 해서 천관산이라 했다고 한다.

불경에 의하면 지제산(支提山)은 천관보살(天冠菩薩)이 사는 산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천관산의 옛이름인 지제산에는 천관보살이 살았고, 천관보살을 천관녀와 연관시키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지금은 산 이름이 천관산이고 천관보살이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재형이, 윤성이, 세림이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었다. 환희대에는 아이스크림을 판다. 애들에게는 기쁨 두배
▲ 환희대 재형이, 윤성이, 세림이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었다. 환희대에는 아이스크림을 판다. 애들에게는 기쁨 두배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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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른 성취감과 큰 기쁨을 누리는 환희대

산길은 등산객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놓았다. 아마 천관산 전체가 알록달록한 커다란 띠를 두른 모양을 상상해 본다. 한사람 정도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바위틈 좁은 길에서는 정체가 심하다. 올라가려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섞여 한참을 기다렸다가 올라가기를 몇 차례 한다.

여러갈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 환희대 이정표 여러갈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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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은 기암들로 유명한데 짙은 안개는 바위 끝만 보여주고는 다 감추어 버렸다. 바위봉우리를 지나 올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러 개의 바위가 하늘로 서있다. 그중에는 사랑이 깨져버린 바위도 있다. 애들이 재미있어 한다.

비가 내리다 보니 습기가 많아 땀이 더 많이 난다. 애들은 점점 짜증이 나고 힘들어 한다. 넓적한 바위를 찾았다. 정상에 가서 먹으려던 점심을 먹었다. 잠시 쉬면서 기분전환도 할 겸. 하얗게 덮고 있는 안개는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다. 아름다운 바위들과 어울린 주변풍광들을 기대했는데 가까운 나무와 바위만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뾰족한 바위 천주봉(天柱峰)을 지나 환희대(歡喜臺)에 도착했다. 환희대에는 여러 방면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혹시나 시원한 전망을 기대했는데 하얀 안개는 걷힐 줄 모른다. 애들은 바위를 올라 다니며 마음껏 즐긴다.

"기쁠 환(歡), 기쁠 희(喜), 기쁨이 두개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근데 처음 들으면 대학교 이름 같아요."

재형이가 환희대 한자를 읽으면서 설명을 해준다. 애들은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서 다 올라왔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 1㎞ 억새능선 길이다.
▲ 억새능선 길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 1㎞ 억새능선 길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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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에 서니 말을 타고 달리는 초원이 생각난다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는 산 능선 평평한 길로 1㎞정도 억새평원이다. 안개로 평원은 보이지 않지만 억새 길을 오르내리는 기분이 좋다. 짙은 안개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주변 사물을 감추고 하늘 길을 걸어가는 기분을 만들어 준다.

억새는 흥을 잃었는지 춤을 추지 않는다. 너무나 조용한 길을 말없이 걸어간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 그렇게 천관산은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천관산 정상으로 봉화대가 있다.
▲ 연대봉 천관산 정상으로 봉화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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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달리는 초원이 생각난다.
▲ 연대봉에서 바라본 능선길 말을 타고 달리는 초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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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烟臺峯, 723m)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정상표지석에서 기념사진 찍느라 북적거린다. 연대봉은 천관산 정상으로 봉화대가 있어 이름이 붙여졌다. 봉화대 위에서니 산 능선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재형이는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풍경이라고 즐거워한다. 아마 말을 타고 달리는 무휼의 모습이 떠오르나 보다.

양근암에서 한 번 웃고

바위가 참 신기하게 생겼다.
▲ 양근암 바위가 참 신기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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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은 숲이 없는 산길이지만 날이 흐린 탓에 시원했다. 내려오는 옆으로 능선들이 같이 따라 내려오고 있다. 산 능선들이 겹치면서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 준다.

조금 내려오니 정원암도 만난다. 떡을 쌓아 놓은 듯 울퉁불퉁한 바위기둥. 주변 바위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조금 더 내려서니 양근암(陽根岩)을 만난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웃는다. 짓궂은 농담들이 오고 간다. 어쩜 그리 똑같이 닮았을까?

내려오는 길에는 한 아저씨는 경련이 일어났는지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파스 등을 바르며 고통을 참고 있다. 또 한 아주머니는 무릎이 아파 못 내려가겠다며 무척 힘들어 한다. 주변 산행객들이 압박붕대를 감아주면서 응급처치를 해 준다.

한참을 내려 가다보니 소방관 아저씨 한분이 열심히 뛰어온다. 아까 그분들이 도저히 혼자 내려올 수 없었는가 보다. 근데 소방관아저씨들은 다친 사람들을 어떻게 들고 내려올까? 그런 걱정하고 있는데 세분이 또 올라오고 있다. 괜히 걱정이 된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지만 몸으로 뛰어야 하는 소방관 아저씨들. 무릎이나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꼬리를 물고 내려가고 있다.
▲ 연대봉에서 내려오는 길 많은 등산객들이 꼬리를 물고 내려가고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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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행길은 장천재에서 환희대(2.6㎞), 억새 능선(1㎞), 연대봉에서 장천재(2.3㎞)로 돌아왔습니다. 애들과 함께한 산행시간은 점심 포함해서 5시간 조금 못 미칩니다.



태그:#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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